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회 이전을 코 앞에 둔 시점에 서서
소녀가 말했다.
“노래인데요. 제가 만든 거고요. 하나님이 지으신 온갖 만물들에 대한 거예요.”
소녀가 노래했다.
아주 자신 있고 맑고 진심 어린 목소리였다.
노래가 끝나자 모두가 박수를 쳤다. 물론 아이들의 박수소리가 제일 컸다.
아리스도불로는 낭랑한 목소리로 ‘브라보’를 외쳤다!
브리스가와 다른 사람들은 방해하지 않으려고 문가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디저트를 갖고 들어왔다.
사과, 포도, 배, 무화과가 보였다. 우리는 대접에 담긴 물로 손가락을 깨끗이 씻고 수건으로 닦은 다음과일을 골라 들었다.
여기저기서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누는 동안(바로 옆에 있는 모임에서는 경기장에서 벌어진 전차 경주의 윤리성에 대한 토론이 한창이었다), 참석한 사람들이 보여 준 모임 참여도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이런 열띤 토론은 나로서는 처음 겪는 일이었다.
여태껏 내가 참석했던 만찬 모임에서는, 만찬이 진행되는 동안 손님들은 최대한 자유를 만끽하며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은 아랑곳하지 않고 편지를 쓰거나 받아쓰게 하거나, 이웃과 비즈니스를 하거나, 꾸벅꾸벅 조는 일이 허다했다.
이 모임의 참석자들은 예의 바르게도 남은 음식과 포도주를 함부로 바닥에 버리지도 않았다.
다소 산만하긴 했으나, 단정하면서도 도를 넘지 않았다. 흔히 보이는 무례도 범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모임 전체에는 종교적으로 볼 때 의아스러운 점이 많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아는 한, 그때까지 일어난 일들 가운데 종교적인 내용이라곤 거의 없었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예전의 틀은 고사하고, 어째서 사제조차 없단 말인가, 아니면 더 진정한 종교성과 같은 무언가가 또 있었던 것일까?
- 본문, 종교적 격식에 매이지 않은 모임 중에서
시대의 변화와 교회의 변화는 분리되지 않고 시대가 변하면 교회도 변하지만 지금의 한국교회 역시 한국사회의 변화와 맞물려 그 속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되었는데 한국사회가 워낙 변화의 속도가 빠르다보니 한국교회가 사회의 변화속도를 따라잡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전통적인 교회의 모습을 잘 간직하는 것도 아닌 애매한 상태에 처한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무리 시대가 변하더라도 결코 변하지 않아야 할 지난 2천년간 내려온 교회의 본질은 무엇이 있을까요?
학원과 지역의 복음화라는 대전제로 1987년 시작된 교회는 이제 말도 많고 탈도 많은-과정 중 4명의 담임목사가 이, 취임한-시간을보내며 이제 원년(1987년) 성도를 다 잃어버리고 교회의 목적도 사라진채 의왕으로 이전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무엇을 위한 신축이며 누구를 위한 이전인지도 모르는채로 옮겨지는 모습에 초대교회 이야기를 과감히 써내려간 80페이지의 짧은 책을 읽어봅니다.
책에 등장하는 초대교회 모임에는 종교 모임이라기에는 심심할 정도로 특이하게 예배를 인도하는 사제도, 종교적 수사와 구호도, 종교심을 부추기기 위한 작위적인 행위도 없습니그러나 먹고 마시는 지극히 일상적이고 소박한 행위 속에 당대의 위계질서를 타파하는 비관습적인 환대와 개방성이 있고 그 안에는 급진적인 평등과 자기자신을 선물로 내어주는 사랑의 교제가 자연스럽게 내재되어 있습니다.
더욱이 공동체에 의해 초대된 '성령'과, 함께 떼어 나누는 '예수의 몸'은 그 자리를 단순한 일상을 넘어 비일상의 지성소가 되게 했습니다.
복음의 원리에 입각한 자유로운 논의들과 실제적인 구제와 돌봄을 통해 모임에 참석한 자들은 '지금 여기 이 땅에 구체적으로 임한 하늘의 나라'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1세기 초대교회는 진정한 복음의 원형이 담겨있기 때문에 현대교회가 끊임없이 회귀해야 할 고향 같은 곳이죠.
사도행전 2장은 초기 교회 예배 일부를 공개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물건을 서로 통용했고 집에서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42∼47절).
번듯한 교회 건물을 갖춰야 하고 정해진 순서와 시간표에 따라 제시간에 끝마쳐야 하는 지금의 예배와는 많이 다릅니다.
시기는 1세기 중엽 로마 시대로 아굴라 Aquila와 브리스 Priscilla가 부부의 집이 배경인데 아굴라 부부는 사도 바울과 오랫동안 관계를 맺었으며 바울서신이 제시하는 지침들을 가장 정확히 반영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로마 군인 푸블리우스 Publius Valeriu가 친구이자 기독교인인 글레멘드 Clement와 유오디아 Euodia의 초청을 받아 브리스가와 아굴라의 아파트를 방문하면서 시작됩니다.
푸블리우스는 이곳에서 낯선 자를 따뜻하게 맞이하고 여자와 남자, 어린이와 어른, 종과 주인, 먼저 온 사람과 나중 온 사람, 신자와 불신자 등의 차별이나 구분 없이 함께 이야기하고 먹고 마시며 격의 없이 토론하고 노래하는 광경을 목격합니다.
뼛속까지 로마인임을 자랑하는 푸블리우스는 주의 만찬을 기념하는 장면에서 충격을 받습니다.
아굴라는 집에서 직접 만든 빵을 떼면서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주었음을 상기시킵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자신을 희생 제물로 드리기 직전 제자들과 식사하셨습니다.
식사 중에 그들에게 빵을 나눠 주시며 그것이 자신을 나타내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포도주는, 예수님이 자신의 죽음을 통해 우리와 사귐의 끈을 창조하신 분임을 상기시킵니다.
잔을 함께 마실 때 주님이 이미 이루신 일을 감사하며 돌아봅시다.
참석자들은 이 말에 그렇다나 정말로, 아멘 등으로 화답합니다.
이들은 식사를 하면서 교제했고 일상적 대화를 이어갑니다.
대화에는 당시 노예들의 해방 문제가 소재로 나왔는데 논쟁이 생기자 바울서신을 참고해 도움을 받습니다.
이들의 예배는 이 모든 과정을 포괄하는것이었고 종교적 격식에 매어있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은 하나님이 만물을 지으신 것을 찬양하는 스스로 만든 노래를 참석자들 앞에서 불릅니다.
참석자들은 일상적인 말투로 하나님과 대화하듯 기도합니다.
누군가 세상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기도하자, 그 옆에 있던 참석자는 이를 받아 더 길게 기도했고 아이들도 기도에 참여합니다.
노래에서 시작된 찬미를 기도로 옮기는 이 교회는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습니다.
지난 2000년 동안 우리는 결정적인 무언가를 잃어버렸다.
- 본문, 서문 중 모임을 경험한 의 말
우리가 대게 예수 믿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 들어왔던 '예수 믿는 사람은 뭔가 다르다(달라야 한다)'는 당위적인 말이 낯선 이방인, 푸블리우스 Publius Valerius는 들려주고 싶을 정도로 특이한 경험이었고 사람들 자체가 확실히 인상적이었으며 그들의 행동에는 틀림없이 실제적인 무언가가 있었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급진성을 갖춘 이색적이고 인상적인 모임, 사람냄새 나는 매력적인 모임, 초청에 응하고 싶은 즐거운 모임, 오늘 이런 모임으로서의 교회는 얼마나 될까요?
저자는 각자도생의 한국교회 영성에 던지는 경종이자 대안교회를 꿈꾸는 이들의 가슴에 펌프질을 해주는 책입니다.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구호는 있으나 그에 따른 실제적인 대안이나 모델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우리에게 풍부한 상상력과 이정표를 제시해줍니다.
우리 교회가 그 잃어버린 본질을 회복하고 우리 주변에 있는 많은 푸블리우스들을 아름다운 신앙의 공동체로 초청하기 원하며 교회를 통해 신앙에 매력을 느끼는 푸블리우스 Publius Valerius들이 더욱 많아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