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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문 CXCII 親舊, 벗

; 유승룡이 인스타에 올린 벗에 대한 사진으로부터

by Architect Y

존경은 받았으나 사랑은 못 받았다.

그래서 외로웠다.

다르게 산다는 건 외로운 것이다.


남들이 보는 이 아무개는 성공한 사람이라고 보는데, 나는 사실상 겸손이 아니라 실패한 삶을 살았구나. 그거를 느낀다.

세속적인 문필가로 교수로, 장관으로 활동했으니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실패한 삶을 살았다.

겸손이 아니다.

나는 실패했다.

그것을 항상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내게는 친구가 없다.

그래서 내 삶은 실패했다.

혼자서 나의 그림자만 보고 달려왔던 삶이다.

동행자 없이 숨 가쁘게 여기까지 달려왔다.

더러는 동행자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보니 경쟁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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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지성이라 불리며 누구보다 성공한 인생을 살았던 고 이어령 선생이 그의 마지막 책,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에서 보여준 이야기입니다.

모임은 많았지만 친구가 없었던 사람.

이 글을 보며 나는 친구 있지, 난 친구 많지…라고 생각했다면 그 수 없이 많은 모임 속 사람들도 이어령교수의 친구였을지 모릅니다.

明心寶鑑 명심보감 交友篇 교우편에서도 이야기를 언급하고 있죠.


술 먹고 밥 먹을 때는 형, 동생 하며 살가워하는 친구가 천 명에 이르지만, 정작 급하고 어려울 때는 나를 도와주는 친구가 한 명도 없다

(酒食兄弟千個有 急難之朋一個無 주식형제천개유 급난지붕일개무)


이런 이야기를 할 때면 반드시 떠오르는 인물이 추사 선생이죠.

한때 잘나가던 추사가 멀고도 먼 제주도로 귀양을 가보니 그렇게 많던 친구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누구 한 사람 찾아주는 이가 없었는데 예전에 중국에 사절로 함께 간 이상적(李尙迪)이라는 선비는 그런 그에게 소식을 전한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중국에서 많은 책을 구입해 그 먼 제주도까지 부치며 극도의 외로움에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던 추사에게 그의 우정은 큰 위로와 감동을 주었고, 추사는 절절한 우정을 한 폭의 그림에 담았는데 그것이 바로 유명한 세한도(歲寒圖)입니다.

날씨가 차가워지고 난 후에야 소나무의 푸르름을 안다.

歲寒然後 知松栢之後也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야라는 論語논어 子罕篇자한편에서 빌어 왔죠.

지기지우(知己之友)_지기지우_知 己 之_6.png

우리에겐 색창연연(古色蒼然: 오래되어 예스러운 풍치나 모습이 그윽함)한 벗이라는 멋진 말이 있습니다.

벗은 ㄷ 받침의 벋으로 팔을 기꺼이 '뻗(벋)을=내밀 수 있는' 이가 곧 벗입니다.

오랜 사이라도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내민 손을 뿌리칠 수 있으니 그 때는 이미 친구가 아닌 것이되는것이겠죠.


만약에 나를 알아주는 단 한사람의 을 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10년 동안 뽕나무를 심고

1년동안 누에를 길러 손수 오색실을 물들일 것이다.

~ 중략~

끼니마다 밥을 먹고,

밤마다 잠을 자며,

껄껄대며 웃고,

땔나무를 해다 팔고,

보리밭을 김매느라 얼굴빛은 새까맣게 그을렸을지라도 천기가 천박하지 않은 자라면,

나는 장차그와 사귈것이다.

나보다 나은 사람은 존경하고 사모하며

나와같은 사람은 서로 아껴주고 격려해 주며,

나만 못한 사람은 불쌍히 여겨 가르쳐 준다면

이 세상은 당연히 태평해질 것이다.

-나를 알아주는 벗(知己之友), 청장관전서 靑莊館全書 제63권 선귤당농소 蟬橘堂濃笑 중


벗의 그윽한 멋을 뽐낸 기념비적 명문이죠.

가장 절실하고 치열하게 살았던 시절에 만났던 이 사람... 책에 미친 바보 형암 이덕무를 바라보던 연암.

이덕무가 죽자,

연암 박지원은 이리저리 방황하고 울먹이며 혹시라도 이덕무같은 사람을 만날수 없을까 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라고 했던 이덕무와 박지원의 깊은 나눔.

그의 글을 생각하며 읽다보면 늘 간구하던 그런 벗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하게 됩니다.

생각이 많아지는 가을, 술먹고 밥먹고 흥청거릴때 살가워하는 지인들이 아닌 이어령교수가 느꼈던 벗을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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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에서의 친구와 서양의 friend는 서로 개념이 약간 다릅니다.

friend가 '사랑하다'를 뜻하는 고대영어 frēogan에서 비롯된 말로 friend는 '연인'에서 '친구'로 그 의미가 발전된 말인 반면 친구는 오랫동안 친한 관계가 유지되고 있는 사이를 나타냅니다.

다시 말하며 friend에는 기간 조건이 없기 때문에, 만난 지 얼마 안되었어도 의기가 상통하면 ‘friend’라 말할 수 있지만 친구라는 말에는 '오랫동안'이라는 조건이 걸려 있어서 사귄 기간이 얼마 안되거나 오래됐어도 교분 횟수가 드물 경우 ‘우리는 친구다’라고 하는 것은 잘목되었다고 볼 수 있겠죠.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서 親舊(친할 친, 옛 구)라는 말이 멋 있다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쉽게도 친구는 한자죠.

親舊친구에서 親친은 친척을 의미하고 舊구가 지금의 친구를 뜻합니다.

이는 司馬遷사마천의 史記사기(기원전 1세기)에서 舊구가 동의어 故고로 기재된 親故친고를 볼 수 있는데 이곳에도 친척과 친구를 함께 나타내는데 여기서의 故(옛 고)는 아주 먼 과거 →오랜 교분 → 친구를 의미합니다.

실제, 親舊친구라는 말은 진나라의 陳壽진수가 지은 三國志삼국지*에(3세기 말) 처음 등장하는것으로 보입니다

(*삼국지는 우리가 알고 있는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삼국지연의-가 아닌 역사서)

4세기에 와서 무릉도원을 노래했던 시인 도연명陶淵明이 쓴 유시상의 시에 화답하여(和劉柴桑 화유시상)에서 정확히 보입니다.


山澤久見招 胡事乃躊躇 산택구견초 호사내주저

直爲親舊故 未忍言索居 직위친구고 미인언색거

산과 물로 오랫동안 초대 받았으니,내가 무슨 일로 주저할 것인가,

다만 친한 옛 벗들 때문에, 살곳 찾아 가겠다는 말을 차마 못했도다.


2003년 안재욱이 부른 노래, 친구는 1997년 중국 가수 주화건 周华健의 원곡 朋友 붕우의 리메이크 곡입니다.

실제로 중국에서는 친구라는 말보다 붕우朋友를 주로 사용하고 있는데 友(벗 우)자의 갑골문을 보면 손을 그린 又(우)자 두 개가 같은 방향으로 나란히 있는 모습으로 손을 나란히 함은 곧 어깨동무를 뜻하고 朋(벗 붕)자는 鵬(붕새 붕)과 관련이 있는데 붕새는 한 번에 구만리를 난다는 상상의 새로 붕새가 한 번 뜨면 그 주변에 새카맣게 뭇새들이 함께 떼 지어 난다고 해서 '떼, 무리→(함께 어울려 다니는) 벗'의 뜻이 나왔죠.

일본에서는 ともだち (도모다치 友達)를 사용한다고 알고 있는데 그냥 일반적인 친구를 말하고 비슷한 말로 ゆうじん (유진 友人)인것에 비해, 모든걸 다 내팽겨치고 와줄 수 있는 그런 친구, 우리의 벗의 개념은 しんゆう(신유 親友)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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