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이 깃든 물건
평소에 기계를 쓰다 망가진 적이 있는가?
사용하던 펜을 더 이상 못쓰게 된 경우가 있는가?
그때 우리의 반응은 보통 에이 이거 왜 이래 이러곤 이내 새것으로 바꾼다.
그러나 만약 사용하던 기계가 꽤 오랜 시간 나의 작업을 함께한 노트북이라면?
소중한 사람으로부터 받은 펜이라면?
우리는 그 물건을 바로 처분할까?
보통은 그렇지 않다. 더 이상 그 기능을 다하게 되지 못했을 때 어떻게든 고치려 한다. 하다가 하다가 안되면 비로소 그때 눈물을 머금고 바꾼다.
왜..?
시간이 흐르며 물건에 쌓인 기억... 추억이 깃들여서 그렇다. 물건의 기능과 사용기간과는 별개로 인간이 주입한 기억을 간직한 물건. 우리는 그것을 추억이 깃든 물건이라 한다. 그것은 단순한 물건 이상의 가치를 가진다. 비록 상점에서 똑같은 제품이 같은 가격에 팔리고 있다한들 그것과는 비교가 안된다. 소중한 물건이란 그런 것이다.
몽블랑이 죽었다. 정확하게는 파괴되었다. 많은 스위스 사람들이 엄청난 슬픔에 잠겼다. 평소에 새와 나무를 좋아하고 아끼던 그의 모습이 사람들에게 각인되어 있어 그 슬픔은 더했다. 재밌는 건 파괴되었다는 표현은 로봇들이 하고 죽었다는 표현은 사람들이 한다는 것이다. 사람에게 쓰는 표현을 로봇에게 쓰고 있는 시점에서 이미 몽블랑은 사람들에게 단순히 산을 지키는 자연보호 로봇 그 이상의 존재다.
인공지능 로봇이 발달하여 사람과 로봇이 섞여 사는 시대가 왔다. 서빙, 가사, 잡일등을 로봇이 감당하고 그 외에 일들은 인간들이 담당하며 사는 시대. 그러나 고성능의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일수록 인간과 비슷해 보인다. 배우고 학습하며 성장하는 것이 탁월하지만 로봇에게 없는 것. 인간의 감정만은 완벽하게 흉내 낼 수 없다. 인간이 로봇에게 자신의 감정을 부여하여 의미를 찾는 경우는 있지만 로봇 스스로가 감정을 가지고 세상을 대하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몽블랑은 각 국에서 만든 최고의 로봇 7 대중 하나였다. 그중 스위스 최고 과학자들이 만들어낸 로봇이 몽블랑이다. 이런 로봇을 파괴할 수 있는 것은 그 이상의 기능을 가진 로봇일 것으로 추측된다. 담당형사 게지히트의 추리다. 파괴현장에서 발견된 단서들을 가지고 추리를 시작한다.
파괴된 순경로봇 건으로 출동한다. 로봇법이 시행된 후 로봇끼리 결혼이 합법화된 상황에서 부인으로 등록된 로봇에게 남편의 부고를 알린다. 듣고도 별 반응이 없지만 이내 밀려오는 알 수 없는 오류가 느껴진다. 그것이 바로 슬픔이라는 감정이다. 슬픔에 대한 정의는 알고 있었지만 이번 사건을 통해 좀 더 정확한 정보가 추가되어 학습이 된 것이다. 로봇은 그저 메모리를 남겨달라는 부탁과 함께 남편을 추억하는 것을 선택한다. 그녀의 인공지능이 더 섬세해진 것이다.
로봇은 인간을 학습하며 좀 더 인간에 가까워질수록 그렇게 고성능의 인공지능이 되어가는 것이다...
몽블랑의 추도식이 열린다.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어 그를 기억한다. 그가 활동했을 당시의 사진과 동영상을 화면에 띄우며 인류에 공헌한 그의 모습을 다시금 각인시킨다.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있고 조용히 그를 추모하는 이들도 있다. 중요한 건 이미 파괴된 로봇 하나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을 쏟아붓고 있다는 것이다.
추억이 깃든 인류의 물건, 인류의 로봇 몽블랑은 그렇게 잠들었다. 이로써 몽블랑은 몽블랑이 되었다. 고성능의 인공지능이나 봉사로봇이 아닌 그냥 몽블랑.
이렇게 인간은 자신의 감정을 대상에 주입함으로 물건을 물건 이상의 존재로 받아들인다.
그렇다면 로봇은 어떨까?
로봇은 인간의 감정을 학습함으로 인간에 가까워질 수 있을까?
인간과 가장 비슷한 로봇을 완벽한 로봇이라 한다.
그렇다면 완벽한 로봇은 과연 무엇일까?
-계속-
덧) 난 평소보다 격앙되어 있다. 너무 좋아하는 만화 플루토가 애니화가 되어 나왔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무라사와 나오키의 작품을 정말 좋아하는데 음악활동 이력도 있는 그의 만화를 보면 에피소드마다 등장하는 음악은 과연 어떤 소리일까 궁금한 점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노스 2호의 에피소드에 나온 음악과 소리가 너무 궁금했는데 과연 스토리에 있어 미치는 영향이 컸다. 특히 마지막 장면은 정말 압권. 그리고 장면마다 적절히 추가되는 배경음악도 정말 굿!
데츠카 오사무의 원작을 흩뜨리지 않으면서 그 만의 시각과 감성을 잘 녹여 들여 훌륭한 영화 한 편을 만들어 냈다. 만화를 보면서 영화 같다고 생각했는데 애니메이션을 보니까 그냥 드라마를 보는 기분이 들었다.
정말 꼭 한번 봐보기를 추천한다.
14년 전에 나온 만화를 토대로 만들었지만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울림이 정말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