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문 XVI 三國志演義

삼국지연의...오류를 덧씌우다.

by Architect Y

대부분 삼국지연의(일반적으로 칭하는 삼국지)정도는 읽는다.

여기서 질문하나 던지자면...


유비가 정통일까, 조조가 정통일까 (우선 손권은 빼고)


혹자가 묻는다.

유비의 촉이 정통성이 있고 조조의 위는 불의의 왕조가 아니냐고.

그렇지 않다.

유비의 촉은 후한의 광무제 유수(劉秀25-57)가 유씨(劉氏)라는 이유로 성공하자 유씨임을 내세운 유비(劉備)에게 정치인들이 몰려 들었으니 바로 관우요, 장비요, 제갈공명 등이다.

유비는 조조와 같은 민중 위주의 정치적 혁신을 단행하지 못하였고 한(漢), 유(劉)를 고수한 보수파였다.

조조는 우선 위대한 시인이었다.

그의 시는 민중의 아픔을 사실적으로 대변하였고 그래 建安文學건학이라 한다.

그는 시에서 민중의 참상을 읊었던 것처럼 백성을 위하는 정치를 하였다.

둔전제를 시행하고 문벌보다 능력 위주로 사람을 뽑는 구품중정제를 시행하였다.

무엇보다 난세를 평정하고 천하를 통일했다.

이처럼 위대한 인물이 세운 나라를 부하였던 사마의가 배신하고 조조 가문을 도륙했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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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뭐가 잘못되었을까.

소설 <삼국지연의>는 위대한 漢 제국을 꿈꾸던 명대에 원을 조롱하고자 만든 것이다.

작가 나관중은 원말명초 인물이다.

진수의 정사 <삼국지>는 위(魏) 정통론임에도, <삼국지연의>는 촉(蜀) 정통론이다.

남송의 주자는 사마광의 <자치통감>을 비판하면서 촉정통론을 펼친다.

조조의 위는 본받을 나라였으나 유비의 촉은 그런 측면이 거의 없었다.

동북아의 내노라하는 선비들까지도 주자와 소설 <삼국지>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역사오류.


그릇된 역사의 이해로 문학작품을 짓곤 한다.

최근에는 바로 풀어가려는 학자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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