“때로는 생각이 행동보다 진실과 현실에 가까워”, 영화는 루시(제이크의 여자 친구)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이때 카메라는 제이크의 집들과 창문 밖을 바라보는 청소부를 비추며 다소 파편적인 이미지들을 충돌시킨다. 내레이션의 진행이 끝난 후 루시가 등장하며 그녀는 곧바로 제이크의 차를 타고 그의 부모님 집으로 나선다. <이제 그만 끝낼까 해>의 구조는 로드무비로 보여질 수 있지만 인물의 운동성을 강조하기보단 대화를 통해 서사를 돕는다. 영화는 대화의 레이어들을 쌓아나가며 관객이 겪는 혼란(서사의 불확실성)을 압축하는 듯 하지만 이 역시 온전히 해결되진 못한다.
영화가 주는 혼란은 한두 가지로 좁혀지지 않는다. 트라우마의 기억, 루시(처음 불려진 이름이 루시 일 뿐 지속적으로 이름이 바뀐다)의 존재, 청소부의 존재, 시간의 경과성 등 풀어나가야 하는 문제는 굉장히 많다. 이 혼란들 속 관객이 가장 빠르게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청소부와 제이크와의 관계이다. 루시의 내레이션에서 제이크는 ‘나이가 많은’ 사람으로 다소 추상적으로 묘사된다. 이 대사를 기점으로 관객은 로드무비의 개념을 따라 제이크와 루시와 함께 같이 이동한다. 이 이동하는 과정에서 둘은 끊임없는 대화를 나눈다. 일반적인 연인의 주제보다는 다소 학문적인, 마치 축적되어온 지식을 뿜어내는 것처럼 형이상학적인 고찰, 문학, 영화학, 물리학 등 다양한 주제와 문장을 인용해 나가며 대화한다. 물론 일반적인 대화도 있다. 관객은 이 대화들을 통해 영화의 정보를 얻어야 하며 제이크의 성격을 알게 되고 취향을 알아나간다. 제이크를 알게 되는 중요한 단서는 대화와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제이크와 루시가 부모님 댁으로의 이동 -> 부모님 댁에서 보내는 시간 (중간마다 충돌하는 학교 속 청소부의 시간) -> 다시 제이크와 루시가 집으로 돌아가는 과정’ 크게 이 세 가지로 구분되는 사건의 시간은 사실상 ‘하루’이다. <이제 그만 끝낼까 해>는 3명의 인물을 교차시키는 듯해 보이지만 이들의 시간은 중첩되어 있으며 하나의 시간이며 같은 시간임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이 과정을 앞서 말했던 청소부의 정체를 시작으로 인물을 포개어 나가는 것이다. 학교를 청소하며 단조로운 일상을 살아가는 청소부가 제이크와 동일인물이라는 사실은 둘(제이크와 루시)의 대화를 통해 알게 된다. 루시의 시점으로 제이크 부모님의 시간이 충돌하는 지점과 제이크가 말했던 대사들의 출처들을 마주하며 제이크의 ‘현재’는 늙은 청소부 할아버지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루시의 정체를 무시할 수 없다. 루시는 이름조차 명확하지 않으며 그녀에게 계속 울려대는 전화들과 물리학자라고 했던 직업의 불확실성(식사 도중 제이크가 화가라고 그녀를 소개한다), 돋보기안경을 쓰는 행위, 이 역시 관객이 감히 판별할 수 없게 만들 정도로 혼합된다. 그렇지만 우리는 다시 유추해 볼 수 있다. 제이크의 집에서 보여지는 이미지들을 통해서, 늙은 노인의 모습으로 보이는 루시를 통해서. 루시는 제이크의 다른 존재인가? 제이크의 환상 속 존재인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가 보는 제이크 역시 환상 속 인물이며 이 모든 시간들이 청소부 할아버지(제이크)가 꿈꾸는 이야기, 어쩌면 그가 이상적으로 바라는 여자 친구는 물론 죽은 부모님과의 식사, 영화에서 보여진 일련의 과정들이 ‘꿈’의 표상이 된다.
제이크의 꿈이자 그가 가장 원하던 것이 실현되며 환상적으로 드러나는 순간은 학교 안에서 다시 이루어진다. 차에서 이루어졌던 대화중 제이크는 뮤지컬 <오클라호마>를 이야기하고 이 대화 중간에 할아버지(제이크)가 청소를 하며 학생들의 뮤지컬을 바라보는 시퀀스들이 삽입된다.
이상의 제이크가 사라지는 순간은 크게 3가지로 나눈 사건 중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 속이다. 제이크는 굳이 쓰레기를 버리러 집으로 가던 도중 자신이 다녔던(할아버지가 청소하는) 학교로 향한다. 쓰레기를 버리고 온다던 제이크는 다시 차로 돌아오지 않는다. 루시는 제이크를 찾기 위해 학교 안으로 들어가지만 늦은 밤 아직도 청소를 하고 있는 할아버지(제이크)를 발견할 뿐이다. 할아버지는 제이크를 같이 찾기 위해 그녀에게 형상에 대한 묘사를 바라지만 루시는 제이크를 묘사하지 못한다.(존재하지 않는 인물이기에)그리고 사라졌던 제이크가 나타난다. 둘의 시간은 다시 거슬러 올라가 제이크가 바랬던 뮤지컬 장면처럼 학교를 활보하며 춤을 춘다. 늘 학교를 청소하는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 할아버지가 꿈꿔왔던 순간이 펼쳐지지만 이 꿈은 허상일 뿐이다. 꿈같은 뮤지컬이 끝나면 다시 일상의 청소부 할아버지로 이야기가 전환된다. 역시 쏟아지는 폭설 속에서 그는 차로 향한다. 할아버지는 차 안에서 집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아닌 입은 옷들을 벗어나간다. 폭설 속 맨살의 모습은 죽음을 향해간다. 죽음을 결심한 그의 앞에 투과되는 이미지는 제이크와 루시, 곧 청소부 할아버지가 노래를 불렀던 털시타운에 대한 애니메이션이다.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돼지가 현실로 등장해 할아버지를 어딘가로 인도한다. 그가 도달하는 곳은 어느 강당이며 그곳엔 노인 분장을 한 제이크가 물리학자로서 연설을 하다가 뮤지컬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제이크를 바라보는 객석 속에는 죽은 부모님과 루시가 존재한다. 모든 것은 불확실하다. 파편적인 서사와 인물들의 시간, 명확하지 않은 공간들. 제이크의 노래가 끝나면 객석들이 환호한다. 그리고 영화 내내 쏟아졌던 폭설은 사라지고 눈이 포개진 차의 이미지가 보인다. 제이크의 죽음 또한 이 이미지로 단언할 순 없다. 하지만 쌓인 눈이 드디어 명확한 시간을 말해주며 우리는 다시 유추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제이크의 환상일까? 그리고 처음 루시(제이크)의 생각을 회귀한다. “때로는 생각이 행동보다 진실과 현실에 가까워” 우리가 마주한 것은 실재가 아니며 불확실하지만 그 어떤 이미지들보다 현실적이며 진실됐다. 또다시 생각한다. 우리는 거짓을 본 것이 아닌 허상을 보면서 진실됨을 느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