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겨울 준비의 시작.
입동이네요.
겨울로 들어선다는 24절기 중 하나인 입동을 한자로 표현하면 설입(立)과 겨울동(冬)으로 표현합니다.
이처럼 입동은 한자 뜻대로 '겨울이 시작되는 시기'로 생각하시면 되고, 입동의 의미 또한 '겨울이 왔구나~'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작년 입동때 김장이야기를 했는데, 올해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생각합니다
우선, 입동부근에 내려오는 속담에는 이러한것이 있습니다.
입동이 끝나면 김장철이 된다.
입동 전 보리씨에 흙먼지만 날려주소
입동 전 송곳 보리다.
입동 전 가위보리
입동에 추우면 그 해 바람이 심하게 분다.
24절기 중 열아홉 번째 절기인 입동은 양력으로 11월 7일경, 음력으로는 10월입니다.
김장…주부들에게는 조금 무섭기도 한 속담이죠.
입동 무렵이면 밭에서 무와 배추를 뽑아 김장을 하기 시작합니다.
입동을 전후하여 5일 내외에 담근 김장이 맛이 좋다고 하는데 온난화 현상 때문인지 요즈음은 김장철이 조금 늦어지고 있습니다.
'입동 전 보리씨에 흙먼지만 날려주소'라는 속담은 입동 전에 마무리해야 할 보리 파종 시기를 강조한 것으로 농사의 중요성을 제때에 알리고자 생겨난 속담이라고 합니다.
입동을 즈음하여 점치는 풍속이 여러 지역에 전해오는 데, 이를 ‘입동보기’라고 합니다.
중부 지역에서는 속담으로 “입동 전 가위보리”라는 말이 전해옵니다.
입춘 때 보리를 뽑아 뿌리가 세 개이면 보리 풍년이 든다고 점치는데, 입동 때는 뿌리 대신 잎을 보고 점을 치는것이죠.
입동 전에 보리의 잎이 가위처럼 두 개가 나야 그해 보리 풍년이 든다는 속신이 믿어지고 있습니다.
또 동남의 여러 지역에서는 입동에 갈가마귀가 날아온다고 하는데, 특히 경남 밀양 지역에서는 갈가마귀의 흰 뱃바닥이 보이면 이듬해 목화 농사가 잘 될 것이라고 점을 치기도 합니다.
이러한 농사점과 더불어 입동에는 날씨점을 치기도 하는데 제주도 지역에서는 입동날 날씨가 따뜻하지 않으면 그해 겨울 바람이 심하게 분다고 하고, 서남 지역에서는 입동 때의 날씨를 보아 그해 겨울 추위를 가늠하기도 합니다.
입동을 즈음하여 예전에는 농가에서 고사를 많이 지냈습니다.
이 즈음에 날을 받아 햇곡식으로 시루떡을 하고, 제물을 약간 장만하여 곡물을 저장하는 곳간과 마루 그리고 소를 기르는 외양간에 고사를 지내고 농사철에 애를 쓴 소에게 고사 음식을 가져다주며 이웃들 간에 나누어 먹었다.
이와 관련해 표준국어사전의 표제어로 올라가지는 못했지만 치계미(雉鷄米)라고 하는 미풍양속도 있었습니다.
계절별로 마을에서 자발적인 양로 잔치를 벌였는데, 특히 입동, 동지, 섣달 그믐날에 일정 연령 이상의 노인들을 모시고 음식을 준비하여 대접하는 것을 치계미라 하였습니다.
꿩 치(雉), 닭 계(鷄), 쌀 미(米)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꿩과 닭과 쌀을 뜻합니다.
꿩 잡고 닭 잡고 따뜻한 밥을 지어 대접한다는 의미죠
치계미란 사또의 밥상에 올릴 반찬값으로 받는 뇌물을 뜻하였는데, 사또의 거마비란 명분의 쇄마미(刷馬米 쇄마미)며,사또의 밥상에 오르는반찬 명분의 치계미(雉鷄米(치계미).
마치 마을의 노인들을 사또처럼 대접하려는 데서 기인한 풍속인 듯합니다.
마을에서 아무리 살림이 없는 사람이라도 일년에 한 차례 이상은 치계미를 위해 출연을 했다고 하는데 그마저도 형편이 안 되는 사람들은 도랑탕 잔치로 대신했습니다.
입동 무렵 미꾸라지들이 겨울잠을 자기 위해 도랑에 숨는데 이때 도랑을 파면 누렇게 살이 찐 미꾸라지를 잡을 수 있습니다.
이 미꾸라지로 추어탕을 끓여 노인들을 대접하는 것을 도랑탕 잔치라고 했습니다.
복날에 삼계탕을 먹는 것처럼 입동에는 추어탕을 먹었던 것이죠.
치계미 (雉鷄米) - 명사. 민속. 마을에서 일정한 연령을 넘긴 노인들을 모시고 선물과 음식을 마련하여 잔치를 벌이는 풍속. 주로 입동, 동지, 섣달 그믐날에 행한다.
도랑탕 잔치 | 민속. 입동(立冬) 무렵 겨울잠을 자기 위하여 살이 통통하게 오른 상태가 되어 도랑에 숨는 미꾸라지들을 잡아 추어탕을 끓여 노인들에게 대접하는 잔치.
쉽게 구할수 있는 식재료였던 미꾸라지로 끓인 추탕은 서민들에게 단백질과 칼슘을 손쉽게 보충해주는 고마운 보양식이었습니다.
너무도 서민적인 음식이었기때문에 오래전부터 먹어왔음에도 고서에서는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1850년대(추정)에 五洲오주 李圭景이규경이 엮은 洲衍文長箋散稿오주연문장전산고(;19세기 60권 60책에 총 1417 항목의 백과사전 형식의 책)의 人事篇인사편 服食類복식류에 鰍豆腐湯추두부탕이 등장하는데 이 방법은 중국의 貂蟬湯圓초선탕원이란 음식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미꾸라지와 두부 몇 모를 같이 넣고 끓이면 미꾸라지는 뜨거워서 두부 속으로 기어드는데, 이것을 썰어 지진 뒤에 끓인 탕이라한다.
이 탕을 서울 성균관 근처에 살던, 소를 도살하거나 쇠고기를 파는 泮人반인들이 즐겼다.
그것에 비해 우리가 일반적으로 먹고 있는 조리방식은 방식은 남도방식의 내용입니다
미꾸라지를 갈아서 넣는 남도식 중에서 경상도식은 미꾸라지를 삶아 으깨어 솎음배추, 토란대, 고사리, 싸리버섯 등을 넣어 끓이고, 전라도식은 경상도식처럼 끓이면서 된장·시래기·들깨즙을 넣어 걸쭉하게 끓인 뒤 고추를 갈아 넣어 매운맛을 냅니다.
미꾸라지를 주재료로 한 것은 같지만 지방마다 다른 조리법을 사용했는데 크게 미꾸라지를 통째로 넣느냐, 삶아서 갈아서 넣느서울식 추어탕이 미꾸라지를 통째로 넣고 사골과 내장을 끓인 고기 국물에 끓여 내고, 이름도 鰍湯추탕이라 다르게 불러왔는데 朝鮮無雙新式料 理製法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 그 내용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밋구리를 물을 치고 소금을 조금 치면 대단히 요동을 할 것이니 2분 동안만 두었다가 맹물을 두어 번 부어 해감을 다 토하도록 한 연후에 맹물에 업진이나 사태를 녹도록 끓인 후에 고기는 꺼내고 식혀서 양밀가루를 걸쭉하게 풀고 두부를 갸름하고 납작하게 썰고 생강을 껍질을 벗겨 대강 다지고 고추씨를 빼고 다지고 파도 다지고 고비나 표고나 송이버섯을 굵게 찢어 넣고 곱창이나 양도 삶아 썰어 넣고 밀가루 푼데 모두 넣어 휘저어가며 눋지 않게 끓거든 밋구리를 급히 쏟아 넣고 뚜껑을 얼른 닫았다 가 다시 열라.
튀어나오며 죽는 것이 좋지 않느니라.
부드럽게 저어가며 밋구리가 다 익거든 계란을 몇 개든지 개여 풀고 떠내어 먹을 때 후춧가루와 계피가루를 치고 국수를 말아 먹으면 좋으니라
‘동국세시기 東國歲時記’에 따르면 10월부터 정월까지의 풍속으로 내의원에서는 임금에게 우유를 만들어 바치고, 기로소(耆老所; 조선 시대에, 70세가 넘는 정이품 이상의 문관들을 예우하기 위하여 설치한 기구)에서도 나이 많은 신하들에게 우유를 마시게 했다고 하는데, 이러한 겨울철 궁중의 양로(養老) 풍속이 민간에서도 행해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떠세요
오늘 동네 어르신이 아니어도 집안 어른들과 혹은 아이들과 추어탕 한그릇 하셔도 좋을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