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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itect Y Mar 12. 2020

일반인문 CXXXIV 유감(遺憾의 뜻을 전하다)

; 섭섭함과 정치적 보카시 사이

청와대 “일본 정부 신뢰 없는 행동에 깊은 유감”- 한겨레 2020..3.10.

서울시의회, 공무원에 ‘성희롱·갑질’ 논란…결국 유감 표명 - 조선일보 2019.12.17

'당원권 정지 3개월' 징계를 마치고 복귀한 김순례 자유한국당 최고위원이 25일 '5·18 망언'과 관련해 희생자·유공자 등에게 "다시 한번 심심한 유감의 말씀을 드리겠다"고 밝혔다.-머니투데이 2019.07.25

외교부는 코로나19와 관련해 ‘유감’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지요.

섭섭함을 전할때 사용하는 단어 ‘유감’은 ‘    유감을 품다.’, ‘유감의 뜻을 표하다.’라고 할때 사용합니다.

‘유감’의 정체는 의외로 잘 알려져 있지 않아, 한자로 써 보라고 하면 자칫 ‘유감1有感 | 명사, 느끼는 바가 있음.’ 정도를 떠올리기 십상입니다.


유감4遺憾 | 명사, 마음에 차지 아니하여 섭섭하거나 불만스럽게 남아 있는 느낌.≒여감.

유감-되다 遺憾되다 | 형용사, 마음에 차지 아니하여 섭섭하거나 불만스럽다.

여감3 餘憾 | 명사, 마음에 차지 아니하여 섭섭하거나 불만스럽게 남아 있는 느낌. =유감.


우리가 알고있는 유감은 '遺憾’이죠.

남길 유(遺), 섭섭할 감(憾). 

즉, 표준국어대사전의 내용대로 ‘마음에 차지 않아 섭섭하거나 불만스럽게 남아 있는 느낌'을 말합니다.

감정(憾情-이 역시 感情과 구별해야 할 말이죠)이 있다는 뜻으로 “너, 나한테 유감 있냐?”라고 하면 “나한테 불만 있냐?”는 뜻입니다.

사과가 아니라 섭섭할 때 쓰는 말이죠.

그런데 글 머리의 두, 세번째 기사에서는 사과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예전에 심심치 않게 보이던 이런 경우의 쓰임새가 최근에는 많이 줄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사용합니다.

유감의 감(憾)은 ‘대단히 강하게 느끼는(感) 감정(心)’이란 뜻을 담았습니다. 


‘기쁨보다는 한스럽고 분한 감정에 나타나는 느낌을 말한다-하영삼,한자어원사전’


표준국어대사전을 비롯해 한글학회 우리말큰사전, 금성판 국어대사전 등 모든 사전들이 그런 토대에서 이 말을 풀었습니다. 

공통적 개념은 아쉬움, 억울함, 서운함, 불만족 등이죠. 

그러니 이 말은 본래 잘못한 사람이 사과하는 뜻으로 쓰기에 적절치 않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과의 의미는 어디서 나온것일까요?


이 말에 사과의 의미를 담아 쓰는 용법은 일본에서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본에서도 유감의 사전적 풀이와 용법은 우리와 다를 게 없습니다. 

일본의 대표적 사전인 ‘신판 광사림(廣辭林, 1966)’에서는 유감을 ‘섭섭함이 남은 상태’로 풀고 ‘잔념(殘念: 단념하기 어려운 것, 아쉬움)’과 같은 말로 보았습니다.

(‘잔념殘念 ざんねん’은 우리에겐 없는 말로우리말 ‘미련’에 해당합니다.)

일본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1960년대 외교 용어로 이 말을 썼다고 합니다. 

‘꼭 해야 할 것은 아니었다’는 의미를 담았는데, 다소 후회하는 마음이 있다는 뜻으로 사태를 전향적으로 수습하려는 의도를 암시하는 말입니다. 

지금은 정치적 관용표현으로 자리잡았다고 합니다.


이것을 들여다 한국에서도 우회적 사과의 뜻을 나타낼 때 유감을 사용합니다. 

외교적으로 이 유감은 상황에 따라 사과와 불만 양쪽으로 쓰여 특이한 용법을 보입니다. 

어느 쪽이든 의미가 딱 떨어지는 표현이 아니고 완곡하게 드러낸 것입니다.

말에서, 글에서 화자 또는 필자가 자신의 생각이나 태도를 명료하게 밝히지 않고 대충 얼버무리는 식으로 넘어갈 때 쓰기 좋은 표현인 셈입니다.

이는 어디까지나 정치·외교적 특수용법에 지나지 않습니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유감은 사과 의미로 쓰이지 않습니다. 

유명인이나 지도층 인사들이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했을 때 쓸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잘못한 것은 잘못했다고 하고, 사과할 때는 사과한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병헌, 조승우, 백윤식 주연의 2015년 영화 ‘내부자들’에서 미디어의 핵인 조국일보 논설주간 이강희(백윤식)의 대사 중 얼’버무리는 말로 ‘보카시’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보카시는 ‘빛깔을 점차 여리게 바림하거나 두 빛깔이 만나는 경계선을 바림하는 염색법’이라는 의미의 일본어 ‘ぼかし(暈し)보카시’에서 나온 말로 양쪽 색에서 합쳐지는 모호한 상황을 이야기 합니다.

보카시는 우리말로 바림이라는 멋진 단어가 있지만 이 또한 여전히 언론, 염색관련 업종에서는 사용하고 있습니다.


바림 | 명사, 미술, 색깔을 칠할 때 한쪽을 짙게 하고 다른 쪽으로 갈수록 차츰 엷게 나타나도록 하는 일. ≒그러데이션, 바림질, 운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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