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ournalism없는 부화뇌동
사회적 거리두기가 연말을 강타하며 송년회 일정이 엄청 꼬입니다.
자세히 알아보려 검색하다보니 알고는 있었지만 우리나라의 미디어에 기겁하게 됩니다.
기자 정신이란 말이 있습니다.
진실을 전달하는 사명을 가진 존재로써 사회의 부조리와 불합리에 대한 기자라는 직업인으로써의 양심으로 마치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가 환자를 돈벌이의 대상이 아닌, 소중한 생명을 가진 존재로써 바라봐야 한다는 의사들에게 있어서 히포크라테스의 선서와 그 맥을 같이 합니다.
좀 가볍게 가자면 직업 윤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8월 수구(守舊 명사; 옛 제도나 풍습을 그대로 지키고 따름)언론들은 이런 기사를 썼습니다.
다른나라는 방역 빗장 푸는데 우리는 백신 접종률이 낮아서 엄두도 못낸다.
접종률만 높이면 우리도 풀자.
지금 약효 떨어진 사회적 거리두기? 이런거에 집착할때가 아니다.
남들은 다 푸는데 우리는 뭐하냐?
미국, 영국등은 방역 빗장을 풀고 있다. 그러나 백신접종률 낮은 한국은 엄두 못낸다.
국내의 낮은 접종률이 위드토로나 도입을 가로 막는다.
지금은 말을 바꾸어 언론들이 선동한 내용에서 슬쩍 빠지고 다시 정부를 비판합니다.
방역당국이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린 측면이 있다.(중앙1125)
감염병 대응의 기본인 병상 확보조차 하지 않고 있었나?(조선1211)
정부는 높은 백신 접종률만 믿고 위드 코로나에 따른 위험을 과소평가했다(한겨레1130)
그리고 이제,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화하자, 이제는 자영업자들의 경영난과 생활고를 부추깁니다.
의료인들은 이런 언론의 태도를 유체이탈에 비유하면서 ‘기자들은 자신들이 얼마전에 쓴 기사를 기억도 못하나’고 되묻습니다.
언론들은 자신들의 섣부른 기사에 대한 결과의 성찰없이 정부와 방역당국등에만 책임을 돌리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위드 코로나에 반대 목소리를 내온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일관성 없는 언론보도의 탓으로 의료체계 붕괴는 예상되었던 부분이다.라고 꼬집어 이야기 합니다.
돈이 최고의 가치가 된 사회에서 기자들은 신문이나 방송이라는 제한된 시간과 공간에 진실을 전달해야 하는 것과 흥미로워 하는 것을 알려주는 것 사이에서 고민을 하게 되고 여기에서 아무리 돈을 벌기 위한 것이라고 해도 해야 할 일은 해야 하며, 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한계점을 그어야 합니다.
기자의 기사를 통해서만 정보를 받는 시대가 아니라서 교체 검증이 가능하고 종이 신문과 같은 매체를 넘어서 인터넷 시대에 들어서는 사람들이 매우 선별적으로 기사를 보기 때문에 어떤 종류의 기사를 내보내느냐에 따라 신문사의 수입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어버린 지금의 기자들은 이젠 기자 정신을 더 이상 이어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선동에 동조하며 부화뇌동(附和雷同; 자신의 뚜렷한 소신 없이 그저 남이 하는 대로 따라가는 것)하는 언론에 의해 잘 길들여진 다수의 추종자들이 존재해 길을 잃는지도 모르고 행동 합니다.
노예가 노예로서의 삶에 너무 익숙해지면 놀랍게도 자신의 다리에 묶여있는 쇠사슬을 서로 자랑하기 시작한다.
현대의 노예는, 스스로 노예의 옷을 입고 목에 굴욕의 끈을 휘감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놀랍게도, 현대의 노예는 스스로가 노예라는 자각이 없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노예인 것을 스스로의 유일한 자랑거리로 삼기까지 한다 ...
- Amiri Baraka, 아미리 바라카: NY Harlem 196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