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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itect Y Feb 07. 2016

육지것의 제주인문이야기 I  유배지 김춘택 적거터

유배지 乇羅탁라 그 열한번째 장소, 北軒金春澤 북헌김춘택 적거터

제주 유배의 역사 속에 우뚝 서 있는 사람 중 북헌 김춘택이 있다.

조선시대 유배인들의 행적을 좇다 보면 대를 이어 제주에 유배된 인물을 간혹 만날 수 있다.

그중에서도 金春澤김춘택은 제주에 두 번이나 유배됐으며, 아버지 金鎭龜김진구에 이어 자신은 물론이고 아들 金德材김덕재까지 당파 싸움에 휘말려 3대가 제주땅에 유배되는 기구한 운명을 대물림했다.

특히 김춘택의 아들과 동생, 조카 등 모두 14명이 제주도와 흑산도 등지에 나뉘어 유배될 때 제주목에 안치됐던 김덕재는 귀양지에서 생을 마감해야 했다.


조선왕조실록은 이들이 유배될 당시의 참혹상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逆獄역옥(역적 사건이나 반역 사건에 대한 옥사)에 연좌된 사람들 가운데 2, 3세의 아이는 定配정배하지 말라는 受敎수교가 있었는데도 이제 아울러 絶島절도에 유배시켰기 때문에 어미와 자식이 서로 헤어지느라고 울부짖는 울음소리에 和氣화기(화목한 분위기)가 손상될 지경이었으니, 이는 왕정에 있어서는 그릇된 일이었다. 당시의 사관도 이를 풍자하여 평했으니, 그래도 한 가닥 公議공의는 없어지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凶黨흉당들이 율법의 적용을 참혹하게 했다는 것을 여기에서도 알 수가 있다.

- 경종수정실록. 1723년 1월 10일」


김춘택金春澤(1670~1717).

자는 伯雨백우. 호는 北軒북헌.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숙종의 장인이었던 金萬基김만기가 할아버지이고 西浦金萬重 서포김만중이 從祖父작은 할아버지로 우리가 아는 <사씨남정기>를 지은 사람이다.  


아버지인 金鎭龜김진구는 戶曹判書호조판서, 漢城府判尹한성부판윤등을 역임하였다.  

禮學예학의 태두인 金長生김장생의 직계 후손으로 西人서인 老論노론의 중심 가문 출신으로 평생 과거를 보지 않고 관직에도 오르지 않았으나, 고종 때인 1888년 領議政영의정 沈舜澤심순택의 건의로 吏曹判書이조판서로 追贈추증되었으며, 忠文충문이라는 諡號시호를 받았다.

1689년 己巳換局기사환국으로 작은 할아버지 김만중과 아버지 김진구가 유배되고, 할아버지 김만기의 功臣勳공신훈이 削籍삭적되는 등 숙종의 外戚외척이자 노론의 명문 집안이었던 북헌의 집안은 큰 피해를 입었다.

이처럼 김춘택은 서인 노론의 중심인 勳戚훈척가문 출신으로 경신환국 이후 더욱 대립이 심해진 당쟁의 중심에 있었다. 때문에 그는 일생 동안 세 번이나 감옥에 갇히고, 다섯 번이나 유배되는 어려움을 겪었다.

이렇듯 김춘택에게 제주는 낯선 유배지가 아니라 낯익은 땅이었다.

부친 김진구가 제주에 유배됐을 때 위로차 찾아와 머물렀으며, 부친 슬하에서 배운 제주의 수재들과도 교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버지가 유배 당시 살았던 여인과의 사이에서 얻은 아들을 자식으로 인정해 자신과 같은 돌림자를 넣어 제택(濟澤)이라 이름 지은 동생이 사는 곳이기도 했다.

금부도사가 그를 호송해 제주에 도착한 때는 무덥게 찌면서 안개가 끼고 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유배인이긴 했지만 사람됨을 알아봤던지 제주목사가 그를 배려해주는 장면이 그의 문집 「북헌집」에 실린 「濟州東泉謫居記제주동천적거기(제주 동천 귀양살이 기록)」에 소상히 나와 있다.

「배에서 내려 성(제주목 관아)에 들어갔더니 목사가 법부(法府)의 관문(상급관청이 하급관청에 보내는 공문)을 살피고는 민가에 나의 주거를 정하려 하면서 살고 싶은 곳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말하기를 '그렇다면 오직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일찍이 계셨던 곳에 있어야 하겠습니다'고 하여 드디어 가서 살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김춘택은 아버지의 여인 오진의 집으로 거처를 정하게 된다.


「집은 옛날과 같았는데 간혹 넓혀져서 모두 방이 넷이었다. 여기에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주무시던 방을 이용하여 위패를 놓아 식사를 아침저녁으로 올렸다. 일찍이 노복(사내종)들이 두었던 곳을 이용하여 내가 지내는 곳으로 삼았고 나머지는 또 이번에 온 노복을 두었다.」


적거터

적거비는 김진구선생 적거비 부근이라 전하지만 찾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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