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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itect Y Apr 17. 2023

느린 여행, 제주 네번째(마지막) 이야기

; (돌아보며) 앞을 바라보기

마지막날, 생각보다 날이 좋아 무리하지 않고 숙소 가까운 곳에서 해돋이를 보려고 보목포구 지나서 게우코지로 달렸습니다.

서귀포 구 시가지에서 차로 딱 10분거리 입니다.

일출시각은 오전 6시 10분.

그냥 길가에 차를 주차하고 바로 볼 수 있는곳.


게우코지 일출


하효항과 보목항 사이에 스치듯 지나칠 수 있는 장소가 의외로 일출이 예쁜 곳이 됩니다.

이름이 특이한데, 우선 코지는 너무 익숙한 말로 ‘곶(串; 바다 쪽으로, 부리 모양으로 뾰족하게 뻗은)’이고

게우에 대해서는 전복 내장이라고 비석에 새겨져 있기는 하지만(잘못된 정보가 너무 많다보니…) 이외에 거위라고하는 편이 맞을듯 합니다.

합치면 거위 모양 곶.

남쪽임에도 일출을 보기 좋은 이유는 이렇게 튀어나와 있는 지형때문입니다.

그것만이라면 조금 모자란것 같은데 재미있는 바로 앞으로 보이는 생이돌.

게우코지 명판과 함께 서 있는 다른 비석의 내용에 이것도 모자바위라는 말을 하는데 이것도 의심이 가는 부분이죠.

사투리로 생이는 새(鳥)의 제주 방언 아니면 형(兄)이라는 경상도 방언입니다.

명판에는 먼 바다로 고기잡이 떠난 아버지를 기다리는 어머니와 아들의 모습을 한 모자바위로 추정한다고 씌여있는데, 조금 억지스럽습니다.

이 부분은 세밀한 고증이 필요한듯합니다.

새가 놀던 바위라는 의미에 적합하게 해돋이를 보는 시간 내내 새들이 놀다 가곤 합니다.

이제 체크아웃하러 다시 숙소로 갑니다.

거리가 가깝다보니 일어나자마자, 편의점에서 커피 사들고 일출 본후 숙소에서 씻고 짐 정리하고 마지막 일정을 나섭니다.


네거리식당, 갈칫국


제주, 특히 제주시내를 벗어나면 이른 조식이 힘들다

자주 다니던 서귀포 음식점이었는데 요우커의 입성과 SNS 소문으로 버글거리며 초심을 잃어버린 음식에 발을 끊었다가 7, 8년 만에 다시 찾은 네거리식당이 돌아와서 다시 아침을 해결하기 시작한지 3년정도 됩니다.

맑은 국물에 채소 몇개, 갈치 두어덩이 떠다니던 갈치국엔 시원한 육수에 가득찬 채소와 단호박 두덩어리, 그리고 갈치가 가득 담겼습니다.

초창기보다는 정갈함이 떨어지지만 기분이 좋아질만큼 회복이 되었습니다.


제주에서만 먹어 볼 수 있는 생선국들이 있습니다.

여름에 먹는 성게국과 겨울국인 몸국과 옥돔국, 멜국도 있지만 봄과 가을에 먹는 각재기(전갱이)국, 갈칫국이 제주 음식 문화는 심심하고 단순하다는 말을 듣게 하는 어쩌면 가장 제주스러운 향토음식이 아닐까요?

쏟아지는 햇살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는 제주 푸른바다의 윤슬(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을 닮아 은빛을 온몸에 두른 제주 은갈치가 배추와 단호박 사이로 살짝 모습을 드러냅니다.

국물 한 숟가락 떠 입안에 밀어 넣는 순간, 갈치로 이토록 칼칼하면서도 시원한 국물 맛을 낼수 있다는것에 절로 입꼬리가 올라갑니다.

제주 사람들은 척박한 자연 환경을 일구느라 제대로 조리할 시간이 없었고 여러 재료를 섞어 음식 맛을 내기 어려워서 덕분에 재료 본연의 맛이 그대로 살아 있다는 점이 제주음식의 매력인데, 갈치국도 비슷합니다.

비린 맛은 전혀 없고 오히려 칼칼하고 시원해 그릇째 들어서 마시게 됩니다. 

그날 잡아서 그날 끓여먹는다는 ‘당일바리’ 갈치국.

밑반찬은 soso.

예전엔 고등어 구이를 서비스로 주셨는데…아쉽긴 합니다.

늘 네거리식당 뒷편 화정에 가곤 했는데 이제 서귀포 아침엔 선택권이 주어졌습니다.


성읍마을


아침을 든든히 먹고 돌하르방의 마지막 12기를 찾아 성읍(정의현 읍성)으로 갑니다.

15년 전 즈음 제주의 고택을 찾아 간 이후 너무 오랜만에 찾는 성읍이라 궁금하기는 합니다.

사실 예전 밭이었던 곳이 세월이 흐르면서 창고, 보일러실은 물론이고 아스팔트까지 생겨나는 등 불법 증개축이 이뤄진 상황이어서 지금, 성읍은 복원공사로 한창입니다.

문화재청과 함께 성읍마을 내의 경관불량 건축물 철거 정비사업을 통해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되던 1984년 당시로 다시 돌아간다고하니 기대가 됩니다.

조선 태종 16년 성산읍 고성리에 설치된 정의현청이 세종 5년 이곳으로 옮겨진 후, 500여년간 현청 소재지였던 유서 깊은 마을입니다. 

정의현성 안에는 110호에 달하는 가옥이 있고 성 밖으로도 많은 가옥들이 존재합니다.

초가집 인허가의 경우 예전엔 15평 정도 밖에 안되다 보니 실제 거주하는 주민들이 생활에 불편을 느끼면서 보일러실도 만들고, 창고도 짓고 하다보니 불법 증개축이 피치못하게 늘어난 상황의  현실이다 보니 성읍마을에 만들어진 불법 건축물은 현재 870여동에 이르르게 되었습니다.

가옥의 경우 불법 증·개축이 743동으로 가장 많았고 용도변경이 95동, 신축이 62동이다. 창고는 신축이 57동, 증·개축 8동, 용도변경 7동 등입니다.

제주도와 문화재청은 이러한 불법 건축물들을 2026년까지 모두 정비한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우연찮게 초가 이엉을 잇는 모습도 보게되었습니다.

예전, 제주 고택들 조사하며 다녔던 곳들의 명칭도 바뀌었네요.

성읍 조일훈 가옥→제주 성읍마을 객주집 

성읍 고평오 가옥→제주 성읍마을 고평오 고택 

성읍 이영숙 가옥→제주 성읍마을 고창환 고택 

성읍 한봉일 가옥→제주 성읍마을 한봉일 고택 

성읍 고상은 가옥→제주 성읍마을 대장간 집 등…


마을로 들어서면 천연기념물로 선정된 성읍민속마을의 웅장한 상징, 약 한 세기를 지나온 느티나무와 600살이 넘은 팽나무 세 그루가 마을을 지키는 듯 근엄하게 서 있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이번에 시간이 모자라 찾지는 못했지만 성읍마을 무형문화재전수관에서는 제주 전통 술인 오메기술과 고소리술을 만들어 볼 수 있습니다.


돌하르방 다섯번째 정의읍성 


이번 돌하르방의 마지막 12기는 성읍마을, 대정읍성의 12기로 사라진 1기와 국립민속박물관의 2기를 제외한 제주 문화제인 하르방 45기를 한꺼번에 모두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정의읍성 돌하르방은 일찍부터 성읍민속마을이 지정되면서 성문 앞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돌하르방의 모양은은 눈꼬리가 올라가 있고 제주에 널린 현무암이 가진 재질을 살려서 투박하지만 기하학적인 형태표현이 다른 지역 돌하르방과 다르게 보여집니다. 

정의현성이 있던 성읍 출신들도 백하르방이라고 기억하는 것으로 보아서 민간에서는 하르방이란 표현을 더 많이 사용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정의성읍 서문 4기

제주는 1만8000의 신들의 땅인데도 돌하르방은 신이 갖는 내력도 없고 숭배의 기능도 없습니다.  

무인을 상징하는 왼손이 위로 올라간 돌하르방과 문인을 상징하는 오른손이 위로 올라간 돌하르방이 대칭을 이루게 세워놓은 것으로 보아, 유교문명의 전도사였던 조선시대 관아의 작품인 것은 분명합니다. 

처음 만들어진 곳은 대정현으로 유배인들이 제주에 들어오는 포구인 화북포구로 들어오는데, 이곳에서 가장 먼 곳이죠. 

유배형은 거리가 중요해서 화북포구에서 대정현까지 구불구불 걸어서 거리를 맞췄기 때문입니다. 

대정현감은 이름난 유학자들인 유배인들에게서 성문밖 수문장을 세우도록 조언을 받았고, 그래서 가장 먼저 이곳에 돌하르방이 성의 수호신으로 세워졌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대정현의 석수는 당시 제주에서 가장 이름난 석상인 복신미륵을 참조하여 독특한 돌하르방을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하는데, 이것을 본 정의현감도 뒤늦게 돌하르방을 만들어서 성문 앞에 세웠을 것이고 그래서 크기가 조금 커졌습니다.

정의성읍 남문 4기

대정현감과 정의현감은 제주출신이었기에  제주사람들의 정서에 보다 가까운 돌하르방의 제작을 했을 것이지만 제주목사인 김몽규는 외지인으로 보다 더 옹중석에 가까운 형상을 생각했을 것이고, 그 모델로 돌장승을 제시했던 것이 아닐까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정의현감이나 대정현감의 상관인 제주목사의 격에 맞게 키가 큰 돌하르방이 제작되었고, 개수도 두배로 늘려서 세워졌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이번 여행의 목적인 한라산 등반, 구엄리, 수산리, 낙천리마을을 느리게 걷고 돌하르방 25기 현장 방문을 마치고 여행을 마무리 합니다.

제주 시내로 들어와 간단히 밀면집에서 4일간의 마지막 점심 합니다.

정의성읍 동문 4기
산방식당, 밀면


마지막 밥은 오랜만에 가볍게, 제주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으로 자리잡아 나른한 오후의 한끼를 책임지고 있는 밀면으로 정했습니다.

산방식당 김정일사장님의 아들, 김형섭씨가 2012년에 제주시내에 오픈한곳입니다.

정성스럽고 알맞게 삶아진 국수 면발, 눈으로만 봐도 쫄깃한 느낌을 주는 두 툼한 중면의 면발 위에 먹음직스럽게 썰어 얹어 놓은 돼지고기 수육 몇 점. 그리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뽀얀 육수의 국물이 예사로워 보이지 않다. 이것이 바로 제주도의 토속음식인 고기국수죠. 

관광객들은 제주도를 여행하면 고기국수를 꼭 먹어보기 위해 소문난 고기국수집을 찾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 가게들은 최고의 고기국수를 내세우며 수많은 국수집들이 성업중 이기도 합니다. 


뜨거운 면과 돼지고기의 조합 중에 일반적으로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조합의 국수가 있습니다. 

바로 밀면과 돼지고기 수육과의 조합. 냉밀면이다 보니, 날씨가 무더운 여름철에 더위를 이기는 데에 아주 제격입니다.

산방식당.

밑반찬으로는 무채 그리고 겨자가 같이 나옵니다.

예전엔 김치도 나왔는데 없네요. 

밀면은 분식집에서 쉽게 보아오던 냉우동과 비슷해 보입니다. 

새콤해 보이는 볼그스름한 국물에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밀면. 

쫄깃한 면발은 더욱 감칠맛이 납니다.

냉밀면이라 먹기 전에는 조금 비릿하지 않을까 생각해도,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육수는 멸치 국수에서나 느낄 법한 구수한 잡내도 없고 밀면육수의 맛으로 봐서는 단순히 멸치육수만은 아닙니다.

웬만한 냉면은 비교조차 되지 않을 만큼 시원하고 개운합니다.  

수육을 곁들여 먹는 밀면의 맛 또한 표현 불가죠. 

2019년에 서울 남대문 대한상공회의소에 직영점이 오픈 했고, 2021년 대구점도 문을 열었습니다.


이제, 2023년 4월의 제주 여행을 마무리하며 공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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