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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itect Y May 01. 2019

일반인문 CV 늙어감에 대하여

; 麥丘邑人맥구읍인

출장지의 밤은 사유하기 좋다.
시간의 흐름과 변화에 대해 깊히 꺼내려던 책 한권을 떠올린다  

늙어감의 진실에 대해 한 치의 타협도 없는 명료한 이야기를 펼쳐 놓는 책, 


Über das Altern. 
Revolte und Resignation.
늙어감에 대하여


; 품위 있는 인생, 존엄으로 빛나는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우리는 육체가 아닌 정신을 갈고 닦아야 한다고 말한다. 

쇠갈고리에 동료들의 시체가 걸려 있던 시절…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


작가 Jean Amery 장 아메리는 2차 세계대전 중 레지스탕스로 활동했다가 독일군에게 붙잡혀 모진 고문을 받았았지만 살아서 2년 만에 강제수용소를 걸어나왔다. 
20년이 흘러 이제 밖이 아니라 늙어가는 자신의 내부에서 죽음이 매 순간 자라나고 있음을 느꼈을 때 그는 놀라고 몸서리친다. 
투사였던 인간을 극한의 공포에 떨게 만든 것은 늙음이었다. 
뼈가 부러지고 살이 찢기는 고문 앞에서도 그저 담담했던 젊은이는 광채를 잃어가는 눈, 핏줄이 불거지는 손, 축 늘어지는 배를 보면서 경악한다. 
노화는 불치병이며 시간 앞에서 나는 그저 홀로 있다고 느낀다. 


이렇게 해서 몸은 감옥이 되었다.


인생 백세시대
멋진 실버 인생을 꿈꾸라는 담론과 기사가 넘쳐나지만, 나이 듦은 두려운 일이다. 
죽음이 동반할 육체적 고통의 공포 탓이 아니라 점점 세계와 공간에서 제거되어가는 자신이 살아낸 시간을 어떤 표정으로 마주할지 두렵기 때문일것이라고 작가는 이야기 한다.
장 아메리가 이 책을 쓴 나이는 46세때이다.
오십이 되기도 전에 동료들보다 쇠약해진 몸을 느끼고 자신 안에 켜켜이 쌓인 시간의 무게에 몸부림친다.
아무런 희망도 없이 자기부정과 맞서 싸우는 것이 노년의 품위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했던 그는 1978년 56세의 나이에 Salzburg 잘츠부르크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많이 듣고 조금만 말하라. 
자랑하지 말고 고집부리지 마라. 
젊게 살려면 젊은이 말 들어라


어느 노인회관에 걸려 있는 글귀와는 전혀 다르게 노년과 죽음을 얘기한다.
노년은 지불노동과 관련된 사회생활에서 은퇴하는 시기일 뿐 아니라, 가족이나 집과 관련된 의무와 권한 또한 크게 바뀌는 시기다. 
노년에 이르러 개인이 자신과 세상을 연결지어 지각하는 형식은 그래서 공간적이라기보다 시간적이다. 


…도대체 나는 언제 사는 것처럼 살까? 라고 쓴 글을 읽는 것은 여간 쓸쓸하지 않다. 
그는 마치 자식을 잃어버린 부모처럼 나이듦에 대한 누구의 위로도 거부하고 자신을 벼랑 끝에 던지듯 쓴다. 
죽음은 모든 미래의 미래이며, 우리가 떼는 모든 발걸음은 죽음으로 나아가는 행보라고.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죽음을 피해 죽음으로 도피할까? 


말미에 지은이가 던진 질문이다. 


사람들은 젊어서 죽고 싶지 않으며 늙으려 하지도 않는다......
늙었다는 것 혹은 늙어간다는 것을 감지한다는 말은 요컨대 몸, 그리고 우리가 영혼이라 부르는 것 안에서 시간의 무게를 느낀다는 뜻이다.
- 장 아메리


살아서 겪는 근심의 무게가 점점 더 가벼워지는 노년들도 있다. 
여행, 영화, 쇼핑등 각자의 멋에 겨워하는 노년들, 
여기저기 장애가 생기는 몸을 솔직히 내보이면서 두려움과 불안, 받아들임과 거부를 굳이 구별할 필요를 못 느끼는 노년들, 
거울의 압박을 내려놓았기에 환멸마저도 가볍게 흘리는 노년들...


언제나 그렇듯 그때는 몰랐다.
이 책은 나이 듦을 느끼는 독자들에겐 쉽고 깊지만 오히려 젊은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麥丘邑人맥구읍인
맥구읍의 사람이란 뜻으로, 곱고 덕스럽게 늙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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