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학사전-집수리
"집은 우리와 함께 늙어간다. 우리가 집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집이 우리를 고쳐준다."
- 크리스토퍼 알렉산더, 『패턴 랭귀지』
학생 때는 집을 완성된 건축으로만 이해했다. 설계가 끝나고 준공이 되면 집은 완결되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 하지만 실제로 집에서 살아보니 집은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변화하는 것이었다. 매일매일 조금씩 변하고, 해마다 조금씩 늙어가고,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손길을 필요로 했다.
집의 수리는 집과의 대화다. 집이 보내는 신호를 읽고, 그에 맞는 처방을 해주는 것. 낯선 냄새가 나면 환기가 필요하다는 것이고, 배수가 막히면 관리가 필요하다는 신호다. 청소가 필요한 경첩, 교체가 필요한 전구, 세척이 필요한 에어컨과 환풍기. 이 모든 것들이 집이 보내는 메시지다.
흥미로운 것은 집을 수리하면서 나 자신도 변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완벽하게 고치려고 애썼다. 말끔하게 새것처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은 것은, 완벽한 수리보다는 적절한 수리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집의 나이와 상태에 맞는, 그리고 내 능력과 예산에 맞는 수리 말이다.
오래전 할아버지의 한옥을 수리했던 대목장이 해준 말이 있다. "집은 완전히 새롭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원래의 모습을 되찾아주는 것"이라는 그의 말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집의 수리는 복구가 아니라 회복이어야 한다는 것. 좋은 집수리는 집이 가진 고유한 성격과 서사를 존중하면서 고쳐주는 것이다.
수리를 하다 보면 집의 속살을 보게 된다. 벽지를 뜯으면 그 아래 오래된 벽이 나오고, 욕실을 수리하다보면 내부의 설비가 보인다. 집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어떤 재료를 썼는지, 어떤 손길을 거쳤는지를 알게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집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집의 흠집과 상처들은 시간의 증거다. 아이들이 뛰어놀며 남긴 흔적, 가구를 옮기다 생긴 자국, 문을 세게 닫다 생긴 찌그러짐. 이런 것들을 모두 완벽하게 지워버리면 집의 역사도 함께 사라진다. 적당한 흔적은 남겨두는 것이 좋다. 그것이 집의 개성이고 매력이다.
수리를 하다 보면 집이 얼마나 복잡한 시스템인지 깨닫게 된다. 하나를 고치면 다른 곳에 문제가 생기고, 그것을 또 고치면 또 다른 곳이 말썽을 부린다. 마치 나이 든 사람의 몸과 같다. 하지만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집도 생명체처럼 늙어가는 것이니까.
이제 나는 집이 만드는 소소한 문제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대한다. 집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대화하는 시간인 듯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사를 부르지 않고 수리를 마쳤을 때의 그 뿌듯함은 새 집을 샀을 때와는 또 다른 만족감을 준다.
집과 함께 늙어간다는 것은 집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그 변화에 맞춰 나도 변해가는 것이다. 집이 나를 키워주듯, 나도 집을 돌봐준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집 생활이 아닐까. 완벽한 집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집과 함께 완성되어 가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