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Coffee break

coffee break...女子여자란 극존칭

; 여성의 날에 바라보는 일제의 잔재.

by Architect Y

어제(3월8일)는 1908년 열악한 작업장에서 화재로 숨진 여성들을 기리며 미국 노동자들이 궐기한 날에서 비롯된 여성의 날, 111주년.

여전히 여권을 동등하다고 표현하기는 힘들다.
가야 할 길도 멀다.

잘못 알고 있는 상식 중 하나가 우리나라의 양성 간 불평등이 서양보다 심하다는 것이다.
같은 시기의 상황을 비교해 보자면 사실 서양의 그것이 우리나라보다 심했다(일제 침략기 이전)
서양은 여성을 존중한다고는 하지만 20세기에 들어와야 겨우 참정권이 주어지고 여전히 유리천정 또한 존재한다.
우리는 어떻냐라는 반문을 한다면 이미 이 또한 일제 식민지의 잔재가 뇌리에 박혀있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은 지금 女子力여자력(じょしりょく)이라는 단어를 공공연히 사용한다.
여성스러운 태도나 용모를 중히 여기는 것, 여성 특유의 감각과 능력을 생활이나 직업에서 살리는 것 등을 이야기한다.
남성은 남성답게 여성은 여성답게라는 구태한 사고인 것이다.
힘 들이진 않는 정치를 위해 오랜 시간 패도정치를 해온 그들은 하대가 기본인 것처럼 성차별 또한 그러했다.

우리나라는?
흔히 조선을 엄청난 남녀차별의 대명사로 규정짓는데, 기본적으로 생활의 모든 것이 여성으로부터 시작을 했으며 집안의 주인은 그들이었고 경제권을 쥐고 있었으며 부부간 합방 날의 선택 또한 여성에게 있었다.
조선시대 근간이 된 예의 기본서는 주희의 주자가례이기보다는 예기와 경국대전이었다.
제사에 관한 부풀린 이야기도 주자가례지, 예기와 경국대전은 아니다.
주자가례란 주희가 예기 등의 책을 나름 해석, 정리한 것이고 경국대전은 조선 왕실에서 정리한 조선이라는 나라의 틀이다.
이렇듯 유학은 주희에 의해 왜곡된 것이다.

돌아와서,
공자는 南子남자를 箕子기자(상의 군주인 문정의 아들이며 주왕의 숙부로 주왕의 폭정에 대해 간언 하다 유폐됨) 같은 聖賢성현으로 대하고자 女子라 불렀다.
공자(논어)의 女子여자란 극존칭이다.

女子여자라는 단어는 논어, 맹자, 노자, 장자, 순자, 묵자, 사기, 역, 의례, 주례, 예기, 춘추(춘추공양전, 춘추곡량전, 춘추좌씨전, 여씨춘추), 모시, 서경 등 17권의 중국의 고전에서 女子는 논어, 맹자, 순자, 묵자, 사기, 주례, 춘추공양전, 춘추좌씨전, 여씨춘추 이렇게 9권에만 나오고 나머지 8권에는 없다.
[* 男子는 장자, 사기, 주례, 예기, 의례, 춘추곡량전, 모시 이렇게 7권에만 나온다.]

유가에서 논어 이후 170년의 시간 차이를 보이며 맹자에서 겨우 등장한다.
유가 외의 사상가 중 평등사상을 주장한 묵자도 역시 100여 년 뒤에 등장하나 이 곳엔 男子가 나오지 않는다.
위 에서 언급한 내용 모두 기원전 2세기에나 현재 시대의 형태로 발전한다.
즉 공자가 사용한 女子는 이후 300년간 외면당하다 사기의 공자세가나 중니제자열전등 공자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던 책들에 자주 등장한다.
사마천의 책을 들추다 보면 제나라 임금이 노나라를 망치기 위하여 80여 명의 여자를 보낸다는 글에서 그에게 女子여자란 성적인 대상으로 귀결시킴을 짐작할 수 있는데 이는 女子여자라는 칭호를 衛위 靈公영공의 부인인 南子남자에게 사용했던 것에 대한 적대적 표현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사기에는 같은 의미로 수십 번 사용한다.

논어에서 호칭으로 사용되던 子는 인명으로 쓰였다.
더욱이 聖賢성현이나 卿경 혹은 大夫대부이상을 칭하거나 魯나라 昭公소공의 아내인 吳孟子오공자와 衛위 靈公영공의 부인인 南子남자는 공자의 제자로 정실 왕비로서 公공의 夫人부인이며 有子유자, 曾子증자, 민자閔子, 염자冉子는 子의 존칭을 받은 공자의 제자였다.
폭군 夏하의 桀王걸왕을 치고 천자가 된 殷은의 湯王탕왕을 予小子여소자로 칭하고 제자나 고향의 젊은이들을 小子소자라 부른 것은 管仲관중을 管氏관씨로 부르며 子의 존칭을 하지 않아 제자들은 마지못해 管仲관중이라 불렀던 것으로 미루어 매우 높은 존칭인 셈이다.

사람들이 공자가 여자를 폄하했다고 인용하는 구절은 이렇다.

近之則不孫 遠之則怨 근지즉불손 원지즉원
- 論語 陽貨 논어 양화

여자와 소인은 상대하기 어렵다.
가까이하면 공손치 않고, 멀리하면 원망한다.

당시엔 시대가 남자는 귀하고, 여자는 천하다는 잘못된 인식이 팽배했듯이 공자도 여성을 폄하하고 있다고 호도하고 있다.
심지어 어떤 학자들은 여기 나오는 여자를 妾첩으로 보고, 소인을 종으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시대 상황과 공자 주변의 여성에 대한 평가를 참고한다면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중국 고전에서 일반화되지 못한 女子여자란 호칭은 중국의 철두철미 남성 중심, 장남 중심 사회 사이에서 여성비하로 여겨진 것에 불과한 것으로 보여진다.
공자는 동북아 최초로 여성을 女子라 불렀고 이는 최대의 존칭으로서 왕비, 고귀한 지성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럼 원문에 나온 小人소인은 어떠한가.
논어에서 소인은 스무 번 이상 나온다.
세 번을 제외하고 군자와 짝으로 나와 군자는 바람직한 인간형으로서 義의를 좇고 소인은 부정적 인간형으로서 利이를 따른다.
그러니 문제가 된 본문의 女子與小人여자여소인은 동등하게 볼 수도 있으며 상대적으로 읽을 수도 있다.
여기서는 지금까지 소인의 일반적 특성이 언급되어 있지도 않다.

공자가 말하는 소인은 계급적 의미가 아니다.
양반 노비 뭐, 이런 의미가 아니고 도덕적인 의미에서의 소인, 진리를 깨닫는 방법이나 삶의 지향점으로서의 소인이다.

나는 진보적 성향이 강하다.
하지만 지난 역사 속 선조들의 진실을 받아들이기를 바란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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