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ia Dolorosa 고난의 길을 따라-십자가가 잊혀진 기독교
오늘(부활절 전 금요일)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힌 날을 기념하는 날이죠.
브리태니커에 따르면 이 날은 ‘슬픔, 참회, 금식’을 위한 날입니다.
성 금요일이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데 예수가 우리의 속죄자라는 기독교의 죄에 대한 속죄 사상은 유대인의 유월절 전통에서 엄격하게 파생된 것으로 성 금요일은 그 자체로도 중요하지만 더 큰 무언가의 일부이기도 합니다.
유월절은 이집트인의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 사람들의 집을 '죽음의 천사'가 지나간 날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성경에 따르면 출애굽 당시 가족들은 하나님이 맏아들의 생명을 살려주실 수 있도록 양의 피로 대문을 칠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예수를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부르는 이유로 ‘어린 양의 피’의 상징성이 두 이야기를 하나로 묶어주며,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이 맏아들을 희생을 생각하며 출애굽과 십자가 사건의 이야기를 더욱 하나로 묶어줄 뿐만 아니라 장자의 희생과 피 흘림이 종교에서 얼마나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하는것입니다.
맏아들의 희생은 ‘하나님의 진노를 포함한 모든 종류의 힘을 막을 수 있는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는 고대의 원시적인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죠.
제자에게 팔려 죽음을 당했다가 팩트지만 그 숨겨진 내용은 수세기 동안 기독교 메시지의 핵심이었으며,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우리가 죄를 용서받았다고 믿음입니다.
현대교회는 「사도 바울은 헬라인이 찾는 지혜는 십자가의 도에 비해서 어리석은 것이며 [고전 1:22-25], 당대의 학문을 대변한 철학은 세상의 초등학문으로 속임수나 다름없는 것으로 취급하였다 [골 2:8]」 라는 성경구절을 내세우며 기독교를 스스로 무식한 종교의 늪으로 빠뜨리면서 상식과 도덕을 함께 수장시켰습니다.
알려고 하지 않죠.
당연히 성경의 해석도 편협할수밖에 없고 결국 기독교는 옹졸한 종교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사랑과 희생을 강조한 예수의 속죄의 죽음의 의미는 희미해 집니다.
오늘은 예수의 죽음의 시간인 성 금요일을 이야기하며 나를 포함한 크리스쳔들의 속죄를 바래봅니다.
태초에 교회는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남녀의 친교였다.
교회는 그리스로 이동해 철학이 되었고,
로마로 옮겨가서는 제도가 되었다.
그 다음에 유럽으로 가서 문화가 되었다.
마침내 미국으로 왔을 때… 교회는 기업이 되었다.
In the beginning the church was a fellowship of men and women centering on the living Christ.
Then the church moved to Greece where it became a philosophy.
Then it moved to Rome where it became an institution.
Next, it moved to Europe, where it became a culture.
And, finally, it moved to America where it became an enterprise.
- the Chaplain of the United States Senate, Richard C. Halverson 전 미국 상원의 상임목사 리차드 핼버슨
금요일 새벽 3시 가룟 유다의 밀고로 체포되어 오전 6시에 십자가형을 받고 심한 구타를 당한 후 8시부터 9시까지 한시간정도의 고난의 길을 십자가를 짊어지고 행 집행장소인 골고다 언덕에 다달아 십자가에 못 박힙니다.
겨우 600m를 한시간동안 이동할 정도로 고통의 시간이었습니다.
It is a crime to put a Roman citizen in chains, it is an enormity to flog one, sheer murder to slay one: what, then, shall I say of crucifixion?
It is impossible to find the word for such an abomination.
로마 시민을 쇠사슬에 묶는 것은 범죄이고, 채찍질하는 것은 엄청난 일이며, 죽이는 것은 완전한 살인이니, 그렇다면 십자가 처형은 무엇이라고 말해야 하겠습니까?
그런 혐오스러운 일에 대한 단어를 찾을 수 없습니다.
- Marcus Tullius Cicero 키케로
세상에서 가장 잔인하고 고통스러우며 치욕스러운 형벌.
형벌이 집행되는 처형장에는 고통스러운 비명과 신음만이 난무했던 십자가형은 고대 로마시대 비로마인, 즉 이민족에게만 행해진 극형으로 로마인조차 십자가형을 최악의 형벌로 규정할 만큼 혐오했습니다.
사형수는 처형장까지 직접 십자가를 지고 갔으며, 벌거벗은 상태로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린 후에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보통 하루 이상) 온갖 끔찍한 고통을 겪어야 했는데 그 처참한 과정은 십자가 처형장에서 군중에게 공개되었습니다.
'해골의 곳'이라는 뜻의 골고다 언덕에는 현재 예루살렘에서 가장 거룩한 성지로 꼽히는 '성묘교회'(Church of the Holy Sepulchre)가 세워져 있습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4세기경 아프로디테 신전을 해체하고 그의 어머니 헬레나에 의해 교회를 건설한 것이 오랜 역사의 시작으로 이후 성묘교회는 여러 차례 파괴와 재건을 반복하다 오늘날에 이르렀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까지 갔던 협착한 길을 라틴어로 '고난의 길', '슬픔의 길'을 뜻하는 Via Dolorosa는 '십자가의 길'이라는 상징적, 실질적 의미를 가진 장소로 예수 그리스도가 본디오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은 곳으로부터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갈라비아언덕)을 향해 걸었던 약 600m의 길과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 처형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을 이야기 합니다.
이 길은 복음서에 근거한 역사적인 길이라기보다는 순례자들의 신앙적인 길로써 14세기 프란치스코 수도사들에 의해 비로소 확정된 길로 각각의 의미를 지닌 14개의 지점이 있으며, 이는 18세기에 확정된 것입니다.
이 중 일부는 19세기 이후 고고학 발굴을 통하여 확인되었다고 합니다.
비아 돌로로사가 시작되는 제1지점은 예수가 재판을 받은 본디오 빌라도 재판정으로, 이 곳에서 심문을 받았고, 예수의 십자가형이 확정되었습니다.
이곳은 헤롯왕(헤로데스)이 그의 친구 마가 안토니를 위해 지은 안토니아 성채 내에 있습니다.
예수 당시의 로마 총독부는 Caesarea(카에사리아)에 있었으며, 당시 총독 빌라도는 유월절 기간 동안에 자주 일어났던 반 로마 시위를 진압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와 있었던 것으로 여겨지는데 이곳에 선고교회 (Church of Condemnation)가 서 있습니다.
빌라도 법정 자리에는 현재 아랍인 초등학교가 자리하고 있어 일반인의 출입을 금하고 있습니다.
제2지점은 로마 군사들이 예수에게 가시관을 씌우고 홍포를 입혀 희롱한 곳으로 1지점 맞은편에 있습니다.
당시 채찍에는 날카로운 뼛조각과 쇠구슬 등이 달려 있어 한 대라도 맞으면 뼈가 부서지고 살점이 뜯겨나가는 고통을 겪습니다.
이곳으로부터 도시의 거리를 지나 골고다로 향했으며, 수많은 군중들이 예수를 조롱하였다.
군병들은 예수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혔고 머리에 가시관을 씌운 후 침을 뱉었습니다.
1856년에 세워진 아르메니안 기념교회에 속해있는 작은 교회당에 표시되어 있습니다.
제3, 4지점은 불과 15m 남짓…
제3지점은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가다 처음 쓰러진 곳으로 856년에 세워진 아르메니안 기념교회에 속해있는 작은 교회당에 표시되어 있습니다.
제4지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어머니 마리아를 만났다고 하는데 신약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지고 가다 넘어지거나, 또 마리아를 만났다는 언급이 없지만 이곳에 세워졌던 초기 교회 때부터 구전으로 전승돼 왔다고 합니다.
제5지점은 키레네 사람 Simon of Cyrene 시몬이 예수의 십자가를 골고다 언덕까지 대신 진 곳입니다.
구레네 사람과 루포라는 이름은 이후 사도행전과 로마서에서 다시 한번 찾아볼 수 있는데 초대 교인들은 스데반 집사의 순교 후 소아시아 지방으로 흩어져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고 신약성경 사도행전에서는 안디옥에서 헬라인에게 복음을 증거한 초대 교인들에 대해 기록했는데 그중 몇 사람이 구레네 사람이었습니다.
또 로마서에 따르면 사도 바울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 즉 구레네 사람 시몬의 아내를 '내 어머니'라고 언급했으며 아버지가 예수 그리스도 대신 십자가를 지고 갔다면, 아들은 초대교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십자가의 길을 간 것입니다.
한쪽 벽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손으로 짚어 패인 자국도 남아있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아마도 이 지점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벽에 손을 짚었고,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갔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곳에 1895년에 세워진 프란시스칸 교회가 있습니다.
가파른 길을 걷다 보면 제6지점이 나옵니다.
제6지점은 전승에 성 베로니카(St. Veronica) 여인이 물수건으로 예수의 얼굴을 닦아 주었다는 곳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땀을 닦아준 베일 위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 형상이 나타났다고 하는데 이 베일은 기독교 유물로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에 보관돼 있다가 약탈당한 후 사라졌습니다.
올드시티는 기독교 구역, 아르메니아 구역, 유대인 구역, 이슬람 구역 네 구역으로 나뉘는데 제7지점부터 마지막 제14지점 골고다 언덕인 오늘날 예수 무덤교회(성묘교회)까지 기독교 구역으로 오르막 끝 막다른 길에 도달하면 제7지점입니다.
제7지점은 기둥에 표시 되어 있으며, 예수가 두 번째로 쓰러진 곳으로, 당시에는 성 밖으로 이어지는 문이 있었다고다고 하고 1875년에 이 곳에 두 개의 예배당이 세워졌습니다.
또다시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면 제7지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제8지점이 나타나는데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을 따르는 여인들에게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라고 말씀하신 곳으로 이곳에는 십자가 돌판에 승리라는 뜻의 그리스어 'νίκη NIKA'가 새겨져 있습니다.
올드시티에서 가장 붐비는 시장통을 지나면 제9지점이 나오는데 예수가 세 번째로 쓰러진 곳으로, 이집트 콥트교회가 서 있습니다.
9지점 바로 뒤로 푸른 돔이 보이는데 골고다로 알려진 성묘교회로 비아 돌로로사, 제10지점부터 제14지점까지의 십자가의 길 종착지입니다.
로마 군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벗긴 곳이 제10지점으로 여러 종교가 뒤섞인 듯 혼탁한 분위기입니다.
좁고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면 잠시 후 예수 그리스도가 못 박히는 성화가 이는데 십자가의 길 제11지점, 예수 그리스도가 못 박히신 곳입니다.
옆으로는 2,000여 년 전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혔던 당시 골고다 바위가 보존되어 있는데 십자가의 길 제12지점입니다.
아래층으로 내려가면 예수 그리스도의 시신을 수습하고 염을 진행한 석판이 보이는데 이 곳이 제 13지점입니다.
아리마대의 부자 요셉은 예수 그리스도 시신을 받아 석판에 누이고 유대인의 장례 법대로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습니다.
요셉은 바위 속에 판 새 무덤에 예수 그리스도 시신을 안치했는데 이 곳이 십자가의 길 끝, 제14지점은 예수 그리스도의 무덤입니다.
점점 늘어가는 교회를 떠나는 크리스쳔들에게 남은 이들은 관심이 없습니다.
그저 나만의 축제로 만족합니다.
2000년 전 오늘 이 시각, 사랑과 희생으로 걸었던 십자가의 고통의 길의 의미를 현대 교회가 아닌 예수시점에서 바라보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주여, 이제 난 당신을 포기합니다.
그러나 당신은 날 버리지 마소서.
- Le Royaume 왕국, 엠마누엘 까레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