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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itect shlee Jul 01. 2016

건축가의 주유천하 IV 서울 문묘

스물둘. 공자와 4대성인, 명현18현 위패를 모신 문묘

최근 왕의 문묘 참배시 이동경로인 거동길이 복원되었다.

창경궁 집춘문에서 문묘 어삼문에 이르는 임금의 길.

서울에 살면서도, 논어, 맹자를 이야기하며 문묘 안 가본 사람이 의외로 많다.

동숭동 대학로에서 공연보기전 한번쯤 들러 보는건 어떨까…

文廟문묘


공자 이래 2000여년 儒學유학을 발전시켜 온 중국 및 우리나라 대학자들의 位牌위패를 奉安봉안하여 祭享제향하는곳이 文宣王廟문선왕묘(孔子廟공자묘)의 약자인 文廟문묘다.


왕으로 추증된건 당태종이 공자 사후 왕의 반열에 오르게 한것이다.

그래 문성왕묘를 문묘라고 하는 것이고…

廟묘는 무덤(墓묘)이 아니라 위패를 모시고 제사드리는 곳이란 뜻이다.

문묘는 동아시아 전반에 분포해 있으며 공자를 중심으로 제자들의 위패까지 함께 모신다.

대 성 전
동 재

서울 文廟문묘는 공자와 그의 제자 및 한국와 중국의 大儒대유의 위패를 모시고 봉향하는 사당 건물로 정전인 大成殿대성전과 그 앞 마당 좌·우의 東廡동무와 西廡서무, 그리고 三門삼문(神門)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문묘 대성전에는 공자를 비롯하여 四聖사성, 十哲십철, 六賢육현 그리고 한국의 十八賢십팔현을 봉향하고 있다.


四聖사성이란 공자외에 顔子안자(回,子淵), 曾子증자(參,子輿), 子思자사(伋,子思), 孟子맹자(軻,子車)를 말하고

十哲십철은 민손閔損,염경冉耕,염옹冉雍,재여宰予,단목사端木賜,염구冉求,중유仲由,언언言偃,복상卜商,전손사顓孫師를 말하며

六賢육현은 주돈이周敦颐,정이程颐,장재張載,정호程顥,소옹邵雍,주희朱熹를 가리킨다.

한국의 十八賢십팔현은 최치원,설총,안유,정몽주,정여창,김굉필,이언적,조광조,김인후,이황,성혼,이이,조헌,김장생,송시열,김집,박세채,송준길을 이야기한다.


문묘는 1398년에 창건했다.

문묘의 설계자는 삼봉 정도전이고 시공자는 개국공신 황희석의 노비 출신으로 성실함을 인정받아 공조판서에 이어 세종때는 종1품 의정부 참찬을 지낸 박자청이다.


건립된 지 얼마 되지 않은 1402년에 화재로 소실되어 1407년에 중건되었다.

1410년 문묘에 廟庭碑묘정비를 세웠는데, 비문은 세종때 대제학을 지낸 卞季良변계량이 지었는데 비문에 의하여 창건 당시 성균관·문묘 건축의 내용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廟庭碑 묘정비

그 후, 1490년까지 진사식당ㆍ전사청ㆍ존경각 및 향관청의 건물과 비ㆍ비각ㆍ반수 수축 공사 등의 정비작업이 계속되었으나 연산군 때에 문묘는 제 구실을 다하지 못하고 짐승을 기르는 장소로 또는 놀이터로 변했다.

이것을 1506년 6년까지 모두 정비하였으나 임진왜란으로 거의 모두 소실되었다.

1601년부터 39년 사이에 거의 원 모습으로 중건되고 영조 때까지 모든 시설이 거의 완비되었으며 1869년(고종6) 대수리가 이루어져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나 조선 말기에 이르러 성균관·문묘는 개화 분위기에 밀려 제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1887년에는 성균관에 經學院경학원이 설치되고, 1894년 갑오경장 이후에는 성균관이 學務衙門학무아문의 成均館及庠敎書局성균관급상교서국으로 되어 교육기능을 상실하였으며, 이후 여러 번 학제가 바뀌면서 享祀향사(제사를 올리는 일) 기능만 유지되고 있다.

서울문묘 일원은 성균관대학교 교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에 일곽을 이루며 위치하고 있는데 조선시대에는 한성부 숭교방崇敎坊(한성부 동부 12방 중의 하나)이었던 곳이다.

문묘 일원은 크게 남쪽의 대성전 일곽과 그 후편의 명륜당 일곽으로 나뉘었다.

대성전 일곽에는 공간제향(祭享)을 이루는 문묘시설의 건물군이 있고, 명륜당 일곽에는 시설교학(敎學)의 건물군들이 배치되어 있다.

대성전은 남향을 하였다.

정면 5칸, 측면 4칸.

대성전 기단 앞 마당 동쪽과 서쪽에는 三綱五倫삼강오륜을 상징하는 三綱木삼강목과 五倫木오륜목이라 이름한 향나무가 심겨 있고 기단 아래에는 절개를 상징하는 대나무가 심겨져 있다.


대성전 정면 앞 마당 좌·우엔 정면 11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동무와 서무가 배치되어 있어 제사를 준비한다.

이곳엔 원래 10철을 제외한 공자의 72제자를 비롯하여 漢한,唐당,宋송,元代원대의 賢人현인과 한국의 18명현 등 112명의 위패를 從享종향했지만, 광복 후 전국유림대회의 결의로 한국 명현 18인의 위패는 대성전에 모시고 나머지 94인의 위패는 묻었다.

천연기념물 제59호 은행나무

천연기념물 제59호로 지정되어 보호 받고 있는 은행나무는 수령 498년으로 1519년 대사성 윤탁이 안마당에 심었다.

현재 이 은행나무의 키는 21m, 둘레 7m.


공자에게 술잔을 올리는 석전대제는 중요무형문화재 제85호로 지정되어 있다.

석전은 공자의 사망일인 5월 11일과 탄신일인 9월 28일 술 한 잔 올리는 거다.

석전대제

전국 234개 향교마다 교육시설이 있다.

거기서 초, 중등생 예절교육도 하고, 주부유도회도 대중 활동을 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안 온다. 영어 학원 다니기 바쁘고 수능, 내신 챙기는 게 급하다는데 어느 부모가 아이를 향교에 보내겠나.

심지어 유림들조차 손자손녀 향교 보내기 어렵다고들 하는 실정이다.

- 제29대 성균관 관장, 최근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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