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락은 기억이 쌓이는 곳이다

집학사전-다락

by 이재준

어릴 적 외할머니 집 다락방에 오르는 가파른 사다리는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통로 같았다. 삐걱거리는 나무판자를 밟으며 한 계단씩 오를 때마다, 나는 현재에서 점점 멀어져 과거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내 기억 속 다락방은 그렇게 시간이 쌓이는 저장소였다.


다락은 집의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다. 마치 집이 하늘에게 내민 손 같기도 하고, 땅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은신처 같기도 하다. 그곳에서 우리는 일상의 무게로부터 잠시 해방된다. 아래층의 생활 소음은 희미해지고, 지붕 너머로 들려오는 빗소리나 바람 소리만이 또렷해진다.


다락방에는 항상 먼지와 오래된 냄새가 배어 있다. 그것은 더러움이 아니라 시간의 냄새다. 박스에 담긴 낡은 사진들, 더 이상 입지 않는 옷들, 언젠가 읽으리라 생각했던 책들이 만들어내는 그리움의 향기. 그 냄새를 맡으면 나는 자연스럽게 과거로 돌아간다.


어느 집을 봐도 다락방은 가족의 박물관이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그린 그림, 결혼식 때 받은 선물들,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유품들이 조용히 잠들어 있다. 이 물건들은 더 이상 일상에서 쓰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는 애매한 것들이다. 다락은 그런 애매함을 품어주는 곳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바슐라르는 다락을 '합리적 사고'의 공간이라 했다. 지하실이 무의식과 본능의 영역이라면, 다락은 의식과 이성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작가들이 다락방을 서재로 사용했다. 고요하고 독립적인 그 공간에서 그들은 상상력을 펼쳤다.


내가 초등생 때 부모님은 다락방을 레고 놀이터로 만들어 주셨다. 경사진 천장 아래, 원형밥상 하나와 방석하나만 놓고서 정해진 형태가 아니라 이것저것을 만들고 부시고 했다. 그곳에서 바라본 하늘은 유독 가까워 보였다. 레고를 하고 있을 때 다락방은 마치 우주의 한가운데 있는 나만의 b612였던 것 같다.


다락방의 작은 창문은 특별하다. 일층이나 이층에서 보는 것과 완전히 다르다. 지붕들과 굴뚝들, 안테나들이 만들어내는 도시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새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내려다보는 기분이다.


겨울밤, 다락방에 혼자 앉아 있으면 지붕 위로 떨어지는 눈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 소리는 아래층에서는 절대 들을 수 없는 특별한 음악이다. 포근하면서도 쓸쓸한, 그래서 더욱 진실된 겨울의 소리. 믿을 수 없겠지만, 그땐 그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요즘 아파트에는 다락이 없다. 한동안 새로 짓는 주택에도 다락을 만들지 않았다. (정확히는 건축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효율성과 경제성을 추구하는 현대 건축에서 다락방은 사치로 여겨진다. 하지만 나는 생각한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다락이 필요하다. 기억을 보관할 곳, 꿈을 꿀 곳,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곳이 필요하다.


다락방은 집의 비밀이자 가족의 추억이다. 그곳에 올라가는 순간, 우리는 어린아이가 된다. 그리고 그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다시 바라본다. 다락방은 그렇게 우리에게 또 다른 관점을 선사한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세상의 모습, 그리고 과거에서 현재를 바라보는 시간의 풍경을.


나는 지금도 다락방을 그리워한다. 언젠가 다시 다락이 있는 집에서 살고 싶다. 그곳에 나의 기억들을 쌓아두고, 가끔씩 올라가서 그것들을 하나씩 꺼내보고 싶다. 다락방에서 만나는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그 둘이 나누는 조용한 대화를 들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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