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은 마음이 만나는 곳이다

집학사전-부엌

by 이재준
"부엌은 집의 심장이다. 거기서 사랑이 만들어지고, 추억이 요리되며, 가족이 탄생한다."

쥘리아 차일드, 『프랑스 요리의 기술』


엄마는 요리를 좋아하셨다. 그래서 부엌은 항상 분주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그곳에서는 끊임없이 무언가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아침의 콩나물국, 점심의 김치찌개, 저녁의 생선구이. 그리고 그 사이사이 준비되는 밑반찬들과 간식들까지. 어린 나에게 부엌은 마법이 일어나는 곳이었다. 평범한 재료들이 엄마의 손을 거치면 따뜻한 사랑으로 변하는 신비로운 공간이었다.


건축에서 배운 좋은 부엌은 조리, 세척, 저장의 3대 기능을 효율적으로 배치하는 것이었다. 작업 동선을 최소화하고, 수납공간을 최대화하고, 환기와 채광을 고려하는 것. 그것이 부엌 설계의 전부인 줄 알았다. 하지만 살아오면서 깨달은 것은, 부엌의 진정한 가치는 요리의 효율성이 아니라 마음의 따뜻함에 있다는 것이었다.


어릴 적 우리 집 부엌에는 문이 있었다. 간식을 먹고 있을 때 손님이 찾아오면, 엄마는 내가 편히 먹을 수 있도록 살짝 문을 닫아주셨다. 가끔 엄마가 요리하다가 “도와줄래?” 하고 부르면, 막 만든 음식을 한 입 넣어주시며 “맛있지?” 하고 물으셨다. 내 기억 속 부엌은 늘 엄마와 내가 마주하는, 설렘과 따뜻함이 깃든 곳이었다.


내가 처음 독립해서 살았던 집의 부엌은 다소 작았다. 가스레인지와 싱크대옆의 조리대가 전부였다. 작은 냉장고는 붙박이로 따로 놓여 있었고, 조리 공간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 작은 부엌에서 나는 엄마가 손수 적어주신 레시피로 나만의 요리를 만들어 먹었다. 서툴렀지만 나름 뿌듯하고 든든했다.


결혼 후 처음 꾸민 부엌은 상부장을 없애고 창가에 선반을 만들고, 식기세척기를 마련했다. 30년 전이니 나름 파격적이었다. 나도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실감이 들었다. 아내와 함께 장을 보고, 함께 요리하고, 함께 식사하면서 부엌은 가족이라는 마음의 따뜻함을 담는 큰 그릇이 되었다.


우리나라 대부분 집에는 프랑크 프루트 키친 스타일의 개방형 주방이다. 거실과 부엌이 하나로 연결된 공간. 근대 문화의 영향이기도 하지만, 부엌이 더 이상 여성만의 공간이 아니라는 인식의 변화이기도 하다. 최근 아일랜드식 주방이 유행하면서 가족 모두가 함께 요리하고, 함께 정리하는 공간이 되었다. 좋은 변화다.


나는 다른 이의 집에서 부엌과 식탁을 중요하게 본다. 그 집의 부엌을 보면 그 집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요리를 즐기는 사람인지, 가족과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인지, 집에서 보내는 시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부엌은 그런 것들을 말해준다.


좋은 부엌이란 무엇일까? 최신 설비가 갖춰진 부엌? 넓고 화려한 부엌? 정답은 없다. 그곳에서 만들어지는 음식에 사랑이 담기고, 그곳에서 나누는 대화가 진실하고, 그곳에서 보내는 시간이 행복한 부엌이라면 더할 나위 없는 부엌이다. 크기나 시설보다 중요한 것은 결국 사람의 마음이니까.


tempImage1yJ8OX.heic 엄마가 만들어준 음식을 기다리는 아이의 눈망울은 맑고, 밝고,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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