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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itect shlee Jun 01. 2016

건축가의 주유천하 VI 충청 대흥동헌

열일곱. 예산 대흥동헌과 아문

東軒동헌.

고을의 守令수령이 정무를 집행하던 건물을 말하는데, 생활처소인 內衙내아(서헌이라고도 함)와 구분되어 보통 그 동편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동헌이라 불리게 되었다.

고을 주인이 정사를 돌보는 높은 집.


조선은 지방을 부,목,군,현으로 나누어 통치허였다.

현감은 종 6품으로 사또가된다.

지방 관아의 육방은 이방(총무), 예방(교육, 문화), 공방(토목), 형방(치안), 호방(세무), 병방(군역)으로 중앙정부의 육조와 같다.

대흥동헌은 정면 6칸(14.4m), 측면 2칸(4.8m), 처마높이 3.3m의 홑처마 팔작지붕의 목조 기와집으로  예산지역에 현존하고 있는 유일한 관아건물이다.

조선시대에는 대흥군의 현청으로 객사에는 정청 3칸, 동대청 12칸, 은사정 14칸, 서헌방 16칸, 하마대 4칸이 있었으나 현재는 동헌과 아문 2동만이 남아 있다.


상량문의 기록에의하면 대흥향교(1405년)와 함께 永樂영락5년(1407년)에 창건되었다.

숙종때에 대흥이 군으로 승격될 당시, 康熙강희42년(1703년)에 중수.

현재의 동헌 건물은 일제의 강점 후 대흥면이 예산군에 통합되면서 동헌 건물을 대흥면사무소로 개조하여 해방 후까지 사용하다가 대흥면사무소를 현 위치로 신축하면서 1979년에 해체 복원되었다.

대흥동헌은 조선시대부터 있던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 읍치(邑治)의 옛 모습을 상상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충남 예산군  대흥면 동서리 106-1

충청남도유형문화재 제174호

현판은 任城衙門임성아문.

대흥의 백제 때 지명이 任存城임존성이고 신라 경덕왕 때 줄여서 任城임성이라 하였다.

衙門아문은 官衙관아의 문이란 뜻이다.

백제부흥운동의 격전지.

대흥면사무소 방향으로 가다보면 산이 보인다.

이 산이 대흥의 鎭山진산인 鳳首山봉수산이다.

봉수산에 있었던 산성이 任存城임존성이다.

사비(부여)가 나당연합군에게 함락당한 후에 백제 유민들이 이곳으로 와서 3년 반 동안 백제 부흥운동을 벌였던 곳이다.

둘레 2,450m의 석축산성으로 봉수산을 둘러싸고 있었다.

동헌 앞에 있는 비각.

이성만 형제 효제비.

충남유형문화재 제102호


이 형제는 부모가 살아 있을 때에는 맛있는 음식으로 봉양하고,

봄과 가을에는 술과 떡을 하여 부모에게 드리고,

친척들과 기쁘게 나누어 먹었으며,

부모가 죽은 뒤에도 형은 아버지 묘를 지키고 동생은 어머니 묘를 3년 동안 지켰다.

또한 형제간의 우애가 지극하여 아침에는 형이 아우의 집으로 가고 저녁에는 아우가 형의 집으로 가서 아침밥과 저녁밥을 같이 먹었으며, 한가지 음식이 생겨도 형제가 함께 있지 않으면 먹지 않았다.

이성만 형제의 의좋은 행실을 왕에게 보고하자 조정에서 정문을 세워 표창하고 자손에게 영원히 모범이 되게 하기 위해 173자가 기록된 비를 세웠다.

이 비는 원래 가방교 옆에 세워져 있었는데 예당 저수지 수몰로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동헌 건물을 보고 뒤편으로 가면 흥선대원군의 지시로 세워진 척화비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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