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의 남길 마지막 이미지
The wind is rising…. We must try to live
- Le Cimetière marin, Paul Valery
바람이 인다, 살아야겠다.
상징주의 프랑스 시인 Paul-Valéry 폴 발레리는 이미 20대에 당대 최고라 불리던 Stephane Mallarme 스테판 말라르메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최고의 자리에 오르고 스물한 살에 이탈리아 제노바를 여행하던 중 정서적, 감정적 위기를 겪으면서, 문학에의 허망한 유혹을 느끼고 '나는 누구인가,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실존적 물음에 빠져 돌연 문단을 떠납니다.
끔찍한 밤이다……
사방에서 폭풍이 몰아치고, 번개가 수시로 번쩍이며 방을 밝힌다……
나의 운명이 머릿속에서 흔들린다. 나는 나 사이에 끼어 있다.
- 폴 발레리
책도 멀리하고 자신의 글도 태워버린 그는 정신의 작업방법과 메커니즘에 대한 개인적 성찰에 전념할 것을 결심하고 흡사 동양의 수행승처럼 깨달음을 위해 정진합니다.
그러던 그가 20년 만에 다시 돌아와 낸 시집이 'Le Jeune Parque 젊은 파르크'와 'Charmes 매혹’이죠.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애송되던 「해변의 묘지」는 완결된 한 편의 시라기보다는 미완의 독백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발레리는 애당초 발표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현재 갈리마르 출판사(éditions Gallimard)의 전신인, 신프랑스평론(NRF; La Nouvelle Revue Française 라 누벨 르뷔 프랑세즈)의 편집장인 Jacques Rivière 자크 리비에르가 발레리 집에 갔다가 이 문장이 적힌 노트를 발견하고 발레리로부터 노트를 강탈하다시피 가져다가 출판해 햇빛을 보게되었습니다.
이렇게 세상에 나온 '해변의 묘지'는 지식인들에게 엄청난 사랑을 받게됩니다.
20년의 침묵을 깨면서 외친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는 絕唱 절창은 전 세계 많은 이의 '인생 선언문'으로 빙의됩니다.
I was waiting, my entire work was waiting.
One day I read Valéry – I knew that my waiting was at an end.
나는 기다리고 있었고, 내 작품 전체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날 발레리를 읽고 기다림이 끝났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 Rainer Maria Rilke 릴케
고향 Sète 세트에서 영감을 받아 죽음에 대해 적은 이시의 1연의 마지막 두 행, “신들의 정적에 오랜 시선을 보냄은/ 오 사유 다음에 찾아드는 보답이다!”를 세트의 공동묘지에 묻힌 발레리는 자신의 묘비에 새겼습니다.
세트에서 지중해 해안을 따라 이탈리아 접경지에 다다를 즈음이면 또 다른 해안 묘지를 만나게 됩니다.
발레리의 시구를 떠올리며 프랑스 남부 로크브륀 캡 마르탱 Roquebrune Cap Martin 에서 르 코르뷔지에는 숨을 거두며 스스로 그린 묘비를 세웠습니다.
발레리의 유명한 시 “르 시메티에르 마린”에서 영향을 받은 “바닷가의 묘지”라는 제목의 작품을.
1965년 여름, 르 코르뷔지에는 창 너머로 지중해가 펼쳐지는 통나무집에서 나와 바다로 향합니다.
그는 8년 전 암으로 유명을 달리한 아내와 이곳을 ‘작은 궁전’이라 부르며 자신이 설계한 수도원의 수도사 방과 동일한 크기인 4평짜리 집을 여생의 거처로 삼아왔습니다.
코르뷔지에는 이 면적을 “인생의 본질을 만날 수 있는 크기”라고 말했죠.
78세의 코르뷔지에에게 의사는 해수욕을 금했지만, 그는 사랑하는 지중해에서 수영을 즐기다 생을 마감하고 Côte d'Azur 코트다쥐르의 아름다운 몽돌해변을 내려다볼 수 있는 곳, 직접 디자인한 소박한 묘지에 아내와 나란히 묻힙니다.
How nice it would be to die swimming toward the sun.
태양을 향해 헤엄치다 죽는 것은 멋진 일
- 르코르뷔지에
Unité (Unity), Mobilité (Mobility), Harmonie (Harmony)
꼬뷰의 비문; 평생에 걸쳐 옹호한 핵심 원칙
발레리와 꼬뷰(르 코르뷔지에)는 서신과 상호 영향력에서 두드러지는데, 미학과 형태에 관한 발레리의 철학적 저술은 꼬뷰의 건축 이론에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꼬뷰가 이러한 아이디어를 건축에 실제로 적용한 것은 발레리의 추상적인 생각에 현실적인 대위법을 제공했습니다.
꼬뷰는 발레리의 유명한 시 “Le Cimetière marin 르 시메티에르 마린”에서 영향을 받은 “A Cemetery by the Sea 바닷가의 묘지”라는 제목의 자신의 묘를 디자인 했습니다.
그의 무덤은 그가 살아생전 애용했던 건축재료인 시멘트로 빗어냈으며, 불필요한 장식물까지 모두 덜어냈습니다.
그 덕분에 무덤은 지극히 단순한 형태를 이루며 보는 이로 하여금 아름다움 마저 느끼게 하는 심미적 요소가 됩니다.
뿐만 아니라 수학을 다루는 건축가답게 지중해 햇빛의 입사각에 맞추어 묘판의 기울기까지 디자인해두었는데, 이러한 디테일은 그가 지중해의 햇살을 얼마나 동경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세상 어느 누구도 자신의 무덤을 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꼬뷰는 죽음에서 삶의 완성이라도 본것처럼 삶의 종착역인 죽음까지 디자인해두었습니다.
Le vent se lève !… Il faut tenter de vivre !
L’air immense ouvre et referme mon livre,
La vague en poudre ose jaillir des rocs !
Envolez-vous, pages tout éblouies !
Rompez, vagues ! Rompez d’eaux réjouies
Ce toit tranquille où picoraient des focs !
바람이 인다!...... 살아야겠다!
세찬 마파람은 내 책을 펼치고 또한 닫으며,
물결은 분말로 부셔져 바위로부터 굳세게 뛰쳐나온다.
날아가거라, 온통 눈부신 책장들이여!
부숴라, 파도여! 뛰노는 물살로 부숴 버려라
돛배가 먹이를 쪼고 있던 이 조용한 지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