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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itect Y Feb 19. 2020

일반인문 CXXXII 내로남불

미디어를 검색하다 정치권의 행보에 대한 기사를 보며 생각난 단어가 ‘내로남불’ 입니다.

(분명 이 기사 내용을 실으면 갑논을박 색깔논쟁 댓글 일색일것 같아 내용은 제외합니다)

‘내로남불’, 이 말도 정치권에서 처음 사용한 말이죠.


박희태 전 국회의장이 1996년 15대 총선 직후 당시 여소야대 상황에서 여당(신한국당)의 ‘의원 빼가기’와 관련해 야당(새정치국민회의)이 맹공을 퍼붓자 ‘내로남불’로 응수했던것이 처음입니다.

다만 처음부터 내로남불이란 조어 형태로 사용된 건 아닙니다.

1990년대 초반에는 ‘불륜’ 대신 ‘스캔들’을 활용해 ‘남이 하면 스캔들, 내가 하면 로맨스’의 형태로 주로 쓰였습니다. 

내로남불의 가장 많이 쓰였던 첫 시기는 1990년대 중후반이었습니다. 


‘내가 하면 숙달운전, 남이 하면 얌체운전’ 

‘내가 못생긴 건 개성, 남이 못생긴 건 원죄’ 

‘내가 땅 사면 투자, 남이 땅 사면 투기’ 

‘내가 하면 예술, 남이 하면 외설’ 

‘내가 하면 오락, 남이 하면 도박’ 등 


다양한 형태로 변형돼 크게 유행했는데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한 이중 잣대를 꼬집는 말들이었죠. 


2015년 7월 내로남불은 공식석상에서 사자성어로 처음 등장합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던 전병헌 의원은 최고위원회의에서 국회 내 여야 갈등의 원인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누리꾼들이 ‘내로남불’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유행하고 있다”고 말했죠.


고사성어 사용하기 좋아하는 정치권에서 굳이 이 말을 쓰는지 의아합니다.

볼까요.

조선 후기의 승려, 惠藏혜장이 자신의 제자 慈弘자홍에게 전한 글에서, 제자가 수행보다 세상일에 관심이 많은 것을 나무랍니다.


세상에 없는 말 만들고, 작은 일 부풀리면 가슴속에 얼음덩이나 숯덩이를 품게 된다.

객기를 마구 부려 멋대로 내달아 혼란을 일으킨다. 

한마디만 제 뜻과 맞지 않으면 창을 뽑아 싸우고, 한 가지 일만 부딪히면 성을 내며 일어나 승리를 다투고 강함을 겨룬다. 

나는 화살처럼 곧은데, 남은 갈고리같이 굽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我直如矢 아직여시, 人曲如鉤 인곡여구, 且當棄置 차당기치.


나의 행동은 옳고 남은 틀리다는 의미의 내용입니다.

我矢人鉤 아시인구.


조선 중기의 문신, 상촌선생의 말씀 중에도 ‘남의 허물만 보고 자기의 허물은 보지 않는다(見人之過 不見己之過 견인지과 불견기지과)’라는 말이 있습니다.


見己之過 不見人之過 君子也. 견기지과 불견인지과 군자야. 

見人之過 不見己之過 小人也. 견인지과 불견기지과 소인야 

- 象村先生集 卷39 雜著 檢身篇 상촌선생집 39권 잡저 검신편


자기의 허물만 보고 남의 허물은 보지 않는 이는 군자이고,

남의 허물만 보고 자기의 허물은 보지 않는 이는 소인이다.

심리학에서는 내로남불을 인간의 본능 중 하나로 보고 있습니다. 

행위자-관찰자 편향(actor-observer bias) 이론이나 허구적 독특성(false uniqueness) 이론 등은 내로남불을 설명해주는 이론들이죠. 

결국 내로남불은 잘못을 저질렀을 때 자아 붕괴의 위험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방어 시스템 중 하나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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