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교시절의 Bildungsroman (성장소설)의 첫 감동으로...
초등학교 전학온 후부터 중학교까지 흥미를 잃었던 책을 다시 집어 들게만든 책이 데미안 입니다.
데미안으로부터 시작된 책 부심은 지금까지 이어가고 있을만큼 임팩트가 있었습니다.
이제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러 다시 한번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지 궁금해서 읽어보았습니다.
데미안은 제목을 들어 보기만하고 읽어보지 않은 분도 물론 계실것이고 어린시절 읽기는 했지만 어떤 내용인지 거의 기억 못하는 분들도 계실거라 생각 합니다.
데미안을 성장한 이 후에도 한번쯤 읽어보면 좋은 소설이라 생각합니다.
저자인 헤르만 헤세는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서 라틴어 학교와 신학교는 중퇴했지만 신학교를 다녔습니다.
Tübingen 튀빙겐에 있는 서점 점원을 거쳐서 서점 주인으로 일하기도 했는데 문학에 심취했고 또 시와 종교, 신학 이런 부분에도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데미안에는 특히 그의 유년기, 성장기의 자전적 요소가 많이 보이기도 합니다.
또 신학교 재학시절 고민했을 세계의 구성원리라든가 신과 선, 악 이런 문제에 관한 그의 관심과 고민이 책에 많이 나타나 있습니다.
특히 유대교의 비젼이라 할 수 있는 Kabbalah 카발라의 영향이 데미안에는 굉장히 강하게 드러납니다.
그래서 처음 읽으실 때는 한 소년의 성장기구나 생각할 수 있지만 다시 읽어보면 어떤 면에서는 굉장히 심오하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한 소설이구나 느낄것입니다.
데미안은 Sinclairs싱클레어라는 소년이 주인공이죠.
싱클레어가 데미안이라는 흥미로운 친구와 함께 겪는 여러가지 경험에 관해 이야기 하는거죠.
싱클레어라는 소년이 청년이 되기까지의 과정인데 싱클레어의 눈으로 본 세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데미안과 만남이 그의 조용하고 평온했던 삶과 내면을 송두리째 흔드는 계기가 됩니다.
성장, 자기구현의 문제는 독일문학에서 전통적으로 중요한 주제가 되어, 한 사람이 많은 방랑, 방황을 통하여 (사회적) 인식에 이르는 과정을 그리는 작품인 Bildungsroman 빌둥스로만은 하나의 장르로 마들어 지기도 했습니다.
친구들사이에서 돋보이고 으스대고 싶었던 그는 자신이 도둑질을 해냈다고 거짓말을 하고 그것으로 인해 Franz Krommer 프란츠 크로머에게 약점을 잡히게 되어 협박당하는 신세가 되어 크로머에게 돈을 뜯기면서 가족의 돈을 훔치고 가짜 돈을 가져가는 등의 편법을 쓰며 자기도 모르게 어두운 세계에 빠져들게 됩니다.
라틴어 학교에 전학 온 Demian 데미안은 이런 것을 눈치채고 크로머가 더는 싱클레어를 더이상 괴롭히지 못하게 만듭니다.
무슨 방법을 써서 그렇게 한건지 싱클레어는 궁금하지만 묻지는 못합니다.
크로머에게서 벗어난 싱클레어는 마치 악의 세계로부터 탈출해, 선의 세계로 복귀한 탕아의 귀향식을 행하듯이 다시 '모범적인 아들'의 역할에 충실하게됩니다.
물론 완전히 안정을 찾은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데미안에게 감사와 두려움, 경탄과 불안, 호감도 느끼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강력한 매력에 대한 반항심 같은 것들이 뒤섞인 어떤 느낌을 품게 되었기때문입니다.
우리가 성장기에 대부분 겪는 일이죠.
굉장히 매력적이고 강한 친구에게 끌리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 친구에게 너무 빠져들까 두렵기도 한 감정을 데미안에게 느끼는것입니다.
크로머와는 좀 다르죠.
크로머는 순수한 악이라고 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싱클레어가 볼때 데미안은 힘이 강하다는 점에서는 크로머와 비슷하지만, 한편으로는 매혹적이고매력적인 점에서 좀다릅니다.
어렸을때 자기가 있었던 단순한 선의 세계, 어머니와 아버지의 세계에서 자기를 끄집어내어 낯선 어떤 나쁜세계와 자꾸 가까이하게 하는것 같기도 하고요.
데미안이 불안감을 느끼는것은 자연스럽습니다.
또 자기가 크로머라는 악으로 부터 탈출하게 된다는것이 자기 자신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고 데미안이라는 존재를 통해서 가능했기때문에 이런점도 싱클레어에게 편치만은 않은 느낌을 주게 됩니다.
그래서 싱클레어는 데미안을 약간 멀리하면서도 계속 그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어렸을때 부모님의 세계인 선의 세계와 다른 악의 세계를 경험해도 진리를 발견하지 못합니다.
어둠의 세계에 사로잡혀서 살아가는 자기모습에서 일견 쾌감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굉장히 비참함을 느낄 뿐입니다.
그때 성장소설에서 늘 그렇듯이 어떤 이상적인 여성이 나타나게 되는데요.
바로 베아트리에라는 여성이 그의 내면의 세계를 채울것 같은 또다른 대안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싱클레어는 매일 그녀를 생각하며 가장 이상적인 초상화를 그리는 버릇을 들기 시작했는데... 문득 그림을 본 그는 기겁한다. 그 얼굴은 바로 데미안이었던 것입니다.
김나지움을 무사히 졸업하고 베아트리체도 어느새 데미안의 그늘에 가려 싱클레어의 추억 속으로 사라집니다.
Der Vogel kämpft sich aus dem Ei. Das Ei ist die Welt. Wer geboren werden will, muß eine Welt zerstören. Der Vogel fliegt zu Gott. Der Gott heißt Abraxas.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누구든지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여야 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이다.
신성과 마성, 남성과 여성, 인성과 수성, 선과 악을 다 갖추고 있는 신비로운 신, Abraxas 압락사스*1(그리스, 오리엔트의 영지주의에서 신의 비밀의 이름으로 이 책에서는 새롭게 찾아져야 할 그 어떤 신성의, 미지의 신비로움으로 전용)가 암호처럼 등장합니다.
우연히 만난 오르간 연주자 Pistorius 피스토리우스는 압락사스에 대해 여러 가르침을 주는데, 싱클레어가 그려내는 꿈의 영상, 문장에 그려진 그림…베아트리체, 구름의 모습 등에서 압락사스의 모습이 윤곽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피스토리우스의 종교적 열망, 즉 지극히 자기 자신의 길이 아닌 현실적인 제도를 향하던 열망은, 결국 싱클레어가 피스토리우스와 결별하는 계기가 됩니다.
책의 마지막에 데미안이 사라진 후 싱클레어는 말합니다.
완전히 내 자신 속으로 내려가면 ··· 거기서 나는 검은 거울 위로 몸을 숙이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면 나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이제 그와 완전히 닮아 있었다. 그와, 내 친구이자 나의 인도자인 그와.
이렇듯 데미안과 '나'가 거의 하나로 합쳐지면서 작품은 마무리됩니다.
헤르만헤세의 관심사이기도하지만 선과 악을 이분법적인 세계가 데미안의 중요한 틀입니다.
유대인의 비젼인 Kabbalah 카발라*2에서는 신이 선의 모습을 하고 있는것도 아니고 악의 모습을 하고 있는것도 아니고 통합된 존재로서 바라봅니다.
이런것들이 헤르만 헤세의 종교적 비젼이엇는데 싱클레어라는 인물의 성장을 통해 이런 카발라의 세계를 소설적으로 형상화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장과정에서 겪는 여러가지 변화를 잘 보여주고 있기때문에 이 소설이 고전이 된것인데, 우리가 어렸을때는 하나의 세계만 존재하죠.
아주 어려렸을때는 선의 세계만 있습니다.
악이라는것을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학교 다니면서 프란츠 크로머 같은 악의 세계를 만나게 됩니다.
자기를 괴롭히고 이유없이 자기를 미워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청소년기에는 세계는 선과 악 이런 두 세계가 있는것인가와 같은 이분법적인 세계관을 생각 하게 되는데요, 이 책을 우리가 읽다보면 데미안이라는 인물은 선과 악, 어려운말로 하자면 변증법적으로 통합된다고 할까요.
세계는 선과 악으로 나뉘어 있지 않고 그 보다 훵씬 더 복잡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계속 이런것들을 다르게 생각하도록 만듭니다.
성서에서 나오는 이야기들, 굉장히 신성한 것이지만 데미안은 꼭 그렇게 볼 수는 없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계속 싱클레어에게 일깨워주고 그것을 통해 싱클레어는 세계라는것이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라는것을 알게 됩니다.
이것이 다 통합된 어떤 세계가 있을것이고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암ㅎ다는 것을 알게되는 것이 성장이라는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데미안을 성장 소설이라고할때 그것은 소년이 성장하며 이런 저런 일을 겪어서 성장 소설인것이 아니고 작가인 헤르만 헤세의 세계관 선과 악의 기독교적 이분법적 세계관을 극복하는 인물을 보여주었기때문에 많은 독자의 오랜 사랑을 받은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1 압락사스(αβραξας=Abraxas)의 그리스어의 자리값(α=1, β=2, ρ=100, ξ=60, ς=200)을 합하면 365로 '해 年의 신'으로도 나타납니다.
*2 카발라 Kabbalah 창조 과정에서 악이 세계에 혼입되어 그 악으로부터의 구제, 질서의 회복은 하느님 나라의 수립이라는 형태로 종말론적으로 실현된는 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