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오늘 새로이 몇 글자를 알았는가
올해도 수능이 끝났다
이제 수능을 치른이들은 진학을 위한 마지막 관문인 응시만이 남았다
대학에 진학하고, 그리고...
몇해전 중학 동창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일이 있다.
고등학교 부부교사.
성적이 가장 우수했던 일부(법조계나 의료계 종사)를 제외하고 내가 만나본 학창시절 우등생의 길은 대부분 교사였다.
그런데 멈춰 있다.
수능이 있던 어제 퇴근길에 태극기 집회에 참석하려는 지긋한 연배의 그룹이 보였다.
버젓이 임산부석을 차지하고 큰소리로 떠들어대며 목적지를 기다린다.
받아드릴 그 어떤 여유도 없다.
12년간 충분히 했으니 더 이상 충분하다고 생각해서 배우기를 멈추는가,
처음부터 배움을 보기 어려워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는가...
滄溪창계 林泳임영이 던진 물음을 생각한다.
어린아이는 하루에도 몇 글자씩 새로 알아 가는데,
어른은 알아가는 게 얼마나 되는가.
小兒一日猶新知幾箇字 소아일일유신지기개자
長者所知幾何 장자소지기하.
- 日錄 滄溪集 일록 창계집, 林泳임영
나이가 어려서는 끊임없이 배운다.
가정에서도 배우고 사회의 교육 과정을 통해서도 배운다.
이 배움을 통해 성장하고 어느덧 어엿한 성인이 된다.
그렇게 성인이 되면 꼭 다녀야 하는 학교도, 꼭 배워야 하는 교과서도 없으며 부모도 더 이상 이걸 배우라느니 저걸 배우라느니 일일이 참견하지 않는다.
삶을 살기 위해 경제 활동에 종사하며 어느덧 배움과 멀어진다.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은 새로운 무언가를 알아간다는 것이고, 새로운 무언가를 알아간다는 것은 성장해 간다는 것이다.
새롭게 알아가는 것이 없으면 성장은 멈춘다.
성장을 멈춘 삶의 과정은 크게 보면 죽음으로의 완만한 길을 걷는것이다.
성인이 되었음은 어려서 주위에서 배움의 대상이나 방식이 부여되었다면 이제부터는 그것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다는 것일 것이다.
어른에게 앞에서 말한 선택의 자유를 얼마나 누리고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한다.
옥은 쪼아 다듬지 않으면 그릇을 이루지 못하고, 큰 그릇은 만드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