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rchitect shlee Oct 05. 2016

건축가의 주유천하 III 경상 양동마을향단

스물둘. 경주 이야기 04. 천년왕국 신라에서 조선까지, 양동마을 향단

조선의 제11대 왕 중종은 손중돈에게 淸白吏청백리 하사한다.

손중돈의 둘째 딸은 여강 이씨 이번에게 출가하고 임신한 딸이 몸을 풀기 위해 친정인 양동마을의 書百堂서백당(매일 참을 인忍자를 백 번씩 쓰는 집)을 찾았다.


아들 출산. 이름 이(언)적.

분가해서 양동마을 입구에 觀稼亭관가정(곡식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듯 자 손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는 집)건립.

외할아버지 손중돈이 직접 이언적을 가르친다.

이분도 동방오현의 한 분이다.

본관은 여강(여주).

호는 晦齋회재(땅 속은 어둡지만, 그곳에 뿌리를 깊이 박은 나무가 밝은 세상에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는 뜻)

1514년 문과에 급제하고 1530년 사간원 司諫사간(임금에게 잘못을 간언하는)에 이른다.

식년문과를 통과한 사림은 삼사(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에서 들이대다가 살아남아야 당상관이 될 수 있다.

당시대의 간신 김안로가 살아 돌아와 이조판서에 봉해진다.

이를 반대하는 이언적은 삭탈관직되어 낙향한다.

香壇향단

마침 재력가이던 小室소실 양주 석씨가 여러 동의 건물을 증축하고 낭군을 기다리고 있고.

소실 집에 도착하니 사방으로 우뚝 산이 에워싸이고 냇가를 면한 명당이다.

산의 이름을 작명을 한다.

저 동쪽의 산 이름은 산이 빛으로 뒤덮였으니까 華蓋山화개산으로,

자줏빛 옥처럼 생겼으니까 서쪽의 산 이름은 紫玉山자옥산,

남쪽의 산 이름은 산이 춤추는 학처럼 생겼으니까 舞鶴山무학산,

땅에 떨어진 도덕을 새로 일으켜 세워야 되니까 북쪽의 산 이름은 道德山도덕산으로 명명한다.

집을 휘감고 도는 저 맑은 냇물의 이름은 산골짜기에 흐르는 시냇물인 溪流계류에 자줏빛 옥이 굴러가는 냇물이라는 의미의 자계紫溪가 되고.

내다보이는 풍광이 좋아야해서 경사지에 지어지고 향단의 평면은 ㅁ자가 아닌 유례없는 달 월月자가 된다.

이언적이 타지로 부임해가면서 동생 이언괄에게 물려주었는데 그의 손자 이언관의 호가 香壇향단(향기 가득한 제단)이라서 집 이름이 향단이다.


회재는 동쪽의 자계가 바라보이는 안마당에 사랑채 건립하고 옥류정사玉流亭舍라는 현판을 걸었다.

경치 좋은 곳에 들어서는 한가히 거처하는 집에는 정사를 붙이는 법으로 현실과는 거리를 두겠다는 선비의 의지를 표명하는 거죠.

원래 이 사랑채의 정식명칭은 獨樂堂독락당(독차지하면 큰 재앙을 불러들일 수 있지만 사람들과 즐거움을 누리면 참다운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입니다.

독랑당 대청에 앉아 자계를 바라보니 담장으로 막혀 시냇물이 안 보여서 담장을 가로 2.15m 세로 1m 크기로 뚫고 살을 몇 개 세운다.

살창 속으로 시냇물이 흐르면서 이 살창은 한 폭의 수채화가 되어 살아 움직이고.

시냇물을 거닐던 이언적은 범상치 않은 바위들 모습에 감탄하고 역시 이름을 짓는다.


첫 번째 바위 이름은 마음을 맑게 해주는 바위니까 澄心臺징심대,

두 번째 바위이름은 갓끈을 풀어 놓고 바람을 즐겨는 바위니까 濯瓔臺탁영대,

세번째 바위이름은 돌아감을 노래하는 바위니까 詠歸臺영귀대,

네번째 바위 이름은 물고기 노는 것을 보며 즐기는 바위니까 觀魚臺관어대,

다섯번째 바위이름은 마음을 깨끗이 해주는 바위니까 洗心臺세심대로...


마침 관어대가 독락당 마당에 걸쳐져 있습니다.

그래서 관어대 위에 정자를 올려 물고기와 함께 논다.

溪停계정

독락당 솟을대문 들어서면 하인들 숙소인 행랑채인 敬淸齊경청제(청빈함을 공경하는 집).

집 이름에 제齊자를 붙인건 재계할 제齊자를 넣어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다.

일자형으로 9칸의 행랑.

전국에서 가장 큰 행랑채.

다른 양반 가옥과 달리 행랑지붕너머로 사랑채에서 풍광을 즐긴다..

낮은 담장이 연속되면서 각 영역은 독립된 프라이버시를 확보한다.

조선시대 때 담장은 각 영역에 사는 식솔들의 위계를 나타내고 각자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해 주기 위해 만드는 것이다.

아무리 하인이라도 잘 때라도 편히 자야 하고 아녀자도 그렇고 도둑들 막으려고 담장 쌓는게 아니다.

안채 지나면 御書閣어서각(임금에게 하사받은 책을 보관하는 도서관)

각閣자를 붙이는건 가장 위계가 높은 건물에 쓴다.

옥산정사 현판은 퇴계의 글씨다.

퇴계는 회재의 정신적인 제자.

1537년 김안로가 죽자 다시 관직에 나아가 전주부윤(지금의 전주시장).

1542년 예조판서(지금의 교육부장관)를 지내고 노모 봉양을 이유로 사직한다.

이언적의 효성에 감복한 중종은 노모를 가까이 모실 수 있도록 경상도 관찰사에 임명하고 노모를 모실 향단 건립 하사한다.

1573년 경주의 옥산서원에 제향되고

1610년 문묘에 종사되어 조선을 빛낸 18현 등극한다.

양동마을 입구에서 이 마을 부의 원천인 안강평야를 묵묵히 내려다보는 향단은 건립 당시엔 99칸이었지만 지금은 51칸만 남아 있다.

보물 제 412호.



매거진의 이전글 건축가의 주유천하 II 경기 추사박물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