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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itect Y Feb 08. 2021

육지것의 제주인문이야기 II 알뜨르 비행장

; 제주인의 계속되는 애환-일제의 잔상

서귀포시 대정읍 알뜨르 해군비행장

제주시 용담동 정뜨르의 육군서비행장

조천읍 신촌리 진드르의 육군동비행장

교래리의 육군비밀비행장


하나하나 열거 할 수 없지만 일제는 한반도 본토 뿐 아니라 제주 또한 병참기지 兵站基地(; 군사 작전에 필요한 인원과 물자를 관리, 보급, 지원하는 일에 쓰는 근거지)화 하였습니다.

제주에는 위에서 열거한 4곳의 일제 군 비행장이 있었습니다.

(4.3당시 새로 만든 간이 비행장인 서귀포 비행장 제외)

일제의 제주 첫 군비행장은 ‘알뜨르 비행장’으로 나머지 4곳의 흔적을 찾기는 어렵지만 이곳은 그대로 방치되어 지금까지 모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뜨르 드르

본론 들어가기 전 나머지 비행장 살짝 짚습니다

우선, ‘뜨르’, ‘드르’는 넓은 벌판을 뜻하는 제주어 입니다.

‘정’은 우물이 있다는 뜻으로 우물이 있는 넓은 벌판이 ‘정뜨르’고, 길다는 뜻의 제주어 ‘진’을 품은 ‘진드르’는 긴 평원을 말하는것입니다.

제주국제공항은 일본이 1942년부터 건설되기 시작하여 1944년 5월 준공한것으로 태평양전쟁을 시작하면서 군사적인 목적으로 만들어 놓은것입니다. 

지금은 확장이 되어 규모가 많이 커졌지만, 당시 ‘정뜨르 비행장’은 도두봉 가까이 있는 활주로 부근에 자그마한 군용기가 이착륙할 수 있는 시설이 전부였습니다.  

비행장 공사에는 제주 주민들이 대대적으로 동원되어 은폐와 엄폐, 활주로 공사 등의 작업에 투입되었습니다.

1957년에 와서 활주로를 증설하여 민간항공기가 정기 취항하기 시작하였고, 1982년에 대규모 확장공사로 국제공항으로서 규모를 갖추었습니다. 

4.3관련해서는 정뜨르 비행장은 수많은 주민들이 처형된 최대의 학살터로  한림, 애월, 제주시 주민들을 산부대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정뜨르 비행장에 끌어다가 그들에게 구덩이를 파게하고 그 앞에 몰아 세워서는 기관총으로 사격을 가하여 집단학살 또는 생매장한곳이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곳에는 미군부대와 군토벌부대가 주둔한 곳으로 애월리 주민 80여명, 이호리 및 인근 부락 주민 300여명 외 무수한 양민들이 여기에서 집단처형되었습니다. 

주민들의 선혈로 붉게 물들여 진 학살터 위에 아스팔트가 덮이고 그곳은 관광객을 맞이하는 활주로로 변했던 것입니다.

알뜨르 비행장이 일본 해군 비행장이라면 일본 육군은 ‘정뜨르비행장’ 다음으로 1945년 초에는 제주시 조천읍 신촌리에 세 번째 비행장인 속칭 ‘진드르비행장’ 건설이 시작합니다. 

이후 진드르비행장은 제주 동비행장으로, 정뜨르비행장은 제주 서비행장으로 각각 명칭이 변경되었습니다.

일본 육군은 같은 해, 7월에는 조천읍 교래리 부근에 네 번째 비행장을 건설했습니다. 

이전과 달리 해안지역이 아니라 내륙에 만들어진 비밀 비행장으로 활주로 2개와 비행병 수용동굴 200명분, 연료동굴 연료 400통, 탄약 5t, 비행기 격납 동굴 12기분 등도 계획했습니다.

'특공기' 즉 가미카제를 띄우기 위한 비행장으로 파악되는데 현재 대한항공 정석비행장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알뜨르 비행장.


중·일 전쟁을 앞두고 일본은 중국과 일본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제주도는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졌는데 1926년 제주도 남제주군 대정읍 상모리 1089 알뜨르지역에 비행장건설을 추진하게 됩니다. 

아랫마을이라는 뜻의 알뜨르 지역은 송악산과 모슬포 사이에 위치하여 북쪽으로는 산방산, 단산, 모슬포 등 여럿의 작은 오름(작은 기생화산)이 어우러지고 남쪽으로는 바다가 접한 지형적 특성상 비행장으로 최적의 장소입니다.


알뜨르 비행장 건설을 위해 진해요항부(함대후방을 총괄하는 4대 해군기지 하부조직)의 시설부인 진해경비부가 공사에 관여하였습니다.

1937년 완공될 무렵에는 20만평 규모의 주요 항공기지가 구축되었고 1937년 중국 난징공습을 위해 나가사키 해군항공기지를 출발한 폭격기의 중간기착지로 활용되었습니다.

이후 알뜨르 비행장의 전략적 중요성 때문에 해군항공기지를 알뜨르 비행장으로 이전하게 되어 비행장규모는 40만평으로 확장하며 이곳에 주둔하였던 군인들은 해군항공대 2500명과 25기의 전투기가 배치되었다고합니다.

알뜨르 비행장의 활주로 크기는 대략 폭 70m 길이 1400m.

남북으로 활주로가 조성되었는데 바람의 영향과 해안조건을 활용하여 이착륙상의 안전 확보, 그리고 섯알오름을 활용한 방공진지 구축 등 지형지물을 이용한 최적의 군사기지 구축계획이 반영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비행장 격납고는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최고의 일제 군사유적지로 평가되고 있는데 205.7㎡로서 폭 18.7m, 높이 3.6m 길이 11m이며, 1기를 격납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당시의 비행기는 일본의 대표적인 전투비행기인 제로전투기로 알려지고 있는데 현재 알뜨르 비행장 한곳에는 당시 사용되었던 비행기의 모형전시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1944년 일제강점 말기 일본은 제주도를 군사 기지화하고 일본 본토의 방어기지로 계획하여 병력 7만을 제주에 상주시켰는데 1944년 10월에 알뜨르비행장을 66만평정도로 확대하기 위한 공사계획을 수립하여 사령실, 탄약고, 연료고 등 군사시설을 지하벙커에  옮기고 격납고 은폐를 위한 작업을 추진하게 됩니다.

시설관리에 관여하였던 진해요항부의 시설부 진해경비부가 파견됐지만 부족한 노동력 확보를 위해 제주도민을 강제로 동원하며 대정읍 지역의 주민들도 비행장건설에 동원되어 갖은 고통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비행장을 건설하였던 당시에는 주변에 고사포대와 포 진지 4개를 설치하였고 주변 오름과 해안에도 수많은 굴을 파서 요새화하였습니다.


부지는 주민들의 생존터였던 것을 정상적인 보상 없이 몰수하여 주민을 동원하여 만든 식민지 지배의 전형적인 상징물입니다.해방이후 원소유자에게 정상적인 매매 혹은 반환조치되지 않고 군소유로 이전되어, 현재는 공군 관리지역으로 비상 활주로로 사용되고 있으나 경작지로 활용되고 있는 상태입니다. 

현재 격납고는 총 20개소가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보존되어 남아있으며 등록문화재 제39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주변 일대지역은 일제식민지하의 수탈의 상징으로서 건축물이 가지는 의미뿐만 아니라, 격납고 및 비행장 주변이 태평양전쟁 때 일본이 결사항전을 위해 구축한 대규모 침탈의 장소라고 인접한 지점에 4․3사건, 6․25사변 당시 제1훈련소의 흔적지가 있는 등 한국근대사의 아픈 상처들이 남아 있는 역사의 사실이 고스란히 녹아 스며든 장소입니다.


일제가 기지 내의 탄약고로 사용하다가, 1945년 미군의 무장해제부대가 와서 폭파하여 꼭대기 부분이 날아가 버린, ‘섯알오름’ 탄약고터는 6.25 한국전쟁이 발발한 후인 1950년 7월 칠석날 견우와 직녀가 만나야 하는 그날, 이승을 등지고, 가족을 등지고, 칠흑의 시간을 말 한마디 못하고 섯알오름 탄약고터로 끌려가야만 했던 이들의 억울한 내력이 있습니다. 

끌려가던 그들은 심야에 행해지는 은밀한 죽음의 행로를 누군가에게는 알려야 하겠기에, 달리는 트럭 위에서 비행장 벌판 위로 각자 신고 있던 신발들을 내던졌습니다. 

결국 끌려간 주민들은 당시 군에 의해 무차별 학살당했습니다. 

더욱이 죽어서도 주검을 거둘 수 없게 한 당국의 조처로 6년여 동안 학살터에 방치되어 정작 수습할 때는 누가 누구의 가족인지 알 수가 없어, 이름하여 100사람의 조상에 하나의 후손이라는 ‘白祖一孫之墓 백조일손지묘’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렇게 생을 마감했던 섯알오름 예비검속자(豫備檢束者) 학살의 내력은 오늘도 우리의 귓바퀴를 맴돕니다. 

지금 그 자리에 제삿날 병풍처럼 서있는 조형물과 간략한 안내판이 그들의 죽음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일제와 4.3의 아픈 기억이 강력하게 낙인을 새긴 터, 알뜨르. 

노무현 대통령이 제주를 ‘평화의 섬’으로 지정했습니다. 

그리고 매년 지금은 제주포럼으로 간판을 바꿨지만 이를 기념한 ‘평화포럼’을 개최해 왔습니다. 그런데 ‘평화의 섬’의 가장 핵심적인 장소적 가치를 지닌 이곳 알뜨르는 작은 시도들은 있었지만, 아직도 일제와 4.3이 겹으로 더께가 쌓인 이곳의 장소적 가치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논의와 노력에 머무르고 있어 안타까울 뿐입니다. 


알뜨르는 ‘아래 벌판’이라는 뜻을 가진 예쁜 이름이지만 알뜨르 곳곳에 입을 벌린 채 듬성듬성 놓여 있는 콘크리트 건축물은 흉물스럽습니다. 

켜켜이 쌓이고 삭혀낸 한(恨) 때문이었을까요. 

지금의 비행장 터에는 붉은 흙먼지가 피어 오르고 아득하게 너른 벌판엔 햇살을 피할 나무 한 그루도 없습니다. 

대신 흉물스럽게 앉은 콘크리트 덩어리 사이로 무성하게 푸른 잎을 낸 밭들이 뒤엉켜 있고 서글픈 스산함이 맵싸한 마늘향과 함께 스며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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