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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itect Y Feb 18. 2016

건축가의 주유천하 VI 충청 동춘당

대전을 거닐다...03 도심속 검박한 조상의 자취, 동춘당

솟을대문도 없이단순한 일주문이 단아하다.

좌측 동춘선생 고택과 우측 회덕 동춘당을 가르는 골목길.

영의정에 추증된 분의 검박함. 별당 동춘당은 쉬는 곳,

同春堂 동춘당

살아 움직이는 봄과 같이 살겠다.

宋浚吉 송준길

본관 은진.

영천군수를 역임한 부친 송이창 선생이 먼저 건립한다.

송준길선생의 스승은 이이, 김장생이다.

1624년 진사에 합격했으나 벼슬에 나가지 않는다.

이 마을은 송씨 세거지라 동네 이름도 송춘동이다.

이 동네 주변 길은 죄다 선비길 명명한다.

雙淸堂쌍청당(청풍과 명월의 맑은 기상을 마음에 담은 집)

송유(1389-1446)

부친이 4살 때 돌아가시자 어머니와 함께 개성에서 이곳 송촌동으로 낙향하면서 이제 세거지가 된 거다.

1649년 효종이 즉위하자 김장생의 아들 김집의 천거로 이제 벼슬길에 나서지만 이미 44살.

이제 송시열과 북벌계획에 참여한다.

송시열보다 항렬이 좀 높다.

김자점이 청나라에 북진정책을 밀고하는 바람에 김자점을 탄핵해 밀어내지만 역풍으로 낙향하지만 재밌는건 김자점의 후손이 김구선생이다. 아이러니

김자점 사형.

1658년 대사헌으로 복귀한다.

선생의 장인은 정경세으로 서애 류성룡의 수제자다.

이이, 김장생, 정경세 이런 막강한 후광을 가진 선비는 거의 드물다.

이조판서인 송시열과 국정 주도하게 된다.

1653년 부친이 건립한 동춘당을 이전 중건한다.

1658년 병조판서.

1672년 별세. 현판 글은 송시열이 썼다.

1999년 송촌택지개발사업이 시작되자 은진 송씨들은 토지보상을 받고 떠난다.  

이렇다 할 문화재가 없는 대전시는 동춘당 인근 1만 7천 평을 동춘당공원으로 조성했다.

1세 손이 살고 있지만 50대 라는데 생활이 어렵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사람 만나는 거도 싫어 문은 굳게 잠겨 있다.

 

별묘, 불천위.

나라에 큰 공훈이 있거나 도덕성과 학문이 높으신 분에 대해 신주를 땅에 묻지 않고 사당(祠堂)에 영구히 두면서 제사를 지내는 것이 허락된 신위(神位).

4대가 지나도 안 나가 4대를 모시는 사당, 송씨종묘.

팽나무는 동춘당과 같은 나이. 380살.

동춘당의 굴뚝도 검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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