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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itect shlee Jun 15. 2016

건축가의 주유천하 II 경기 자운사원

열. 파주 紫雲書院 자운서원

1584년 율곡선생이 운명하고 1615년(광해군 7) 지방 유림의 공의로 율곡 이이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하여 창건되어 1650년(효종 원년) 紫雲자운(자줏빛 구름)이라는 賜額사액을 받았다.

1713년(숙종 39) 金長生김장생과 朴世采박세채를 추가로 배향하여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을 담당하다가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역사속에서 잠자고 있던 용을 깨운건 대한민국이 아닌 북한의 김일성이었다.


박통시절 중정부장 이후락은 김일성과 만났고 율곡선생의 묘를 묻는 김일성의 이야기가 박통에게 보고되고 역사는 복원된다.

박통은 위인전에도 교과서에도 화폐에도 드러내며 율곡선생의 홍보를 대대적으로 하게되지만…

1970년 복원된 율곡선생의 위폐를 모신 자운서원은 경기도기념물 제45호,

율곡선생이 후학을 양성했던 북한의 소현서원을 국가보물로 지정했다.

5,000원과 50,000원 화폐 도안 율곡선생과 사임당 - 이종상선생 그림

자운서원은 우람한 느티나무 두 그루가 양쪽에서 지키고 있다.

느티나무를 지나 솟을삼문을 밀고 들어가면 높은 지대 위에 아담하게 대지 위에 사당을 앉히고 사괴석 담장을 둘러 삼문 앞 계단으로 오르도록 설계하였다.

사당은 6칸으로 翼工系익공계 형식 팔작지붕이다

서원에 들어서면 왼편의 낮은 언덕에 율곡의 덕을 기리는 紫雲書院廟庭碑자운서원묘정비가 있고, 오른편에 기념관, 기념관 위쪽에 경기도 교육위원회가 운영하는 율곡 교원연수원, 동쪽으로 올라가면 서원과 묘지가 있다.

자운서원 묘정비(경기도 유형문화재 제77호)는 1683년(숙종 9) 당대의 명필 김수증이 예서체로 비문을 써 세웠고, 오른쪽 기념관엔 율곡 이이와 특히 그의 어머니 사임당 신씨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자운산 깊숙이 들어가면 율곡의 부모, 율곡 내외를 비롯해 한 가계의 묘 13기가 집결해 있다.

율곡선생의 묘
사임당의 묘

파주시는 최근 38억을 투입해 자운서원 주변 정비하고 이름도 율곡선생유적지로 바꿨다.

매년 8월 中丁중정(두번째 丁日)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이율곡, 이퇴계.

조선의 15,000여 선비 중 두명만 이름부르지 않고 호로 부리운다.

이퇴계는 재테크도 후학농사도 성공했지만, 이율곡-김장생-송시열-윤증으로 전개되던 서인은 이미 몰락했다.


조선시대 문과는 총 804회가 시행돼 15,000명 선발했다.

문과 전 단계에 걸쳐 수석을 차지한 유일한 사람은 이율곡으로 그는 무려 9관왕이었다.


이율곡의 9관왕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는 조선시대의 과거 시험 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문과에 급제하려면 최초 응시에서부터 최종 합격까지 모두 9단계를 거쳐야 했다.

먼저 문과 응시 자격시험이라고 볼 수 있는 생원시(진사시)부터 치러야 하는데 생원시는 1차 시험인 초시와 2차 시험인 복시 두 단계로 나뉜다.

두 단계를 통해 생원시에 통과하면 성균관에서 공부할 자격이 주어지고 이곳에서 일정 기간 수업을 받은 후 비로소 문과 시험을 치를 수 있다.

문과시험은 또 다시 초시와 복시가 있는데 이들 모두 초장‧중장‧종장 등 세 단계로 나뉘어져 모두 6시험이 있으며 여기에 통과해야만 마지막으로 임금 앞에서 치르는 최종 시험인 전시에 참가할 수 있다.

전시는 당락이 아닌 순위를 정하는 절차였지만 모두 9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이 모든 시험을 장원으로 통과한 사람이 바로 율곡 이이다.


이율곡의 본관은 덕수.

이순신장군도 덕수.

동시대를 산 영웅.

더운 날씨지만 아직 가보지 못했다면 역사탐방도 나쁘지 않을것 같다.

경기도 파주시 법원읍 동문리 산 5-1

경기기념물 제4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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