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rchitect Y Feb 04. 2019

일반인문 CIV 섣달그믐, 묵은세배

; 눈썹세는날

舊正구정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양력 1월1일을 新正신정이라 부르는것에 대비한 말이다.

전통적 시간체계는 1896년을 기하여 공식적으로는 양력을 따르게 되었다.

그리고 양력설을 신정이라 부르던것은 일제강점기 메이지유신으로 서구화된 일본의 강요로 시작된 것이다.

신정의 강요는 광복 후에도 계속됐는데 정부는 1950년대에 음력설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1960년대에 이르러서는 음력설을 공휴일에서도 완전히 제외했다.

1980년대 초반에도 이른바 舊正구정은 버려야 할 구시대의 문화로 치부됐다.

아이러니컬하게 정부의 정책에 따라야 했던 당시 아버지는 음력설에 차례를 지냈다.

공휴일도 아닌날에 부랴부랴 새벽 차례상을 보아야 했다.

이 후 계속된 음력설을 고수는 결국 정부는 손을 들고 1985년 민속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부활했고 1989년에 와서는 본래의 설로 제 자리를 찾게 됐다.

그러니 구정이란말이 오히려 구태의 단어로 전락한것이다.

다양한 이유로 신정을 강요했지만 본래의 설만큼은 없앨 수 없는 고유의 명절이었다.


섣달그믐이라는 말도 양력12월 31일이 될 수 없는것이 그믐은 朔日삭일(달이 황도黃道를 지나는 순간으로 당의 모습이 보름과 반대인 가장 작은 날)전날이기때문이다.

올해는 설이 양력2월5일이니 섣달그믐은 바로 오늘, 양력2월4일이되는셈이다.


설날은 새해를 시작하는 날로 새로움이나 새 출발의 의미가 강하지만 섣달그믐날 밤을 지새우고 맞으니 오히려 시간의 연속성이 강조되는 날이기도 하다.

선조들은 밝은 불과 요란한 소리로 잡귀를 쫓는 도교 풍습에서 시작된 그믐날 집 안팎을 대청소하고 집안 구석구석 불을 밝히는 한편 한밤중에 대나무에 불을 지펴 요란한 소리를 냈다.  

조선시대 궁중에서는 대포를 쏘고 무서운 방상시탈을 쓰는 儺禮나례(악귀를 쫓기 위해 베푸는 의식)를 행했다.

방상시탈

남은 음식과 바느질감도 해를 넘기지 말아야 한다는 이런 일련의 풍습은 새해를 경건하기 맞이하기 위해서였다.

새 출발을 위해 다 비우자는 뜻이다.


새해를 맞이하기 전 빠뜨리지 말아야 할 것이 있으니 바로 묵은세배다.

그믐날 저녁부터 시작하는 묵은세배는 설날 세배와 달리 먼 친척부터 가까운 어른 순으로 진행한다.

묵은세배를 설날 세배를 미리 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묵은세배는 어디까지나 한 해를 보내는 인사로 설날 세배와는 엄연히 다르다.

설날 세배 때는 어른이 아랫사람에게 덕담을 하고 세뱃돈을 주지만 묵은세배 때는 아랫사람이 어른들께 돈이나 선물을 드린다.

그믐에는 스승이나 처가에도 선물하는 풍습이 있는데 특별히 토산품을 보낸다.


아주 어렸을 때 섣달그믐, 내일이면 설날이라 들떠있는데 편찮으셨던 아버지는 동네의 어떤 집에 세배를 다녀오라셨다.

뜬금없이 세배라니.

툴툴대며 나가려는데 봉투를 주시며 세뱃돈으로 전하라니 어린 마음에 좀 황당했다.

그게 내 유일한 섣달그믐날 세배였다. 그걸 묵은세배라고 하는 걸 나중에 알았다.

……중략……


묵은세배 때 아버지가 봉투를 주머니에 넣고 동네를 다녔던 까닭을 알게 된 것은 한참 뒤 내가 당신의 나이와 겹칠 때쯤이었다.

묵은세배는 지난 한 해 덕분에 잘 지냈노라 인사하고 행복한 새해를 맞으시라 인사하고 덕담을 드리는 것이지만, 넉넉하지 못한 살림에 외려 명절이 자칫 서러울 이들의 살림 살피고 슬쩍 촌지를 건네는 기회이기도 했다.

요즘으로 치면 그게 불우이웃돕기인 셈이었다.

그런 배려는 집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멀리서 찾아온 자식들이 섣달그믐에 고향집에 도착하여 부모님께 묵은세배와 함께 형편에 맞게 마련한 돈을 드리면 그게 다음날 손자손녀들 세뱃돈이 되었다.


묵은세배는 지나온 한 해를 아쉬워하기보다 함께 살아온 한 해에 대해 감사하며 나누는 인사라는 점에서 정겹다.

하지만 진짜 살펴야 할 그 풍속의 의미와 가치는 주변의 어려운 이들의 살림살이에 눈길 나누고 마음 덜어주는 사랑이다.

묵은세배를 잊고 살면서 그런 눈길과 마음까지 작별하고 살아온 것 같아 아쉽고 부끄럽다.

- 김경집 인문학자 글 중


과세 안녕하십시오(묵은해를 잘 보내십시오)라고 인사를 나누는 섣달그믐의 풍습…

후회는 과거 때문이고 불안은 미래 때문이다.

그렇게 과거에 꺼둘리고 미래에 저당 잡힌 채로는 단 한 순간도 현재로 살 수가 없다.

오늘은 지난 시간을 정리하며 인사를 나누던 구세배의 모습을 동이키는 시간이되기를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일반인문 CIII 小確幸 소확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