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능과 반기능
이번달에 리옹에 국립암센터연구원이 완공되어 회사가 병원건축만 전문으로 다루는 잡지에 소개가 되었다.
사장단들의 인터뷰가 주 내용이었는데 흥미로운 부분은 코로나 이후 앞으로의 병원설계 방향에 대한 대답이었다. 앞으로의 병원설계방향에 대한 질문의 답이었는데 그 대답을 요약하면 이러했다.
"열린 공간의 필요성인거 같아요. 병원 뿐만 아니라 모든 건축에서 지향해야 할 부분입니다. 아무래도 프로그램이 프로그램(병원)이다보니 특수한 목적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 또한 병원에서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접목시켜야 해요. 공간에 대한 융통성을 추구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이 부분을 읽고 이제 조금씩 프랑스의 건축도 바뀌어 나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술의 도시 파리를 수도로 둔 프랑스라 하지만 그만큼 과학과 기술 또한 못지않게 발달한 나라가 프랑스다. 그 두가지가 접목되어 각 분야에서 상상이상의 결과물이 나왔고 특히 그 두 가지를 동시에 추구하는 건축에서 그 부분은 더욱 부각되었다.
아름다운 형태와 각 실간의 합리적이고도 긴밀한 연결,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기능을 잘 살릴 수 있는 형태, 그렇다. 이것이 프랑스 건축이다. 프랑스는 자동차와 선박을 보며 미래의 공간을 구상한 스위스 태생의 르꼬르뷔제를 자국의 건축가로 배출시킨 나라며 그 후 렌조피아노, 시게루반, 수 후지모토 등의 세계적인 다른 나라 건축가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사무실을 파리에 두게 할정도로 건축가의 철학을 존중하는 매력있는 곳이다.
기능적 공간의 합리적이고 유기적인 결합. 이것이 이들이 공간을 구성하는 기본 이념이며 오늘날에도 상당히 많은 건축가가 이를 바탕으로 공간을 구획한다. 그 가운데 병원은 그야말로 기능의 집대성이 모인 시설이며 환자의 이송, 수술, 회복 등의 단계를 고려한 합리적인 동선계획과 오랜시간 근무하는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병원직원을 위한 공간. 방문객과 환자 관계자를 위한 공간 등 그야말로 다양하면서 꼭 갖추어야 할 기능들이 한데 어우러진 건물이다. 기능을 잃으면 공간의 목적마저 없어지는 건물, 병원이 바로 그러한 기본 이념의 집대성이다.
실은 병원 뿐만 아니라 서양의 모든 건축공간을 관통하는 개념은 이것이다. 모든 실은 각각의 목적을 가지고 있고 목적이 없으면 공간의 존재이유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프로그램만을 가지고 설계를 얼마든지 진행할 수 있고, 단순한 공간미학을 떠나 또 다른 형태의 재밌는 건축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건축설계 시 프로그램적 접근이 아닌 우리나라와 프랑스 건축가들이 건축계획을 할 때 밑바탕으로 가지고 있는 근본적 접근방식의 차이를 다루고 싶기에 여기서는 기능과 반기능으로 나누어 얘기하고자 한다.
따라서 우리 건축의 공간계획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의 전통건축에서 각 집마다 마당이라는 빈 공간을 가지고 있다. 때로는 독립공간으로 때로는 실의 연장으로 사용되어지는 마당은 사용자의 편의에 따라 사용되어진다. 또한 깊은밤 고민이 있거나 사색에 잠긴 주인공이 마당을 서성이는 모습을 드라마에서 심심치 않게 묘사하곤 한다. 이는 마당이 사색의 공간으로 또한 사용되어짐을 나타낸다.
마당은 어찌보면 쓸데없는 빈공간이다. 어렷을 적 민속촌에가서 우리의 전통 주택을 보고 난 후에 엄마에게 던진 첫 질문은 왜 저 마당을 채우지 않고 비워뒀는지 였다.
허나 생각해보면 마당과 같은 우리의 빈공간은 누구에게나 열려 접근할 수 있도록 허락되어진 공간이지만 소유주는 분명 있는 공간이다. 여기서 개인의 사정에 따라 잔치에서 연회가 베풀어지기도 한다.
서양의 나인스퀘어라는 건축개념이 있다 아홉개의 사각형에서 중심에 있는 공간을 제일 중요히 여기고 여기서 모든 공간을 지켜보거나 바라볼 수 있도록한, 다시말해 모든 공간을 지배하고 장악하는 수단으로써의 공간이다. 대표적인 예가 빌라사보아 한가운데 있는 램프다. 건축적 산책로라는 명분이 있지만 이 공간을 거치며 모든 공간을 다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램프는 빌라사보아를 장악하는 수단이다. 그도 그럴게 르꼬르뷔제의 주택에도 하인동선이 따로 있다. 이것은 주택의 모든 공간은 주인이 장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 그 당시의 생활방식이 녹아든 것이다. 빈공간이지만 비워있지 않은 공간이다.
동양의 나인스퀘어는 무엇이 있을까? 나는 정전법이 우리의 전통 나인스퀘어를 잘 반영했다고 생각한다.
가운데 공전을 둘러싼 여덟 개의 사전이 있는 형태, 이 공전은 모두가 주인이고 또 모두를 섬기는 공간이 된다. 다만 실현되기 어려운 조건이 하나 있으니 그것은 모든 백성이 전부 다 공자의 사상을 받아 군자가 되어야만 하는 것.
하지만 이론상으론 우리의 생각과 이상을 잘 반영하는 좋은 것임은 틀림없다.
실제 반영된 공간으론 우리의 마당이 그렇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누릴 수도 있고 주위를 둘러싼 실의 연장이 되어 실을 섬기기도 한다.
마당은 그저 단순히 빈공간이 아니다. 의도적 비움이요, 또한 우연적 쓰임이기도 하다. 이에 관해서는 다음에 이어서 쓰도록 하겠다.
그저 병원 잡지에 실렸을 뿐인데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무는 버릇 때문에 병원에서 마당까지 왔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