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갈 집에 사람이 있다는 것

집학사전-기다림

by 이재준
"기다림은 절망이 아니라 희망이다. 집은 우리가 무언가를, 누군가를 기다릴 수 있게 해주는 안전한 항구와 같은 것이다."

- 헤르만 헤세, 『데미안』


어린 시절 학교에서 돌아와 집 앞에 다다르면 대문 앞에서 벨을 눌렀다. '누구세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 하면 '띠링!'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마당에 들어서면 부엌 창문으로 보이는 엄마의 모습이 있었다. 매번 손을 흔들어 반겨주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기다림은 떠나보내는 것과 맞이하는 것의 양면을 모두 가지고 있다. 아침에 가족을 배웅하며 집은 저녁의 재회를 기다린다. 그 기다림이 있기에 떠나는 사람도 마음 편히 갈 수 있다. 돌아올 곳이 있다는 확신,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안도감. 이것이 집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이다.


기다림에는 신뢰가 필요하다. 떠난 사람이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 약속한 시간에 올 것이라는 확신. 집에서의 기다림은 그래서 불안이 아니라 안정이다. 집이라는 확고한 기반 위에서 우리는 안심하고 기다릴 수 있다.


그래서 집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는 시간은 외롭지 않다. 오히려 설렌다. 가족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저녁 준비를 하고, 친구가 오기를 기다리며 집을 정돈하고, 새로운 하루를 기다리며 아침을 맞이한다. 기다림은 수동적인 시간이 아니라 능동적인 준비를 연습하는 감정 훈련과 같은 것이다.


결혼하고 아이가 태어난 후 기다림의 의미는 더욱 깊어졌다. 아기가 낮잠에서 깨어나기를 기다리고, 첫걸음을 기다리고, 첫 말을 기다렸다. 그 모든 기다림은 조급함이 아니라 기대였다. 아이의 성장을 기다리는 시간 자체가 부모 됨의 본질이었다. 집은 그 기다림을 품어주는 요람이 되었다.


집은 계절도 기다린다. 겨울에는 봄을 기다리고, 여름에는 가을을 기다린다. 창밖 나뭇가지에 새싹이 돋기를 기다리고, 첫눈이 내리기를 기다린다. 집과 함께 기다리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자연의 리듬을 배운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고, 기다림 끝에는 변화가 온다는 것을.


밤에 잠들기 전, 우리는 내일을 기다린다. 침실에서 눈을 감으며 새로운 아침을 기대한다. 이 기다림에는 희망이 있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 문제가 해결될 내일, 기쁜 일이 있을 내일. 집은 우리에게 안전하게 내일을 기다릴 수 있는 오늘을 기꺼이 내어 준다.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집은 살아있다.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집은 을씨년스럽다. 안전하게, 희망을 품고, 사랑하는 마음이 기다리는 곳. 집은 그렇게 만남의 낙원이 된다.


tempImageCzANy5.heic 기다림이란 살아있다는 존재의 이유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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