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문 CCXVI 한가위 차례주

; 일본술 정종正宗(まさむね)과 우리술 청주淸酒

by Architect Y

한가위가 다가왔습니다.

'한'이라는 말은 '크다'는 뜻이고 '가위'는 '가운데'라는 뜻의 옛말로 8월의 한가운데에 있는 큰 날이라는 뜻이죠.


한가위 관련, 앞선 포스팅 「중국에는 없는 고유문화 한국의 추석; 仲秋節중추절은 추석이 아니다 https://brunch.co.kr/@architect-shlee/549 」 에서는 추석 혹은 한가위를 잘못 사용하고 있는 중추절이라는 이름에 대해 적었고,

「차례상; 형식으로 얼룩진 제사상으로 본 孝 https://brunch.co.kr/@architect-shlee/857 에서는 출처를 일수 없는 홍동백서, 조율이시로 대표되는 진설(陳設; 제사나 잔치 때, 음식을 법식에 따라 상 위에 차려 놓음)의 잘못된 인식을 포스팅 했습니다.

이번 한가위에는 차례상에 올리는 술 이야기를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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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이나 한기위에 늘 마셨던 우리 음복주(飮福酒; 제사를 지내고 난 뒤 나누어 마시는 제사에 쓴 술)는 뭘까요?

차례주에 대해서 어떠한 술을 써야 한다는 특별한 규정은 없지만 전통적으로 복을 마신다는 뜻의 음복(飮福)을 가족 모두가 차례에 올린 술을 나누었으니차례주는 알코올 함유량이 높은 소주보다는 탁주, 약주, 청주 등 발효주에 대한 선호도가 높았습니다.


종묘제례에서는 이러한 탁주, 청주 계열만 등장하는데 총 3번에 걸쳐 제주祭酒를 올리는데, 첫번째로 초헌례(初獻禮)라고 불리는 막걸리, 두 번째는 아헌례(亞獻禮)라고 불리는 동동주, 그리고 마지막에 종헌례(終獻禮)로 불리는 맑은 술인 청주입니다.

잠깐 이 이야기를 붙이자면, 제사를 지내며 강신(降神)에는 2가지가 있는데 향을 피우는것과 강신주로 지하(地下)의 체백(體魄)을 청하여 올려 모시는 것이 있는데 이를 울창주(鬱鬯酒)라 합니다.

땅에 세 번에 나누어 붓는 술(성묘가서 올린 잔을 산소 주변에 붓는것은 잘목된것입니다)인 울창주는 울금 향초의 뿌리와 줄기를 흑 기장쌀과 같이 고슬고슬하게 밥을 지어 누룩에 버무려 백일 동안 익힌 술로 일명 거주(秬酒; 검붉은 색의 그윽한 향기를 풍기는 술)*2라 하기도 합니다.

원래 초헌의 예주(醴酒)는 단술이 하루밤 동안 지나서 잘 익으면 술 찌기와 익은 쌀알이 잘 섞여서 둥둥 뜨는 술로서 초헌관인 즉 제주(祭主; 제사의 주인)가 처음 잔을 드릴 때 씁니다.

아헌의 앙제(盎齊)는 일명 백차주(白醝酒)로 쌀을 쩌서 누룩과 잘 버무려 밑술을 담가 잘 익힌 다음 머귀 및 대나무잎을 넣어 찹쌀을 쩌서 누룩과 버무려 덧술을 아홉 번을 반복하여 담가 익히면 엷은 백색의 텁텁한 술이 됩니다*4.

마지막 종헌의 청주(淸酒)는 겨울에 담근 술이 여름 하지를 지나야 완전히 익는다 하여 과하주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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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대제 왼쪽부터 초, 아, 종헌

막걸리에서 청주까지 다양한 술이 등장하는 이유는 가장 단기간에 발효시켜 마시는 술이 막걸리이며, 청주 자체가 오랜 숙성을 통해 향과 맛이 깊어지는 특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청주는 역사적 의미에서의 청주(淸酒; 찹쌀을 쪄서 지에밥과 누룩 3%이상을 버무려 빚어서 담갔다가 용수를 박아서 떠낸 술)이며, 주세법상의 청주(주세법에서는 전체 쌀 중량과 견줘 누룩 사용량이 1% 미만이면 청주, 1% 이상이면 약주로 구분)*1와는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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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를 가리켜 정종正宗(まさむね)이라 부르는 사람이 있는데 정종은 일제 강점기 때 들어온 일본의 청주 상표 중 하나가 널리 쓰여 일반 명칭처럼 잘못 굳어진 것이죠.

이 말은 일본 전국시대를 누볐던 다테 마사무네(伊達正宗 だて まさむね)라는 사람에서 유래했는데 다테 마사무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잇는 유명한 사람으로 그의 가문에서 자랑하는 두 가지가 있었다고 합니다.

하나는 바로 정교하고 예리한 칼이고,다른 하나는 쌀과 국화로 빚은 청주였습니다.

등록 상표만 130개가 넘는 마사무네의 원조가 중견 주조회사로 고베(神戸)시에 있는 사쿠라 마사무네(桜正宗)라는 회사라고 하는데 1717년에 창업하여 현재까지 이르고 있는데, 11대 주인인 やまむらたさえもん(야마무로타사에몬; 山邑太左衛門)의 설명에 따르면당시 나다(なだ 灘)지역(고베, 효고현 니시노미야시)에서는 일본주의 이름에 대한 경쟁이 심했는데, 당시 6대 주인이 1840년 어느 날 그는 새로 빚은 술의 이름을 고민하다가 평소 잘 따르던 교토의 겐세이안즈코이사(元政庵瑞光寺)의 주지스님을 찾아 갔는데, 마침 스님의 책상에 놓여진 “린자이세이슈(りんざい まさむね 臨済 正宗)라고 쓰여진 경문을 보고 정종(正宗)을 떠올렸다고 합니다.

정종을 일본어로 음독하면 ‘세이슈 せいしゅ’인데, 이는 청주(清酒)와 발음이 같은데 시간이 흐르며 정종은 사람들에게 또 다른 읽기 방식인 마사무네로 불리기 시작했고, 인기가 높아지면서 마사무네의 이름을 딴 양조장이 전국에서 속속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마사무네(정종)의 이름은 널리 퍼져 이미 보통 명사처럼 여겨지게 되어, 1884년 정부에서 상표 조례를 제정했을 때, 사쿠라마사무네가 등록을 시도하였으나 허락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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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우리나라에는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집에서 술을 빚어 먹는 가양주(家釀酒) 문화가 있었습니다.

고려시대 훨씬 이전부터 조상 대대로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술 빚기 방법과 풍습으로 집에서 직접 만든 '청주'로 사람들은 차례를 지냈습니다.

하지만 우리 전통주는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1916년 조선총독부의 '주세령(酒稅令)’으로 쇠퇴하기 시작했습니다.

조선총독부가 세수확대와 쌀 수탈을 위해 주세령을 강제집행했고, 일본의 허가를 받지 않고는 더는 술을 직접 빚지 못했습니다.

특히 일본 술을 청주류로 분리하면서, 우리 고유 청주는 '약주'라는 이름으로 대체되며 나라를 잃고 술의 이름까지 빼앗기게 된 것이죠.

그렇게 전통 가양주의 맥이 점점 끊기고 있을 때, 1883년 1월 후쿠다(福田)라는 일본인이 부산에 최초로 청주 공장을 세운 것을 시작으로 여러 곳에 일본식 청주 양조장이 만들어일본 청주를 만들어 팔았습니다.

이때 여기서 만든 것이 '정종’으로 당시 '정종'은 우리의 '청주'와 제조 방식도 달랐습니다.

우리 '청주'는 주정을 섞어 쓰지 않고 전통 발효 방식만으로 만들었지만, 당시의 '정종'은 공장에서 주정을 섞어 만든 이른바 '저급' 술이었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했습니다.

'저급 술'이라는 걸 알았지만, 차례를 지내야 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전통 청주를 만들 수 없는 상황이라 울며 겨자 먹기로 정종을 차례상에 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사람들이 차례상에 정종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정종'이란 단어가 '차례주'의 대명사로 굳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해방 이후에도 문제가 있었는데 쌀 부족으로 인한 '양곡관리법'에 따라 쌀로 술을 빚는 것이 금지돼 계속해서 '정종'을 차례주로 올릴 수밖에 없었죠.

이후 어른들이 맑은 청주를 정종이라고 부른 것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입니다.

이처럼 '차례상에 정종을 올린다'는 말에는 우리의 아픈 역사가 담겨 있던 것입ㄴ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러한 문제의식을 느끼게 된 사람들을 중심으로, 우리의 전통주 '청주'를 차례상에 올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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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차례상에 올라가는 술이 정해진 건 아닙니다.

지방마다 다른데 부산, 경남 지방에서는 막걸리를 사용하기도 하고, 고창은 복분자주를 상에 올리기도 합니다.

앞에서 언급한것처럼 엄격하게 치러지는 종묘제례에서도 막걸리가 사용되었습니다.

전국에는 800여개 지역 전통주(막걸리, 약주, 소주 등)가 생산되고 있습니다.

요즘 제사는 의미나 형식이 바뀌고 있듯이 고인이 평소 좋아했던 술을 차례상에 올리는 게 더 의미 있을것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물론 원래 의미를 잊어서는 안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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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런 식의 구분은 1909년 만들어진 주세법에 따라 탄생했어요. 일본주와 조선주를 구분하기 위해 만들 어진 개념이죠.

그래서 누룩 사용량을 판단할 때 일본식 사케에 사용하는 누룩인 ‘입국’ 사용량은 따지지 않아요.

사실 사케를 만들 때는 전통 누룩보다 더 많은 양의 누룩(입국)이 들어가는데, 전통 누룩이 들어 있지 않으니 ‘1% 미만’ 판정을 받고 ‘청주’라는 이름이 붙게 되는 겁니다.

*2 鬱金香草根莖黑黍掍合酒奉宗廟香酒 울금향초근경흑서혼합주봉종묘향주 -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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