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은 집의 눈이다

집학사전-창문

by 이재준

어린 시절 나는 늘 창문 앞에 서 있었다. 유리 너머로 펼쳐지는 세상은 마치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 같았다. 비 오는 날이면 빗방울이 창을 타고 흘러내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그 물줄기 하나하나가 하늘이 집에게 보내는 편지라고 상상했다. 창문이 단지 밖을 보는 것이 아니라, 안을 들여다보게 하는 거울이기도 하다는 것을 그때는 나는 깨닫지 못했다.


새 집으로 이사할 때마다 나는 가장 먼저 거실 창문의 방향과 풍경을 확인했다. 동쪽 창문은 상쾌함을, 서쪽 창문은 나른함을, 남쪽 창문은 따뜻함을, 북쪽 창문은 고요함을 선사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풍수 같은 감각일까? 아니면 오래된 경험의 고착일까? 나는 지금도 그 답을 찾고 있다.


계절이 바뀔 때면 창문은 가장 먼저 그 소식을 전해주었다. 봄이 오면 창틀 사이로 새싹의 연두색이 스며들고, 여름이면 무성한 녹음이 창을 가득 채웠다. 가을엔 낙엽이 창유리에 부딪치며 짧은 인사를 건네고, 겨울이면 서리꽃이 창에 신비로운 그림을 그려놓았다. 창문은 그렇게 시간의 화가가 되어 계절마다 다른 그림을 선보였다.


프랑스인들은 창문을 '하늘의 문'이라 부른다고 한다. 창문을 통해 우리는 하늘과 만나고, 구름과 대화하며, 별빛과 인사를 나눈다. 창문은 지상에 사는 우리가 천상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인지도 모른다.


전통 가옥에서 창호지가 주는 불투명한 감각은 서양의 투명한 유리창과 다르다. 한지로 만든 창호지는 빛을 부드럽게 걸러서 들여보낸다. 그 빛은 날카롭지 않고 따뜻하며, 마치 어머니의 손길처럼 집 안을 감싼다. 세상과 완전히 차단되지도, 완전히 노출되지도 않는 적당한 거리감. 그 절묘한 균형 속에서 우리는 묘한 느낌의 안식을 찾을 수 있었다.


창문 앞에 서서 밖을 바라볼 때, 우리는 단순히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본다. 창에 비친 나의 모습과 창 너머의 세상이 겹쳐지는 순간, 나는 내가 이 세상의 일부이면서 동시에 이 세상과 구별되는 존재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밤이 되어 창에 불빛이 켜질 때, 창문은 밖에서 보는 사람에게 집 안의 따뜻함을 보여준다. 창문은 이렇게 안에서 밖을 보는 창구이면서, 동시에 밖에서 안을 엿보는 무대가 된다.


나는 때때로 생각한다. 만약 인생에도 창문이 있다면 어떨까?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수많은 경험들, 그중에서도 특별히 우리의 마음을 열어주는 순간들이 바로 인생의 창문이 아닐까? 사랑도, 이별도, 성공도, 실패도 모두 우리 삶의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과 바람이다.


창문의 모양을 선택한다는 것은 삶의 형태를 선택한다는 것과 같다. 어떤 창문을 통해 세상을 바라볼 것인가? 투명한 유리창을 통해 날카롭고 선명하게 볼 것인가, 아니면 창호지를 통해 부드럽고 은은하게 바라볼 것인가?


창문 앞에 서 있으면 나는 깨닫는다. 집은 단순히 머무는 곳이 아니다. 집은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이며, 삶을 해석하는 하나의 틀이다. 그리고 창문은 그 해석의 열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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