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s Bourgeois de Calais 깔레의 시민을 바라보며
Noblesse oblige라는 말이 현실로 자리잡은 문화가 Donation 이다.
대한민국의 현실은 가끔씩 드러나게 생생이나 내는 겉치레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전부를 이야기 할 수 없지만
부자들은 다 자기들이 잘나서 잘 사는 줄 안다.
남들보다 열심히 일하고,
남들보다 머리도 좋고,
남들보다 수완도 좋고,
무조건 남들보다 낫다는 選民意識선민의식이 있다.
이게 부자들의 일반적인 생각이다.
그래 부자이면서 교만하지 않기는 쉽다.
우리나라 부자들의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개발도상국 수준은 될까?
貧而無怨 難 빈이무원 난
富而無驕 易 부이무교 이
- 論語 憲問 논어 헌문편
가난하면서 원망하지 않기는 어렵고,
부자이면서 교만(驕慢)하지 않기는 쉽다.
남대문 근처 구 삼성본관에는 유리로된 80평짜리 전시관이 있다.
Rodin glass pavillion.
이곳에 전시된 오리지널 두 상설 작품중의 하나인 Les Bourgeois de Calais 깔레의 시민.
(기억하기로는 아마 12번째 에디션인걸로)
시민들의 생환을 위해 죽음을 스스로 선택한 외스타슈 드 행 피에르의 행동을 잠시 생각해 본다.
프랑스 노르망디 해안을 따라 올라가면 깔레라는 작은 항구 도시가 있다.
인구 12만인 이 항구는 영국의 도버해협과 불과 20마일(대한해협은 32마일)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영국과 프랑스의 100년전쟁 때 가장 피해를 많이 입은 도시이기도 하다.
소도시인 깔레.
그것은 깔레 시청에 전시되어 있는
'깔레의 시민’-로뎅 작- 이란 조각으로 6명이 목에 밧줄을 감고
고통스런 표정으로 걸어가고 있는 조각상이다.
프랑스와 영국의 백년전쟁 때 깔레시는 끝까지 저항하다 구원군이 오지 않아 1,347년 끝내 항복을 하게 된다.
전쟁에서 승리한 영국왕 에드워드 3세는 모든 시민의 생명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누군가가 그 동안의 반항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며 깔레의 시민 여섯명을 처형 하겠다고 했다.
칼레 시민들은 누가 처형을 당해야 할지 논의를 시작했고 이때 깔레에서 제일 부자인 ‘외스타슈드 생 피에르’가 선뜻 나서자 시장인 ‘장데르’가 나섰고, 이어 부자 상인인‘피에르 드 위쌍’이 나서자'드 위쌍'의 아들이 아버지의 위대한 정신을 따르겠다며 아버지를 따르자 이에 감격한 시민 3명이 또 나타나 모두 일곱 명이 되었다.
그래서 일곱명의 깔레 시민이 목에 밧줄을 매고 영국군 진영으로 걸어가 처형당할 것을 요구하자 영국왕은 다시 1명을 제외하라고 했다.
그러나 아무도 양보를 하지 않아 '외스타슈드’가 제안하기를 내일 아침 처형장에 제일 늦게 나오는 사람을 빼자고 제의를 했다.
다음 날 아침 여섯 명이 처형장에 도착했을 때 '외스타슈드’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게 생각한 시민들이 그의 집으로 달려갔을 때 '외스타슈드’는 이미 싸늘한 시체로 변해 있었다.
처형을 자원한 일곱 명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살아 남으면 순교자들의 사기가 떨어질 것을 우려하여
자신이 먼저 죽음을 택한 것이다.
이에 영국 왕비가 크게 감동하여 ‘에드워드 3세’에게 깔레 시민에게 자비를 베풀 것을 애원하였다.
마침 왕비는 임신중이었기 때문에 왕은 왕비의 소원을 받아들여 처형을 취소하게 되었다.
그 후 깔레는 노블레스(귀족) 오블리주(의무)라는 단어의 상징으로 등장했으며, 몇 백년이 지난 후 깔레시민의 요청으로 로댕이 10년의 작업 끝에‘깔레의 시민’을 완성하게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