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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문 CXCI 얼어붙은 여자

; Femme Gelee-Ernaux Annie 아니 에르노

by Architect Y
함께 읽는 여자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세상


개인적으로 이 책을 커플이 함께 읽어보기를 권한다.

여성은 공감을, 남성은 여성에 대한 이해를 얻을 수 있을 것이고, 양쪽 모두 상대편의 관점에서 서로를 바라볼 기회를 얻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철저하게 여성의 시각에서 쓰인 이 책에서 배제된 남성의 목소리 또한 들어볼 필요가 있으리라. 그것이 함께 산다는 모험을 조금은 덜 위험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25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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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2022년) 10월 6일 노벨 문학상으로 선정된 아니 에르노가 쓴 「얼어붙은 여자」 는 여자아이가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을 기록한 책으로 늘 모든 사람으로부터 존중받기를 원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한 사람이 있어 올려봅니다.

얼어붙은 여자는 1981년 출간된 아니 에르노의 세 번째 작품으로, 작가 스스로 소설로 명명한 마지막 작품으로 아니 에르노 문학 세계의 전환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집필하면서, 남편과 헤어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한 인터뷰에서 작가는 자유를 다시 찾고 이혼을 하기 위해 책을 썼다고 밝힌바 있으며 작가는 「얼어붙은 여자」를 당시 남편에게 헌사했으며, 소설 출간 몇 해 후 이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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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첫 문장)
상처받기 쉽고 가녀린 여자, 보드라운 손을 가진 요정 같은 여자, 소리 없이 질서와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집안의 자상한 숨결, 묵묵히 순종하는 여자, 아무리 돌이켜봐도 어린 시절 내 주변에서 이런 여자들을 찾아볼 수는 없다.
한쪽에는 남자들의 길이 있고, 다른 쪽에는 여자들과 아이들의 길이 있지만,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같은 흐름 속에서 같이 산다.

-23p


소녀에서 한 남자의 아내, 그리고 아이의 엄마가 되는 과정은 문화와 교육으로 만들어진 남성과 여성 사이에 존재하는 비합리적인 차이를 발견하고 확인하는 시간에 불과합니다.
화자는 작은 상점 겸 카페를 운영하면서 자연스럽게 집안일과 바깥일을 공유하는 부모의 영향으로 남성과 여성에게 정해진 역할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어린 시절을 보냅니다.

오히려 부모는 아이에게 여성스러움을 강요하지 않고, 책을 읽고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지만 가정이라는 작은 사회를 벗어나면서 화자의 눈에 비친 세상은 성별에 따라 역할이 정해져 있으며, 남녀 간의 차이로 가득 차 있습니다.
보수적인 가톨릭 사립학교의 교육은 편협한 여성의 윤리와 역할, 그리고 모성애를 강조하지만, 사춘기인 화자는 소상공인의 자식으로 학업 성취를 통해 자신만의 확고한 위치를 만들어감과 동시에 성(性)을 발견하고 남성에 대한 동경을 키워가는데 이성에 대한 호기심과 갈망, 성에 대한 욕망 그리고 불안한 미래에 대한 근심은 청소년기 화자를 지배합니다.
결혼에 대한 환멸, 그리고 결혼 이후 불확실한 삶에 대한 불안으로 망설이지만, 전통적으로 규정된 결혼 제도 속으로 들어간다. 젊은 대학생 부부의 삶은 남성과 여성에게 규정된 역할의 차이를 다시금 확인하게 합니다.

여행과 사랑보다 더 멋진 것은 없다고 믿던 자유롭던 소녀는 그렇게 얼어붙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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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 많았고 능동적으로 유년 시절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난 여자가 아래에 있어야 하고 자신을 제공해야 한다는 기존 관념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수동적인 모습을 상상해도 역겹지 않았다.

-102p


그녀가 채택한 자전적 소설이라는 장르는 기억에 대한 주관적 시선은 있을지 모르겠지만 '거짓'과 '허구'는 없습니다.

은유나 꾸밈도 없는 단문의 문장으로, 사건의 밖에 서 있는 관찰자의 담담한 시선으로, 과거, 기억, 사건을 전개합니다.

거기에는 한 사회를 지배하는 정치, 문화, 계층과 관습, 교육의 영향에 둘러싸인 개인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그래서 지극히 사적일 수밖에 없는데 여성들은 그런 그녀의 소설을 읽으며 본문의 내용 처럼 ‘나는 늘 나만 그렇다고 생각해 왔다.(p.79)'고 중얼거리게되고 남성은 그런 상황을 곱씹어 보게 됩니다.

그래서일까요, 저자는 이 책을 남녀 커플이 함께 읽기를 추천하고 있습니다.


여자 아이가 아무것도 할 줄 모른다고 하면 사람들은 다림질하고 요리하고 청소할 줄 모르는 걸로 이해한다는 이야기,

똑똑하고 열심히 공부하는 게 오히려 남녀 사이에서는 결점이 된다는 이야기,

남자들은 자유롭게 욕망할 수 있지만 여자는 그래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

남자들이 하자는 대로 하는 여자들을 사람들은 존중하지 않는다는 주위 사람들의 말, 남자친구가 원하는 대로 머리 모양과 스타일을 바꾸는 이야기.


아니 에르노는 자서전도 소설도 아닌, 문학과 사회학과 역사학 그 어느 범주에도 포섭되지 않는 강한 색을 가진 작가죠.

출간 40주년을 맞아 한국어로 번역된 얼어붙은 여자를 위해 아니 에르노는 한국의 독자들에게 남녀의 불평등한 역할을 해소하기 위한 구체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사회가 전통적으로 남성에게 부여한 특권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특권들을 문제 삼고 후대에 넘겨주지 않는 일이야말로 여성의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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