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떠나야만 알게 되는 것

집학사전-그리움

by 이재준
"집을 떠나는 자만이 집의 진정한 의미를 안다. 그리움은 거리에 비례하고, 사랑은 이별에 비례한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 『말테의 수기』


군 제대 후 독립을 하면서, 나는 자유로움에 취해 있었다. 부모님의 간섭도 없고, 정해진 시간도 없고,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그 해방감이 좋았다. 하지만 한 달쯤 지나자 이상한 감정이 밀려왔다. 뭔가 허전하고, 뭔가 그리운 느낌.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내가 그리워하는 것은 부모님도, 친구들도 아닌 바로 '집' 그 자체였다는 것을.


건축을 공부하면서 나는 집을 이론적으로만 분석했다. 평면도와 입면도, 구조와 재료, 기능과 형태. 하지만 집덕후로 30년을 살아오면서 깨달은 것은, 집의 진정한 가치는 물리적 조건이 아니라 감정적 기억 속에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기억은 집을 떠나야만 선명해진다.


어린 시절 집의 기억들이 가장 또렷하다. 아침을 깨우는 거실의 음악소리, 부엌에서 나는 계란 프라이 냄새, 마루에 비치는 햇살의 각도, 밤에 들려오는 안방의 텔레비전 소리. 그때는 당연한 일상이었는데, 집을 떠나고 나니 그 모든 것들이 소중한 추억으로 변해 있었다.


첫 자취방에서 보낸 밤들을 기억한다. 혼자 밥을 해 먹으면서 문득 어머니의 손맛이 그리웠고, 혼자 잠들 때면 가족들의 소리가 그리웠다. 집에 있을 때는 답답하게 느껴졌던 것들이 이제는 따뜻한 추억이 되어 있었다.


외국으로 여행을 갔을 때 느낀 그리움은 더욱 강렬했다. 아름다운 이국의 풍경을 보면서도 문득 우리 집 거실의 평범한 소파가 그리웠고,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면서도 집에서 먹던 엄마의 요리가 떠올랐다. 물리적 거리가 멀수록 감정적 거리는 더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서울이 아닌 신도시로 이사했을 때의 경험도 잊을 수 없다. 새 집은 이전보다 크고 좋았지만, 뭔가 낯설고 어색했다. 벽의 색깔도, 방의 배치도, 심지어 햇빛이 들어오는 방향까지 모든 것이 달랐다. 몇 달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집은 단순히 공간이 아니라 시간이 축적된 곳이라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집의 그리움은 감각과 연결되어 있다. 특정한 냄새를 맡으면 순간적으로 어린 시절 집으로 돌아간다. 엄마가 끓여주던 미역국 냄새, 아버지가 쓰시던 애프터 스킨 냄새, 장마철 습한 공기의 냄새. 냄새는 시간을 순간이동시키는 마법 같은 힘이 있다.


집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나이가 들수록 더 깊어진다. 어릴 때는 집을 벗어나고 싶었고, 젊었을 때는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점차 집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집은 내가 돌아갈 수 있는 가장 안전하고 유일한 곳이라는 것을.


부모님이 사시던 집을 헐고 새집을 짓기 위해 모두 비어진 집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방 하나하나 그 어릴 적 기억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빈 집에 앉아 있으니 온갖 기억들이 밀려왔다. 이 방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의 시간들, 이 거실에서 가족과 함께 보낸 무수한 저녁들, 이 마당에서 장미꽃 보며 뛰어놀던 어린 시절. 집은 그렇게 내 인생의 무대였고, 이제 그 무대가 사라지려 하고 있었다.


한국 사람들에게 '고향'이라는 개념(지금은 '본가'라고 부르는 듯)이 특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고향은 단순히 태어난 곳이 아니라, 그리움의 원형이 자리한 곳이다. 아무리 좋은 곳에서 살아도 집만큼 편안한 곳은 없다. 왜냐하면 고향집에는 내 모든 기억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은 이사를 자주 한다. 더 좋은 조건을 찾아서, 더 편리한 곳을 찾아서 끊임없이 이동한다. 하지만 이사를 할 때마다 우리는 조금씩 뿌리를 잃는다. 새로운 집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이전 집에 대한 기억은 점점 희미해진다.


그래서 나는 요즘 청년들이 안쓰럽다. 자신만의 집을 갖기 어려운 현실 속에서 끊임없이 임시거처를 전전하며 살아가는 그들에게 '집의 그리움'이라는 감정이 과연 있을까? 그리워할 집이 없다면 그 사람의 감정적 뿌리는 어디에 있을까?


집의 그리움은 때로 환상일 수도 있다. 기억은 종종 현실을 미화시키기 때문이다. 실제보다 더 따뜻했고, 더 편안했고, 더 행복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 환상마저도 소중하다. 인간에게는 그리워할 수 있는 곳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요즘 나는 집을 볼 때 단순히 현재의 상태만 보지 않는다. 그 집에서 살게 될 사람들이 훗날 어떤 그리움을 가지게 될지를 상상해 본다. 이 거실에서 펼쳐질 가족의 대화, 이 부엌에서 만들어질 추억들, 이 침실에서 꾸게 될 꿈들. 집은 그렇게 미래의 그리움을 준비하는 곳이기도 하다.


집을 떠나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동시에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떠나야만 집의 진정한 가치를 알 수 있고, 멀리 있어야만 집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다. 그리움은 집이 우리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인지도 모른다. 물리적으로는 떨어져 있지만 감정적으로는 더욱 가까워지게 만드는 마법 같은 감정.


나이 들수록 집을 소유한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다. 집의 등기 권리증 같은 종이문서보다 그 집을 그리워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 것이라는 걸. 그리고 그 권리는 누구도 소유할 수 없는, 오직 나만의 것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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