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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파스 Y Oct 11. 2021

스위스 건축가 피터줌터

한 번의 안타를 위한 백만 번의 스윙


건축을 하는 사람의 피드에서 가끔 알 수도, 이해할 수 없는 사진을 보며 아름답지 않냐는 식의 게시글을 볼 때가 있다. 지적 수련을 많이 쌓은 사람들이라 분명 모두를 납득시킬 이유를 덧붙힐 거라 기대하고 싶지만 (왜냐면 설계과정이 그렇다. 주관적 견해를 뒷받침하기 위한 객관적 근거의 나열.) 대부분 그 설명이 없이 짧은 글, 혹은 문장 한 토막이 전부다. 도대체 무엇을 전달하고 싶은 걸까?  


마침 최근 한 권의 책을 읽어서 그런지 그들이 전하고자 하는 것은 ‘분위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공간이 가진 분위기, 자기에게 영감을 주는 느낌적인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  한마디로 이거다 하고 정의할 수 없는 분위기를 공유하고 싶어 그런 걸 지도 모르겠다. 만약 혼자만 보고 즐기는 것이면 굳이 남들 보게끔 글을 게시하려고 할까?


그에 대한 내 생각은 건축가들은 공유하고 싶은 거다. 본인들이 느낀 그 분위기를, 그리고 비슷한 감성의 사람을 찾아 힘을 얻고 싶은 거겠지. 굳이 설득하려고 하지도 알려주려고 하지도 않는다. 비슷한 지적 수련을 쌓은 이들은 알아보겠거니 내버려둔다. 모르는 사람을 계몽이 덜된 사람 취급하는 건축가도 있다. 지적 교만함, 이기적 감수성의 나눔이다. 분위기를 정의할 수 있을까? 평소에 가지고 있던 기억들과 경험들이 한순간에 마주한 공간으로 인해 터져 나오는 그 감성을! 통일된 어조와 생각으로?


아니 아니..


정의할 수, 아니 정의가 안된다. 왜냐면 그것은 그냥 느낌이다.

건축가라는 생물은 이 느낌을 다루기 위해 철저하게 이성적 경험을 쌓는다. 그리고 알리고, 알려지고 싶어 하고, 정의하고 싶어 한다. 가만히 내버려두지를 않는다.  그러나 아무리 정리를 하고, 객관적 근거를 찾아서 서술을 해도 그 분위기를 정확하게 전달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알아주기를 바란다. 그래서 공유하기를 원한다. 그런데 그 공유가 잘 안된다. 나도 건축을 할수록 더 어려워진다. 피터줌터의 강의에서 ‘분위기’를 다룬 내용이 책으로 나와 읽어보았다. (물리적으로 얇고 가벼워 참 좋지만, 그 내용은 너무 무겁다는 게 함정.)


이성과 철학으로 무장한 그는 신기하게도 감성을 다룬다. 심지어 그것도 잘. 그리고 그 감성을 깨워주는 화학장치로 건축 공간을 구성한다. 공간을 구축하기 전 말로 정의한 단어들이 참 인상적이다. 볼륨, 물성, 스케일, 등 건축에서 어느 정도 통일성을 가지고 정의된 단어들을 공간의 소리, 건축의 몸, 내부와 외부의 긴장이라는 말로 그만의 감성으로 재구성한다.


홀리듯 책을 다 읽고 나면 사진으로만 보고 알 수 없던 그의 공간이 그가 쓴 글처럼 읽힌다. 다시 말해 그 공간의 분위기가 읽힌다는 것이다. 학창 시절에 배운 어떤 식의 건물이라는 단순히 건물의 스타일을 분류하는 것이 아니라, 피터줌터라는 사람이 공유하고자 하는 그 분위기를 알 수 있게 된다.  다시 정의해봐야 한다 나의 건축에서 사용될 단어들을.. 어쩜 그 과정이 앞으로 수년에 걸쳐해야 할 나의 일이 될지도 모른다.


한 번의 안타를 위한 백만 번의 스윙.

한순간의 분위기를 위한 백만 번의 고민과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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