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위한 나의 꿈
잔뜩 흐린 구름 사이로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한다.
뚜욱 뚜욱... 체육관 천정으로 한 방울씩 떨어지던 비는 이내 쏴아아... 시원한 소리를 내며 노도(怒濤)와 같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후반 북산의 공격권, 볼배급을 맡은 가드 송태섭은 이내 주춤거리기 시작한다.
"올코트 프레스!!"
적진의 코트에서 압박을 가하는 수비형태. 산왕은 3분 안에 모든 승부를 걸겠다는 각오로 임한다.
볼배급이 전혀 안 되는 상황. 송태섭의 서사가 시작된다.
80년대 생이라면 모를 수 없는 그 만화 슬램덩크.
좋아하는 여자가 좋아하는 농구라 농구를 시작한 강백호. "난 실은 농구 따윈 어찌 되든 좋아 너의 마음만 얻으면 돼!" 하며 시작한 농구가 자신도 모르게 어느새 인생의 전부가 되어있었다.
이게 우리가 아는 슬램덩크 전 권을 통해 알게 된 강백호의 성장이야기다.
그리고 강백호가 농구를 하며 만나는 매력 터지는 동료들과 상대 선수들 그리고 그들을 사이에 있는 각자의 사연과 깊이 있는 자신만의 농구 철학.
슬램덩크의 매력은 주인공이 모든 걸 이끌어가는 단순한 흐름을 떠나 주인공만큼 매력 있는 각각의 주변 인물들도 그들만의 서사가 있어 어느 캐릭터 하나도 그냥 묻히는 경우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때론 조금은 더 세세하게 다뤄줬으면 싶은 아쉬움이 있었다.
그런데 책에서 단지 매니저 한나를 좋아해서 농구를 시작한 줄 알았던, 그래서 강백호와 남다른 유대감을 가진 것이 그의 전부라 생각했던 북산의 가드 송태섭은 이번 영화를 통해 그 틀을 완전히 벗어나 전혀 다른 깊이의 서사를 가지고 있음이 드러났다.
다시 산왕과의 경기, 이러한 압박을 두고도 여전히 볼배급은 송태섭에게 일임하는 안감독. 타고난 눈썰미와 스피드를 갖춘 그는 이내 순간을 놓치지 않고 현란한 드리블로 제쳐 버렸다. 송태섭의 볼 배급으로 다시금 흐름을 살리기 시작한 북산. 아직도 비는 오지만 그 안에서 무너진 팀의 흐름을 복구하기 위해 가장 먼저 송태섭이 각성하기 시작한다.
가드의 역할은 경기의 흐름을 읽고 팀이 공격에 성공할 수 있는 최적의 루트를 살피어 볼을 배급하는 역할을 한다. 필요에 따라 본인이 슛을 하기도 하지만 코트 위에서 팀원을 살피며 상황에 맞춰 경기흐름을 주도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가드다. 따라서 선수의 움직임을 보는 폭넓은 시야, 빈 곳에 공을 찔러 넣는 뛰어난 공간감 그리고 드리블을 활용한 돌파력까지, 경기를 운영하는 그야말로 코트 위 실질적 리더다.
이번 극장판은 슬램덩크 더 퍼스트다. 포지션 넘버 1은 PG(포인트 가드)를 가리키는 숫자다. 이번 극장판은 모든 캐릭터가 각자의 최종 각성을 이루는 마지막 경기 산왕전에서 강백호가 아닌 송태섭의 서사를 다루었다. 어쩜 슬램덩크 더 세컨드가 나온다면 각 인물의 서사를 이러한 포지션 넘버 순으로 다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참고로 포지션 넘버링은 PG, SG, SF, PF, C순으로 1~5번)
송태섭은 자신이 농구를 좋아하게 된 계기 그리고 계속해야만 하는 이유 모두 그가 사랑하는 가족에 있었다.
내가 하는 일을 통해 사랑하는 사람을 웃게 하고 그로 인해 그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것. 그것만큼 기쁜 일이 또 있을까?
사랑하는 어머니의 아픔을 상기 시킴과 동시에 자기가 좋아하는 농구를 통해 결국은 그 아픔을 극복하고 행복을 되찾는 것. 이것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년만화의 진정한 클리셰다.
우리도 살면서 내가 좋아하는 일, 나의 꿈이 때로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힘들게 할 수 있는 잔혹한 현실을 마주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은 그 순간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내 일에 더욱더 매진하는 것이다.
처음의 의도가 어찌 됐는 나의 몸에 각인된 바스켓맨의 본능이 농구선수로서의 성장으로 이끌어 채소연을 기쁘게 하듯 나의 꿈이 때로는 주변 사람을 힘들게 하는 순간이 있어도 그 일에 더욱 정진하다 보면 결국 그 일을 통해 나를 바꾸고 바꾼 나를 통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회복시킬 수 있을 것이다.
안될 것 같은가? 그때는 강백호의 말을 되새겨보자.
안 선생으로부터 정면돌파 임무를 받은 송태섭. 한나는 출전하는 송태섭을 불러 세우더니 손바닥에 무언가를 적는다. 그 메시지를 본 송태섭은 호흡하듯 천천히 그의 각오를 되뇐다. 그리고 꼭 해내리라 다짐한다.
마침내 비가 그치고 구름이 조금씩 걷히더니 해가 나기 시작한다.
나의 꿈을 인정해 주고 지지해 주는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그가 해주는 응원. 꿈을 이루는 과정에 있어 힘을 내는데 이 이상 필요한 것이 없다.
나의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오늘도 자신의 일을 묵묵히, 성실히 해 나가는 이 땅의 모든 포인트 가드들을 응원한다. 당신은 당신의 사람들에게 이미 넘버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