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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itect Y Nov 04. 2018

일반인문 CIII 小確幸 소확행

; 자기규제로 행복할 수 있을까.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것,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넣은 속옷이 잔뜩 쌓여 있는 것, 새로 산 정결한 면 냄새가 풍기는 하얀 셔츠를 머리에서부터 뒤집어쓸 때의 기분…

- 무라카미 하루키


甲질, 헬조선, 일베, WOMAD...


유행처럼 번지고 사용되는 단어들과 함께 살아가는 모습의 방식에는 신토불이, 자연주의, 웰빙같은 모습들이 시대를 거치며 유행하고 있다.

어쩌면 지금 가장 많이 번지고 있는 단어가 小確幸소확행이 아닐까.


무라카미 하루키가 발표한 1986년 두번째 수필집(우리나라에 번역되서 들어오면서 랑겔한스섬의 오후라는 책 제목을 갖게 되었다)에 나오는 이 말은 당시 일본에서는 그다지 유행하지 않았다.

그건 일본사회에 퍼져있는 기본적인 모습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것이 대만으로 건너가 2015년에 그곳의 사회적 유행이 되었고 국내의 한 언론은 이를 지금의 대만사회를 이해하는 중요한 상징어로 소개하기도 했다. 

이때만 해도 한국에서는 낯선 용어였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 2017년 후반부터 자주 언급되기 시작하더니 2017년 말에는 서울대 소비트렌드 연구소가 선정한 2018년의 소비트렌트 중 하나가 되었고, 한 여성주의 미디어는 2018년의 중요한 문화적 흐름으로 그것을 다루기도 했다. 

지금은 말의 출처가 생략된 채로 TV예능에도 등장하는 용어가 되었다. 이제 탈조선을 선택하기 보다 조금 더 쉬운 소확행에서 삶을 찾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최근 바지를 일컬어 미국식으로 '팬티'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는데, 그렇다면 그 '팬티' 밑에 입는 종래의 - 좀 이상항 표현이지만 - 팬티는 뭐라 불러야 좋을지 알쏭달쏭 할 때가 있다. 

영어라면 언더 팬티가 되겠지만, 그런 명칭이 확실하게 정착되어 있지 않은 일본에서는 바깥 팬티와 속 팬티의 혼란 상황이 점점 더 그 혼미함의 도를 더해 가고 있다.

그런데 나는 그 '언더 팬티'쪽을 모으는 게 - 물론 남성용입니다 - 일종의 취미이다. 가끔씩 백화점에 가서는 '저걸로 할까, 이걸로 할까'하고 혼자서 망설여가며, 대여섯 장을 한꺼번에 사들인다. 덕분에 서랍장 안에는 상당한 양의 팬티가 쌓여 있다.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돌돌 말은 깨끗한 팬티가 잔뜩 쌓여 있다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작기는(小) 하지만 확(確)고한 행(幸)복의 하나 (줄여서 소확행)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데, 이건 어쩌면 나만의 특수한 사고 체계인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혼자서 생활하는 독신자를 제외하면 자기의 팬티를 자기가 사는 남자는, 적어도 내 주변에는 그리 흔치 않기 때문이다. 

또 런닝 셔츠도 상당히 좋아한다.막 새로 산 정결한 면 냄새가 퐁퐁 풍기는 하얀 셔츠를 머리에서부터 뒤집어 쓸 때의 그 기분이란 역시 소확핵의 하나이다. 하기야 런닝 셔츠 쪽은 늘 같은 상표의 같은 물건을 일괄하여 사니까, 팬티의 경우와 달리 골라서 사는 즐거움은 없다.

그런데 남자의 경우 속옷이라는 장르는 기껏해야 팬티와 런닝셔츠에서 그만이다. 여성의 속옷이 점령하고 있는 광대한 영역에 비하면, 마치 집 장사가 지어 판 집의 앞뜰처럼 좁고 간결하다. 오로지 팬티와 런닝 뿐이니 말이다.

속옷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가끔은 남자로 태어나길 다행이다 싶은 감회에 젖는다. 만약 내가 지금의 성격을 그대로 지니고 여자로 태어났다면, 속옷을 넣는 서랍이 하나나 둘 정도로는 도저히 모자랄테니까 말이다. 

-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는 빤쓰를 수집하는 취미가 있어 서랍장에는 상당한 양의 팬티가 있는데, 서랍에 돌돌 잘 말은 깨끗한 팬티가 쌓여있는 것을 보고 있자면 작지만 확고한 행복(그는 이것을 줄여 ‘소확행’이라고 말한다)을 느낀다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고작 빤스를 수집하는 즐거움을 정색하고 비판을 한다는 것(불황시대의 수동적 생존전략 운운) 자체가 우습긴 하지만, 소확행은 시세의 추이를 따르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하루키가 소확행에는 자기규제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한 것도 그 때문이다.

책 제목, 랑겔한스섬(Langerhans islets)이란 우리 바깥이 아닌 우리 몸에서 존재하는 것으로, 혈당을 관리하는 내분비조직이라는 점(이 부분에 문제가 생기면 당뇨병에 걸린다)과 이 글을 쓰게된 모티브가 된 소설을 보면 알 수 있다.

Raymond Carver 레이먼드 카버의 A Small, Good Thing(별것 아니지만 도움이 되는).

1980년 출판된 Cathedral(대성당)을 하루키가 번역하면서 소확행의 유래가 된다.

하지만 대성당에는 지금의 모습이 아닌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쉽게 잊어왔던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말하고 있다.

별것아닌것
우리가 별것 아닌 것이라고 생각, 치부해왔던 것들의 이야기로 실상은 그것들이 정말로 필요하고, 그것으로 인해 삶을 연속시킬 수 있다. 

소설 속에서 어떤 말 한 마디보다 따뜻한 빵 하나를 건네주는 것이 더욱 도움이 되었던 것처럼 어쨌든 빵을 먹는 것, 음식을 씹어 삼키는 행위는 살아가는 데에 꼭 필수적으로 갖추어져야 할 기본적인 조건이자 생존을 위한 섭취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어쩌면 그들 부부가 아이를 잃었지만, 어쨌든 삶을 계속 살아갈 것이라는 암시이기도 하다. 


스카티는 월요일이면 8살이다.

스카티의 엄마는 토요일에 미리 생일 케이크를 주문했다.

주문을 받은 빵집 주인은 그녀의 아버지 연배쯤 되어 보였고 누군가에게 축하를 하거나, 축하를 받는 즐거움은 이미 오래전 젊은 시절과 함께 보내버린 듯 무뚝뚝했다.

불행히도 월요일 아침 등굣길에 스카티는 뺑소니차에 교통사고를 당했다.

곧 회복되리라 믿었지만 여덟 살 생일 파티도 치르지 못한채 부모 곁을 떠났다.

주문한 케이크를 찾아가지 않아서 전화를 해도 제대로 의사소통도 되지 않고 경제적 손실도 감수해야 했던 빵집 주인은 홧김에 스카티의 집에 전화를 하고 말없이 끊기를 반복한다.

그가 스카티에게 일어난 일을 전혀 알 수 없었기에...

계속되는 전화를 참을 수 없었던 스카티의 부모는빵집 주인을 찾아가 슬픔을, 분노를 터트린다.

상황 파악을 한 빵집 주인은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용서를 구한다.

스카티의 엄마 아빠는 빵집 주인이 건넨 따끈한 빵을 먹었다.

빵집 주인을 용서하고

스카티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스카티를 보내는 의식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시대적 흐름에 충실하고자 노력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스스로도 불안할 뿐만 아니라 때론 타인에게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비난을 받기도 하기 때문이다.


Milan Kundera 밀란 쿠데라는 Ewige Wiederkunft des Gleichen 영원회귀(니체)를 이야기 하며 우리의 선택이나 판단에 존재하는 한없는 가벼움을 지적하고 시세에 뒤쳐짐(마음, なつめそうせき 나쓰메 소세키)에 반발하고 있다.

우리는 시대의 자식이 아니라 신화에 의해 조종되는 꼭두각시에 불과하다

- Thomas Mann 토마스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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