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인슈타인의 주사위와 슈뢰딩의 고양이
깊은 겨울의 출장지의 저녁은 길죠.
시간을 채워줄 책이 벗이 됩니다.
언듯보면 엄청 어려운 물리학책보다는 뭔가 숨겨진 이야기를 들어볼수 있을것 같은 책 제목이 여유롭게 책장을 넘기게 합니다.
Albert Einstein 아인슈타인은 말할것도 없고, 많은 일반인들이 Erwin Schrodinger 슈뢰딩거에 대해서도 한 번쯤 들어봤을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은 특수상대성이론과 일반상대성이론으로, 슈뢰딩거는 파동방정식과 ‘슈뢰딩거의 고양이’로 대중적으로 유명한 과학자죠.
저자 Halpern, Paul 폴 헬펀은 물리학을 바꿔놓은 두 사람, 아인슈타인과 슈뢰딩거 이들의 연구과정을 집중 조명하며 두사람의 우정과 연대 그리고 반목과 화해를 자연스레 그려 갑니다.
Einstein's Dice and Schrodinger's Cat
제목은 너무나 잘 알려진 아인슈타인을 바로 떠올리게 하는 1926년 양자역학의 아버지 중 한명인 Max born 막스 보른에게 쓴 편지에 나온 주사위와 밀폐된 상자 속에 독극물과 함께 있는 고양이의 생존 여부를 이용하여 양자역학의 원리를 설명한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주사위는 자연에는 우발적인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신성의 필연성에 따라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고 행동하도록 결정되어 있다.」는 스피노자의 말을 아인슈타인이 인용해, 우주에 대한 근본적 설명에 애매모호함이나 주관성을 배제하려고 했던 입장으로 우연을 거부하고 결정론적인 믿음을 갖게 된 데에는 분명 스피노자의 치밀한 철학체계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 생각됩니다.
저는 존재의 질서정연한 조화를 통해 스스로를 드러내는 스피노자의 신을 믿지, 인간의 운명과 행동에 관여하는 신은 믿지 않습니다.”
-본문 중, New York Times, 1929년 4월 25일자에서 아인슈타인의 말 인용
26세의 아인슈타인이 일반 상대성 이론의 핵심 방정식을 발표한 1915년, 그리고 10년 후 어윈 슈뢰딩거는 그의 이름을 딴 양자 이론 방정식을 발견했습니다.
이 방정식은 오늘날 기초 물리학에 대한 우리의 이해의 핵심으로 남아 있으며, 그 이야기는 수년에 걸쳐 많은 저자들에 의해 잘 전달되었습니다.
책에서 저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주제인 두 사람의 후기 경력에 대한 주제를 훌륭하게 다루었습니다. 물리학의 현재 도전적인 상황의 일부 측면의 기원을 밝히는 매혹적이고 생각을 자극하는 이야기입니다.
1905년부터 1930년까지의 사반세기는 현대 물리학의 가장 반항적이고 낭만적인 시기였으며, 아인슈타인과 슈뢰딩거가 가장 두드러진 인물이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학계에서 추방된 특허청에서 일하면서 초기에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슈뢰딩거는 여자 친구와 함께 산에서 휴가를 보내는 동안 방정식을 찾았고 아내의 애인인 수학자 Hermann Weyl 헤르만 베일의 도움을 받아 방정식을 작성하기 위해 취리히로 돌아왔습니다. 저자는 둘 다 관습을 얼마나 싫어했는지 설명합니다.
아인슈타인은 방문하는 고위 인사들이 자신보다 자신의 옷을 보고 싶어 한다면 옷장을 들여다볼 수 있다고 언급함으로써 자신의 평상복 차림을 정당화했습니다.
거대한 물체에 의해 구부러지는 시공간 기하학의 관점에서 중력을 훌륭하게 설명한 1915년 연구 직후, 아인슈타인은 훨씬 더 포괄적인 설명, 즉 중력과 전자기학의 통합된 기하학적 이론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이 프로젝트에 여생을 바쳤고 나중에 슈뢰딩거가 합류했지만 성공하지 못했고 문제는 여전히 최고의 물리학 이슈로 남아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유명 과학자의 전형이며, 그의 이름과 이미지는 일반 생활에 흡수되었고 제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될 때 비엔나를 탈출한 슈뢰딩거는 정착한 아일랜드에서 상당한 정도의 유명인사로 발돋움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일찍이 미국으로 이주하여 프린스턴에 새로 설립된 고등연구소에서 높은 급여를 받는 가장 초기의 학계 록스타 자리를 차지했고 슈뢰딩거는 프린스턴에 있는 연구 기관을 모델로 한 새로운 연구 기관의 초석이 되어 사람들에게 매료되어 갑니다.
전쟁 내내 슈뢰딩거와 아인슈타인은 정기적으로 편지를 주고받았고, 둘 다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 사용되는 기하학을 일반화하는 데 기반을 둔 통일에 대한 매우 유사한 아이디어에 대해 작업했습니다.
그들이 가장 문제라고 생각한 것은 확률이 양자 이론에서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였고, 계산은 특정 답이 아닌 통계적 예측만 산출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반론을 "신은 우주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라고 요약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들의 토론은 유명한 「슈뢰딩거의 고양이」 가설인 강력한 사고 실험으로 이어졌습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핵이 붕괴할 때 고양이가 죽도록 만들어진 단일 방사성 핵과 같은 불안정한 양자 시스템을 가진 장치에 갇힌 것으로 보입니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반감기가 한 번 지나면 핵은 양자 상태에 있게 되며 일단 측정이 이루어지면 여전히 그 자리에 있을 확률이 50%이고 붕괴할 확률이 50%입니다.
하지만 고양이는 어떨까요?
양자 이론은 측정 직전에 고양이가 반쯤 살아있다/반죽은 상태에 있다고 주장하는 것 같습니다.
이 두 물리학자의 위대한 성공은 그 주제의 모든 학생들에게 가르쳐지지만, 그들의 이후 실패도 주목할 가치가 있습니다.
저자는 슈뢰딩거와 아인슈타인의 관계를 중심으로 바라본 현대물리학사의 모습을 면밀한 자료조사와 이야기 실력으로 흥미롭게 풀어냈습니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또는 다른 과학자들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보다 친근하게 두 천재 물리학자의 개인적인 생각에 다가갈 수 있습니다.
책을 덮으며 현대 물리학사에서 놀라운 업적을 남겼던 두 사람이지만, 1차 및 2차 세계 대전을 겪고, 나치의 영향을 직접 경험했던 사람들이기에 각자 연구에 큰 영향을 미치는 환경 속에서 이루어낸 결과물들이라는 점을 슈뢰딩거와 아인슈타인의 관계를 통해 생각하게 합니다.
언론을 통해 공격을 받기도 칭송을 받기도 했던 아인슈타인은 여전히 대중에게 대표적인 과학자였습니다.
그가 발표한 이론은 실체에 상관없이 곧이어 언론에 보도되었습니다.
그렇게 대중의 지속적인 관심을 얻었지만, 주류 물류학계에서는 점점 더 멀어졌습니다.
그의 노년에는 여전히 대중의 사랑과 함께했지만 애석하게도 물리학자들과의 접촉은 대부분 잃어갔습니다.
슈레딩거는 동료학자에게는 파동방정식로 익숙한 학자였지만 아인슈타인과 달리 대중에게 잘 알려진 과학자는 아니었습니다.
그런 그가 고양이의 역설로 대중들에게 각인시킨것은 그의 사후에 집필된 공상과학소설때문이었습니니다.
아인슈타인은 71번째 생일이 가까워진 몇 달도 50번째 생일을 맞이할 때와 똑같은 방식으로 보냈다. 새로운 통일이론을 발표하고 홍보에 나선 것이다.
아인슈타인이 내놓은 방정식들은 신뢰할 만한 것이든, 그렇지 못한 것이든 간에 기자나 물리학자를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달콤한 꿀과도 같은 것이었다.
슈뢰딩거가 사망할 당시 물리학자들은 주로 파동방정식 때문에 그를 알고, 생물학자 그리고 생물학 열성가들은 주로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강연 때문에 그에게 익숙해져 있었다. 하지만 그가 과학에 가장 크게 기여하게 될 고양이 역설에 대해 일반 대중은 전반적으로 잘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1970년대 들어 몇몇 공상과학소설이 그의 얽힘 이야기에 관심을 불러일으키면서 이런 상황이 바뀌게 된다.
- 본문 8장 아인슈타인과 슈뢰딩거의 말년중
아인슈타인과 슈뢰딩거의 삶을 되돌아보면 풍차와 싸우려 돌진을 했던 돈키호테와 산초처럼 풀리지 않은 과학적 난제와 새로운 발견이라는 거대한 풍차 맞서 무모하게, 그리고 지독히도 고독하게 싸워나갔던 과학계의 외로운 투사가 아니었나 생각이 됩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것이 돈키호테가 그러했던 것처럼 비웃음을 받고, 자신의 삶이 별나게 비칠 수도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연법칙의 본질을 찾아 고군분투했던 그들의 노력은 우리의 눈에 아직도 아름답게 빛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