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와 건축
건축에서 진리가 있을까? 표현이 너무 거창한가? 아니면 절대적 법칙?
글쓰기와 건축의 유사점이라면 생각하는 바를 약속된 문법에 맞춰 글을 쓰듯 약속된 기호와 선으로 표현하는 점이다.
문장을 쓸 때 표현하는 방법도 다양하다. ‘내 마음은 호수요’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내 마음은 투명하고 깊다’라고 표현하는 이도 있다. 마음을 호수에 빗대어 표현하는가 하면 투명하고 깊다며 직설적으로 쓰기도 한다.
또 산문도 있고 시도 있고 글의 종류, 표현법들이 너무나도 다양하여 어느 하나의 표현이 절대적이라 할 수 없다.
문법적으로 말이 안 되는 문장이라도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글도 존재한다.
그렇다면 건축에서 문법은 있는가? 있다.
모더니즘의 태동이 시작되었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서 세션 운동이 일어나며 불필요한 장식의 배제, 기능만 담는 건물의 본질을 중심으로 형태와 모든 디자인 요소가 간략하게 되었다.
그러나 재밌는 건 표현은 간략해졌으나 그 안에 담기는 내용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기존의 화려했으나 메마른 건축에 시적 감수성이 더해진 것이다.
더 이상 건축은 눈으로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눈과 공간이 맞닥뜨릴 때 일어나는 무언가(피터줌터는 그것을 ‘분위기’로 정의하였다.)를 추구하게 되었다.
이것이 유행처럼 퍼졌다. 그러나 너무 많은 내용을 응축시키려면 그만큼 많은 표현을 직설적으로 다뤄봐야 했다. (몬드리안이나 파카소의 정물화처럼) 그러나 이 과정을 건너뛰는 가짜 건축가들이 많아지자 지루하고 단순한, 그저 하얗고 네모난 콘크리트 덩어리가 나오게 되었다.
그러자 명쾌하고 간결한 다이어그램, 건물의 형태로 기존의 시적 감수성을 버리고 직설적 산문으로 표현하기 시작하는 건축가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건축의 포스트 모더니즘이라 할 수 있으나 개인적으론 네덜란드의 렘 쿨하스, 덴마크의 비야케 잉겔스에 와서야 모더니즘의 실패를 제대로 극복했다 생각한다.
다른 범주로는 다니엘 리베스킨트, 프랑크 게리, 자하 하디드와 같은 건축가들이 있다. 이들은 하나의 양식에 묶이기보다는 각자가 하나의 양식이라 생각한다. 가우디 같은?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지만…
건축의 표현법은 다양하다.
그러나 내 개인적 견해론 기성세대 건축가들이 푹 빠져있는 르 꼬르뷔제, 루이스 칸, 미스 반 데어 로에 등 시적 감수성 충만한 모더니스트의 그림자만 쫓아서인지 표정이 없다. 가끔 나무와 재질을 활용하여 특이점을 주려하지만 그게 또 그렇게 매력이 없다. 근데 또 모두 다 시인이다. 마치 조선시대에 시 한수 읊듯 시가 아닌 산문은 저급한 취급을 받는다. 언제까지 프랑크 게리나 자하 하디드는 우리나라에서 건축가가 아니라 조각가 취급받아야 한단 말인가…
정말 무서운 것은 생각 없이 만드는 건축이다.
시던 산문이던 전달하고자 하는 생각이 명확해야 하는데 그게 없다.
글을 쓰기 전에 생각하듯
건축을 하기 전에도 생각해야 한다.
생각을 천천히 깊게…
그리고 표현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