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과 새로움사이 그 무엇

집학사전-이사

by 이재준
"우리는 집을 떠나지만, 집은 우리를 떠나지 않는다. 이사는 장소의 이동이 아니라 자아의 확장이다."

- 이타로 칼비노, 『보이지 않는 도시들』


어린 시절 이사를 할 때마다 아버지는 텅 빈 집 한가운데 삼발이를 놓고 가족사진을 찍으셨다. 그 순간의 나는 새로운 집과 방, 그리고 낯선 동네가 마냥 신기하고 설레기만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돌아보니, 아버지가 왜 그런 사진을 남기셨는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한 장의 사진 속엔 그때 함께 있던 가구와 물건, 그리고 사라져 버린 시간의 온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어, 마치 잊었던 기억을 다시 불러내는 듯하다.


군 제대와 함께 한 첫 독립 이사는 설렘이었다. 부모님 집을 떠나 내 공간을 갖는다는 것. 비록 작은 전셋집이었지만 그곳은 온전히 나만의 궁전이었다. 이사 짐이라고 해봤자 옷가방과 책박스 몇 개와 책상과 의자, 그리고 새로 산 제도대가 전부였다. 사실, 무엇이 없는지 몰랐고 앞으로 채워갈 것들에 대한 질문만 가득했다.


사회 초년생 시절에는 2년마다 이사를 했다. 나무가 많은 공원을 찾아서, 수영장과 가까운 곳을 찾아서 이사를 다녔다. 이사 때마다 짐은 점점 늘어만 갔다. 업체를 부르지 않을 수 없었고, 중요한 짐만 포장해 놓고 종종거리며 하루 종일 짐과 가구가 옮겨가는 것을 따라다녀야 했다. 힘들었지만, 매번 새로운 생활에 들떠 있곤 했다.


결혼 후 첫 이사는 전혀 다른 차원이었다. 두 사람의 짐이 합쳐지고, 추억이 섞이고, 두 가정의 문화가 합체되었다. 이사 짐을 정리하면서 서로를 더 깊이 알게 되었다. 아내가 소중히 간직해 온 물건들, 내가 버리지 못하고 모아둔 것들. 무엇을 가져가고 무엇을 버릴지 결정하는 과정이 곧 함께의 삶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아이가 태어난 후의 이사는 또 다른 의미였다. 이제는 단순히 부부만의 편의가 아니라 아이의 교육과 환경을 고려해야 했다. 학군, 놀이터, 병원, 안전. 모든 것이 아이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이사는 그렇게 가족의 무게중심이 이동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돌아보면 첫째의 초등학교 시절을 보내야 하는 이사의 결정이 제일 어려웠다.


이사의 가장 힘든 부분은 물리적 노동이 아니라 감정적 작업이다. 떠나는 집에 대한 아쉬움, 새로운 집에 대한 걱정, 변화에 대한 막연함. 이 모든 감정들이 뒤섞여 복잡한 심정을 만든다. 특히 오래 살았던 집을 떠날 때는 더욱 그렇다. 그 집의 모든 공간에 추억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이사는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이사는 단순한 주거지 이동이 아니라 계층 이동의 상징이기도 하다. 더 큰 평수로, 더 좋은 입지로 이사하는 것은 사회적 성공의 지표로 여겨진다. 하지만 그런 외적 기준보다 중요한 것은 그 집에서 얼마나 행복할 수 있느냐는 내적 기준이다.


하지만, 지인에게 들은 해외의 이사 문화는 달랐다. 서양에서는 한 집에서 오래 사는 것을 미덕으로 여긴다. 이사는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만 하는 것이지, 더 나은 조건을 찾아 자주 이동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그들의 집에는 세대를 이어 물려받은 가구들과 물건들이 많다.


나이가 들면서 이사는 점점 더 힘들어진다. 짐이 많아지고, 관계가 복잡해지고, 변화에 대한 저항이 커진다. 하지만 동시에 이사의 의미도 더 깊어진다. 각각의 이사가 인생의 중요한 장(章)을 구분하는 표지가 된다. 결혼 전의 집, 신혼집, 아이를 키운 집, 그리고 노후를 준비하는 집.


요즘은 평생 한 집에서 사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직업의 이동성이 높아지고, 주거 비용이 증가하면서 이사는 불가피한 선택이 되었다. 하지만 이 불안정성 속에서 우리는 집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집은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관계와 기억의 집합이라는 것을.


이사하면서 버리는 물건들을 보면 늘 착잡하다. 한때는 꼭 필요해서 샀던 것들, 소중히 간직했던 것들이 이제는 짐이 되어 버려진다. 이것이 삶의 무상함을 보여주는 것일까? 아니면 끊임없이 새로워지려는 삶의 역동성을 보여주는 것일까? 이젠 작은 창고를 빌려 다음 이사할 때까지 한 번도 꺼내지 않은 것들은 버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모든 것을 버릴 수는 없다. 어떤 물건들은 반드시 가져가야 한다. 아이의 첫 신발, 결혼식 때 받은 선물, 돌아가신 부모님의 유품. 이런 것들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기억의 앵커다. 이것들이 있어야 새 집에서도 우리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다.


이사는 끝나지 않는 여정이다. 우리는 평생 이사를 반복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성장한다. 매번 새로운 공간에 적응하면서 유연성을 기르고, 떠나보내는 과정에서 비움을 배우고, 새로 시작하면서 용기를 얻는다. 이사는 그렇게 성장하는 삶의 교과서이기도 하다.


진정한 집은 장소가 아니라 마음속에 있다는 것(home where the heart is)을 이제 온몸으로 느낀다. 우리가 이사를 몇 번을 가든, 진짜 집은 우리와 함께 움직인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곳,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집이다. 이사는 단지 장소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 집의 정의를 다시 쓰는 것이다.


tempImage4JLB1H.heic 어디든 집이 있는 곳이 바로 축제의 공간이다. Movable feast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회고록 제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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