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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itect shlee Mar 18. 2016

건축가의 주유천하 IV 서울 경복궁 4/4

열넷. 조선의 제1법궁 경복궁 4

조선의 제1法宮법궁, 경복궁 마지막 네번째이야기

; 조선 후기의 경복궁


왕권의 복원과 조선의 부활을 꿈꾸었던 후기조선의 이야기를 해 본다.

오늘은 건청궁, 향원정, 집옥재, 태원전에 대하여...


경복궁의 후원 깊숙한 곳에는 건청궁을 비롯하여 향원정·집옥재·태원전 등의 건물이 있다.

이들 건물은 경복궁의 정문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최근 7~8년전에 개방되어서인지 일반인들이 쉽게 찾지 않는 공간들이다.

그러나 이곳들은 1800년대 후반 고종시대를 상징하는 공간이자 근대사의 영욕이 어우러진 곳으로써 그 역사적 의미가 작지가 않다.


못다 이룬 꿈이 숨쉬는 乾淸宮건청궁

조선의 치욕적역사의 현장

1863년 고종(1852~1919)이 열두살의 나이로 왕위에 등극하자, 어린 고종을 대신하여 흥선대원군(1820~1898)은 섭정을 하였다.

흥선대원군은 왕실의 위상을 회복하기 위하여 임진왜란 이후 폐허로 방치되어 있던 경복궁 중건사업을 진두지휘하였고,

1868년 고종은 경복궁으로 돌아왔다.

흥선대원군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고종은 점차 입지를 확보해가는 노력을 전개했고 재위 10년으로 접어들면서 親政친정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이때 경복궁 중건으로 많은 전각의 건설이 완료되었지만, 고종은 사비를 들여 새로이 건물을 하나 완성하였다.

이곳이 바로 궁궐속의 궁궐 乾淸宮건청궁.

이후 건청궁은 고종시대를 대표하는 공간이 되었다.

건천궁의 공사는 궁궐의 내탕금으로 비밀리에 진행 되었고 후에 건립사실이 알려지면서 반대상소문이 올라왔지만 고종은 뜻을 굽히지 않고 공사를 진행시켰다.

역대 임금의 초상화를 봉안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만들었지만 이미 어진을 봉안하는 장소가 있었던점을 감안하면 건청궁은 고종 자신을 위한 공간이었던것이다.

하늘은 푸르고(乾淸宮건청궁) 땅은 안녕하여(坤寧閤곤녕합) 길이 평안하기(長安堂장안당)를 바라던 고종의 염원을 담았던것이다.

건청궁은 궁궐건축이 갖는 격식보다는 사랑채·안채·행랑채를 갖춘 사대부집에 가깝게 만들어 임금이 쉴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한 것도 트이한 점이다.

사랑채인 長安堂장안당에는 고종이 거처했으며, 안채인 坤寧閤곤녕합에는 명성황후가 거처했습니다.

복수당에는 상궁들의 거처와 곳간등이 있었다.

단청을 하지않은 소박한 건물의 형태는 순조때 지은 연경당이나, 헌종때 지은 낙선재와 비슷한 구조입니다.

건청궁은 용도를 떠나 대원군의 그늘에서 벗어나 스스로 국정을 주도하면서 세운 건물이라는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볼 수 있다.

경복궁의 내전 일부가 불에 타 고종이 창덕궁으로 移御이어하면서, 건청궁은 건립 초기에는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다.

1885년(고종22) 고종이 건청궁에 보금자리를 틀면서, 근대사의 중심 무대가 되었다.

고종은 이곳에서 근대 문물수용에 관심을 기울였다.

(아래 글 중  최초의 전깃불에 대해 이야기 올렸다)


1887년3월6일 우리나라 최초로 전기를 들여온 것이 대표적이다.

에디슨 전기회사가 발전기를 설치하면서 전등에 불이 들어왔는데, 이는 자금성에서 전기를 받아들인것 보다 시기가 앞섰다.

1888년에는 건청궁내의 관문당이라는 건물을 고쳐 한국 최초의 서양식 2층건물인 관문각으로 만들었다.

러시아 건축가 사바틴이 설계한 이 건물은 명성황후가 외국 손님을 접견하는 곳으로 빈번하게 이용됐었다.

명성황후 역시 건청궁에 거처하는 동안 일본의 압력에서 벗어나고자 러시아등 서양 여러나라와 활발한 외교정책을 폈다.

그러자 조선을 발판으로 대륙진출의 꿈을 꾸고있던 일본은 명성황후를 제거할 계획을 세웠던것.

1895년 음력8월20일(양력10월8일) 일제는 건청궁 곤녕합에서 명성황후를 살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을미사변.

승정원일기는 기록한다.


칙령을 내리기를,

“지난번 변란 때에 왕후가 있는 곳을 알지 못하였는데, 시간이 점점 흐를수록 그날 崩逝붕서하였음이 증거로 보아 틀림없다. 개국 504년8월20일 묘시에 왕후가 곤녕합에서 승하하였노라.” 하였다

 - 승정원일기 고종32년10월15일


일제는 주모자 48명을 증거불충분으로 무죄방면하고 현장증거는 폐기한다.

이로써 건청궁은 한국근대사 최대의 비극을 상징하는 장소가 되었던것이다.

황후의 죽음을 접한 고종은 1896년2월 신변에 위협을 느껴 미국공사관으로 옮겨 가려다 실패하고 1896년2월11일 새벽에 변복을 한채 세자만 데리고 궁을 빠져나가 러시아공사관 가게 된다.

이것이 「아관파천」으로, 이후 경복궁은 왕이 살지 않는 공간으로 남겨져 역사 속으로 깊히 가라 앉게 된다.

1935년에는 25주년 기념박람회장으로 사용되면서 철저히 훼철됐다.

1939년에는 건춘문 앞의 본관건물이 좁다는 핑계로 이 자리에 조선총독부 미술관 별관을 지었고 이 미술관은 광복 이후 민속박물관으로, 1995년부터는 전통공예 전시관으로 쓰다가 1998년 철거되었다.

이후 빈 공간으로 남겨져 있던 이곳은 경복궁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건청궁 건물이 복원되면서 2007년부터 시민들에게 개방되었던 것이다.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다 香遠亭 향원정


건청궁 남쪽에는 향원지라는 연못의 인공섬위에 만든「香遠亭향원정」이 있다.

향원정이라는 이름은 주돈이의 愛蓮說애련설 가운데 연꽃을 예찬하면서 香遠益淸향원익청(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다)라는 구절에서 따와 지었다.

경회루가 사신을 접대하거나 국가적 잔치를 베푸는 공식적인 성격을 갖춘 곳이라면, 향원정은 왕족의 사적인 휴식공간입니다. 향원정의 모태는 세조때 세운翠露亭취로정이었다.

<세조실록>에는 적는다.


경복궁의 後苑후원에 新亭신정을 落成낙성하였다.


취로정은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다가, 건청궁을 지을 무렵 다시 조성하면서 향원정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향기에취한 다리 라는 뜻을 가진 醉香橋취향교는 향원정의 북쪽에 무지개 다리로 놓았습니다.

취향교는 한국전쟁 때 불타 없어졌는데, 1953년 복원할 때는 다리를 남쪽에서 향원정으로 갈 수 있게 다시 놓았다.

건청궁과 향원정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관람객의 편의를 위해 잘못 복원한 것이고.

섬의 북쪽에 건청궁 시절의 다리 유구가 남아 있어 그 흔적을 알려줄 뿐이다.

한때 궁궐을 격에 맞지않는 홍보수단으로 활용한 적도 있었다.

1980년에는 한국에서 열린 미스유니버스 선발대회의 수영복 경연대회를 이곳에서 열었다.

세계적인 관심을 받긴 했지만 어설픈 이벤트 해프닝이었다.


근대화의 꿈 集玉齋 집옥재

향원정의 서북쪽에는 청나라양식의 요소가 많아 이국적인 향기를 풍기고 있는 건물이 보인다.

중심건물인

集玉齋집옥재(옥같이 귀한 보배를 모은 서재)를 중심으로하여,

서쪽에 八隅亭팔우정(세계 모든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출발점이 되는 정자),

동쪽에 協吉堂협길당(서로 힘을 합치면 앞날이 밝아지는 집으로 고종의 침전으로도 사용)이 유리창이 있는 복도로 연결되어 하나의 건물을 이루고 있다.

팔우정은 팔각 누각으로 기둥상부에 청나라풍의 화려한 낙양각을 달았다.

반면 협길당은 고유한 조선식 건물로 온돌방을 두어 휴식장소로 사용했다.

세 건물은 복도를 통해 연결되며, 각각의 특색을 지니면서도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었다.

이 같은 양식과 자재는 당시로써는 최신식이었다.

팔우정, 집옥재, 협길당. 원래는 1881년(고종18)에 창덕궁 함녕전의 별당으로 지은 건물이었는데, 1888년 고종이 창덕궁에서 경복궁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이 전각들도 함께 옮겨온 것이었다.

고종은 이 건물들에 어진을 봉안하고 서재로 사용하였다.

특히 집옥재를 새로운 사상의 도입공간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고종의 의지가 컸다.

고종대에 스승인 박규수의 청으로 청나라에서 3만권의 장서를 구입해 집옥재를 가득 채웠다.

지금 이 도서는 서울대 규장각에 보관돼 있다.

1893년(고종30) 한해에만 영국·일본·러시아·오스트리아 등 외국 공사들을 다섯 차례나 접견한 기록이 <고종실록>에 나타난다.

고종은 집옥재를 서양의 선진문물을 수용하는 중심공간으로 삼고 국왕이 주도하는 근대화의 길로 나아가려 했던 것이다


이제 길었던 경복궁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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