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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itect shlee Apr 22. 2016

건축가의 역사 읽기 IV 근현대사

네번째. 한국전쟁 7/7 한국전쟁의 수혜자들

400만여 명 이상 살상된 3년간의 한국 전쟁에서 누가 이기고 졌느냐는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전쟁으로 인한 가장 큰 피해를 본 것은 역시 북한정권과 남북한민중들일 것이다. 


북한은 전쟁기간 중 미 공군기에 의한 

26만 발의 중대형 폭탄과 2억 발의 탄환, 

약 40만 발의 로케트탄, 

100m 사방 거리의 모든 물체를 순식간에 태워버리는 약 150만 발의 네이팜탄의 공격으로 도시는 말할 것도 없고 농촌까지 지상에 돌출되어 있는 모든 것은 다 파괴되어 북한에 남은 것이라곤 평양의 만경대와 산이 깊은 회천군에 있었던 지하공장 달랑 하나 남았다고 한다. 

전쟁이 끝난 10년 후까지도 북한의 평야 한 복판 안 곳곳에는 폭격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고 한다. 

또한 북한은 전쟁 중 50만 명의 군인 전사자와 100만 명 이상의 민간인이 희생되었고 미군의 원폭투하 위협에 월남한 피난민 또한 수 십만 명에 달해 심각한 노동력의 부족까지 겪어야만 했다. 

식량을 비롯한 생존에 필요한 모든 물자와 생산시설이 절대 부족한 북한민중들의 고난은 휴전이후 10여년 이상 계속되었다. 

평양 1953
한국전쟁으로  큰 혜택을 보고 기사회생한 정치집단과 국가들도 있다. 


무능과 부패로 붕괴 직전에 몰렸던 이승만, 자유당 정권은 한국전쟁이 되살아 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전쟁을 계기로 미국의 지원하에 60만 대군으로 급성장한 군사력을 배경으로 남한 민중의 저항을 완벽하게 분쇄할 수 있게 되었으며 범람하는 미국의 군수물자와 구호물자는 부패한 이승만 정권의 배를 채워주고 유지하게 하여 주는 힘의 원천이 되었다. 

미국 또한 한국전쟁이라는 한판의 격전을 통하여 사회주의권에 대항하는 제국주의 진영의 공동전선을 강화 시킬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 2차 대전 이후 사그러져 가는 군수 산업을 다시 이르켜 세우고 제국주의적 이익을 사수할 수 있는 군사력을 대폭 강화 시킬 수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누가 뭐라해도 한국전쟁으로 가장 큰 혜택을 받은 나라는 일본이다. 


한반도에서 벌어진 3년간의 피의 대향연은 패전국 일본을 완전히 부활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일본은 미국이 한반도에서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후방 병참기지로서 전쟁물자를 만들어 팔고 용역을 제공하는 말 그대로 다 남는 신나는 장사를 한국전쟁 3년 내내 즐길수 있었다. 

일본은 매년 전체 수출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7억 4,600만 달러 이상을 한국전쟁에서 벌어 들였다. 

한국전쟁이 일본의 경제력을 되살렸을뿐 아니라 한국전쟁중인 1951년 9월 8일 San Francisco Peace Conference 샌프란시스코 강화회의를 통해 일본과 미국은 평화조약에 서명하고 군사동맹까지 맺었다.

San Francisco Peace Conference
Japan-US Security Treaty, 1951

이로써 일본은 전범국이라는 멍에를 당당히 벗고 미 제국주의 진영의 동맹국으로서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되었다. 

또한 휴전협정이 조인되면서 유엔군의 깃발아래 참전하였던 미군을 제외한 다른 참전국 군대들은 본국으로 철수를 하였지만 적지 않은 규모의 미군은 여전히 유엔군 깃발을 달고 이땅에 눌러 앉는다. 

미국은 1957년 7월 1일 도쿄에 있던 Far East Command; FECOM 극동군 사령부를 폐지하고 유엔군 사령부UNC를 서울로 옮겨와 미8군 사령부 본부를 겸하게 하였다. 

Far East Command
유엔군 사령부UNC 수석대표와 이승만

그 결과 미8군 사령관은 유엔군 총사령관 그리고 나중에는 한미 연합군 사령관을 겸하면서 실질적인 대한민국의 군 통수권을 행사하게 되었던것이다. 

그리고 미군은 1958년 초부터 honest john missile 어네스트 존 미사일 부대, 핵포병대인 Pentomic Division 팬터믹 사단 등 한반도에 본격적으로 핵 병기를 배치하면서 핵전쟁 훈련에 돌입하였다.

이것은 휴전협정에 의해 합의한 바 있는 외부로부터의 병력과 군사장비의 유입을 방지한다는 원칙을 명백히 위반하는 것이다. 

Honest john missile 어네스트 존 미사일
Pentomic Division 팬터믹 사단
Conference of Disarmament 제네바 정치협상회의

휴전협정에 명시된 남북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Conference of Disarmament 제네바 정치협상회의를 고의로 파기시킨 미국은 1954년 7월 말 부터는 아예 대놓고 한반도의 군비를 증강하고 한국군을 증강하는 등 휴정협정을 위반하더니 1957년 6월 21일에는 비록 미군에 의하여 늘 무시되긴 하였지만 한반도 군사력 증강에 늘 장애가 되던 휴전협정에 명시된 군비축소 조항을 아예 폐기한다고 공식 발표하였다. 

이와 같은 미국의 현대적 군사장비의 반입과 한국군의 증강을 위한 일련의 조치들은 중국 봉쇄정책의 일환으로 이루어졌으며 베트남에서의 군사적 개입과 같은 시기에 같은 맥락으로 이루어니던것이다. 

그 수법 또한 한국과 베트남에 관련된 국제협정을 똑같이 무시하면서 이루어졌음이 재확인 되었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한국과 베트남은 하나의 군사적 목표 즉 중국 봉쇄정책을 수행하기 위한 두 개의 전선인 것이다. 

미국은 결국 두 개의 전선 모두에서 처참한 패배를 당함으로써 그들이 목표하였던 장개석 괴뢰정부를 통한 중국 대륙의 완전한 정복이라는 허황된 꿈을 접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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