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문 CCXV 역사란 무엇인가

; 현재와 과거의 끝없는 대화

by Architect Y

History is a continuous process of interaction between the historian and his facts, an unending dialogue between the present and the past.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 사이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끝없는 대화이다.


더 이상 소개가 필요 없을 것 같은 책.

1961년에 나온 이 책은 그 직후에 역사학 공부를 시작한 우리 세대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쳤고,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상당한 영향력을 지키고 있습니다.

저자는 사실을 복원하는 실증주의적 역사를 비판 했던 역사가였고, 과거에 대한 연구는 현재와 미래의 전망에 기여 해야 한다는 역사의 진보를 믿으려했던 합리적이고 진보주의자였던 사람이죠.


저자는 책 곳곳에 카를 마르크스의 말을 인용했고 공감을 표했기 때문에 역사란 무엇인가는 군사독재 시절 한국에서는 금서로 묶이기도 해서 영화 변호인에도 나올 만큼 유명한 저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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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년 캠브리지에서 강연한 내용이 64년에 단행본으로 출간된 이 후 이 책은 역사가뿐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필독서였지만, 시대는 바뀌어 고전이 되었고 역사는 다시 실증주의로 되돌아가 이제 아무도 역사의 진보를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다시 책을 꺼내든것은 정치권에서 보여지는 지금의 상황과 책에서 보이는 다시 생각해 볼 문제를 생각해 보기 위함입니다.

Edward Hallett Carr는 책을 낸 지 21년 후에 죽었는데, 뭔가 고칠 필요를 스스로 느껴 개정판을 낼 의지를 보였지만 사후 그의 서재에서 발견된 개정판 원고는 서문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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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실증주의 역사학에서는 역사가의 일이란 과거의 사료를 수집하여 그저 모아서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것을 통해 사견이 들어가지 않은 순수한 역사기록으로서의 역사학을 추구했습니다.

독일의 역사가 랑케 Leopold von Ran´ke의 역사관에 반대해 사실만 잘 묘사한다고 역사가 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역사가가 행하는 사실의 주관적 선택과 기술이 역사다'라고 반기를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역사가는 물리적 한계로 모든 사료를 수집해 나열할 수 없으므로 사료를 취사선택하여야 하고, 그 안에서도 서술 순서나 묶음, 분량 등을 통해 역사가 개인의 견해를 첨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역사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 대해 저자는 사료를 바탕으로 한 역사가 개인의 합리적인 추론을 통해 역사적 사실로부터 얻을 수 있는 진리를 찾고, 학설의 끊임없는 재검토와 사료의 분석을 통한 새로운 사실의 발견으로 그것을 발전시키거나 반박해 나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역사학은 과거의 수동적인 기록기계의 역할에서 더 나아가 적극적인 역사적 사실에 대한 비판과 진리를 추구하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지라, 앞의 유명한 구절은 역사학이라는 존재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에 대해 함축하여 나타내는 표현인 것입니다.


역사란 과거와 현재 사이의 끝없는 대화라는 말의 뜻을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 이유 중 하나는 번역본에도 ‘끝없는’이 아니라 ‘끊임없는’이라고 되어 있기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저자 쓴 말은 ‘unending dialogue’로 완결될 수 없는 성격의 대화라는 뜻이죠.

그전엔 ‘continuous process’라는 이야기도 했는데 저자가 중점을 둔 뜻은 대화의 연속성이 아니라 그 비완결성, 과정으로서의 성격에 있었던 것입니다.

19세기 중 유럽에서 틀을 잡은 근대역사학에 대화를 거부하거나 소홀히 하게 만들어 이 대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역사의 진보에 대한 믿음 때문에 더 많이 진보한 현재가 덜 진보한 과거를 깔보게 된 것이죠.


저자가 대화를 내세운 것은 근대역사학의 불통을 반성하는 마음 때문이었고 그 반성이 진지한 것이었다고 인정합니다.

이 말을 한 것은 19세기 중엽 이래 근대역사학을 지배해 온, 오늘의 역사가가 역사적 사실을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믿음 위에 세워진 것이었다는 실증주의 비판의 맥락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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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6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장(역사가와 사실)은 19세기 역사학계, 특히 영국 역사학계에서 역사철학에 관한 논의가 거의 없었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그 무관심의 원인이 문명의 진보에 대한 자신감과 낙관주의에 있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2장 사회와 개인에서는 역사는 사회 속에 놓인 개인의 과거를 연구 대상으로 삼고 있고, 역사가 또한 특정 시대와 사회에 속해 있으므로 그가 속한 사회의 관심과 가치를 반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이라 이야기 하는데 시대의 변화에 따른 역사가의 관점 변화는 당연한 일이라고 저자는 이야기 합니다.

3장, 역사와 과학과 도덕에서는 역사학이 과학이어야 한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4장, 역사에서의 인과관계에서는 역사학이 우연성을 무시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루의 일과를 시작할 때 종종 스미스와 만난다고 가정해봅시다.

여러분은 아마 날씨나 대학생활 등에 대해 상냥하긴 하지만 별 의미 없는 말로 스미스에게 인사를 건넬 것입니다.

스미스도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부드럽지만 별 의미 없는 말로 인사에 응하겠지요.

그런데 어느 날 아침, 스미스가 보통 때처럼 여러분의 인사를 받는 대신 여러분의 외모나 성격에 대해 거친 욕설을 퍼부었다고 칩시다.

그러면 여러분은 놀란 표정을 짓고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면서, "이거야말로 스미스의 의지가 자유롭다는 확실한 증거군"이라거나, "인간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확실한 증거지"라는 식으로 생각하시겠습니까? 아마도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중략…

여러분은 스미스의 그런 행동에는 분명 무슨 원인이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스미스의 근거 없어 보이는 행동의 원인을 진단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 제4장, 역사에서의 인과관계 중


5장, 진보로서의 역사에서 일직선적 역사관이나 순환사관을 배격하는 저자는 역사란 역전과 이탈과 중단을 겪으면서 시간적, 공간적으로 독특한 차이를 지닌 채 진보하는 복수의 과정이라고 보고 역사가의 해석 또한 시간이 흐름에 따라 폭과 깊이가 넓어지고 깊어지므로 같은 의미에서 역사를 진보하는 과학으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6장 진보로서의 역사에서는 철한 진보주의자답게 역사도 진보하고 역사학도 진보한다는 믿음을 보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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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H. Carr의 역사관은 대부분이 중도주의적 입장에 서 있기 때문에 중도주의가 위치한 지점의 양극으로부터 다양한 형태의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지만 그의 역사관에는 역사가가 엄밀성을 갖추고 역사 해석을 시도해야 할 뿐 아니라 역사를 다루는 데 있어서도 미래에 대한 장기적인 안목을 가져야 할 것 등을 주문함으로써 역사가가 역사 해석의 책임을 방기하려는 의도에서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위험성을 배제하고 있는 점은 새겨들을 부분입니다.

역사를 대할 때의 태도 또한 단순한 사실을 사실 그대로 머리 속에 주입함으로써 역사에 내재된 의식적 측면을 무시할 때 파시즘에 경도될 위험성이 다분히 높기 때문이죠.

역사에 합리적인 해석이 개입되지 않을 때 그 역사는 사실 이상의 지위를 획득할 수 없으며, 자칫 역사를 대하는데 있어서 몰역사적 태도로 변질 될 수 있다는 점을 책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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