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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문 | 기억_베르나르 베르베르

; 인간의 전생, 기억, 그리고 집단 무의식

by Architect Y

순전히 게으름 때문에 과거를 잊어버리는 사람들이나,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과거의 실체적 진실을 부정하고 왜곡하는 사람들이나, 결국 똑같이 과거를 반복하게 될 수밖에 없어요.

그런 사람들은 미래로 나아가지 못해요.

- 기억1 p.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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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르네 톨레다노는 파리의 중학교 역사 교사로, 평범한 삶을 살던 중 우연히 센강 유람선 공연장 「판도라의 상자」 에 갔다가 퇴행 최면의 대상자로 선택되어 최면 요법 강의에 참여하게 됩니다.
이 강의에서 그는 최면 상태에서 전생을 경험하는 실험을 하게 되고, 그 속에서 자신이 고대 그리스의 전사, 프랑스 혁명의 인물, 1·2차 세계대전의 병사 등 수많은 전생의 삶을 살았던 사람임을 깨닫습니다.

이후 르네는 자신의 전생들을 더 깊이 탐색하면서 인간 내면에 숨어 있는 폭력성과 권력욕, 반복되는 전쟁의 악순환, 그리고 현생의 정체성과 책임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전생을 회상하면서 그는 질문에 직면합니다.


인류는 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가?
기억이 있다면, 우리는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을까?


하지만 그가 속한 현대 사회는 이런 전생 기억 회복 운동을 위험한 것으로 간주하며, 전생 탐색을 억압하려는 세력이 등장합니다.
르네는 전생 기억을 되살리고 공유하려는 사람들과 함께 싸우며, 진정한 자유와 기억의 의미를 찾기 위한 여정을 이어갑니다.


최근 일을 기억해 내기는 여전히 어려운데 전혀 다른 시대, 장소, 상황에서 살았던 오래전 과거의 삶들을, 내 잠재 인격들을 만날 수 있다니 놀랍고도 감격스러운 일이야.

이제 나는 그냥 〈에밀 톨레다노의 아들 르네 톨레다노, 조니 알리데 고등학교에 재직 중인 32세의 독신 역사 교사〉가 아니라 그 이상이야.

111개의 전생이 모두 나야.

- 기억2, 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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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 번쯤은 전생 아니면 내생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소설 「기억」에서 베르베르는 주인공 르네의 입을 통해 지금의 생이 전부가 아니라고 단언합니다.

르네는 이 참전병을 비롯해 총 111번의 전생이 자신에게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여러 기억의 문을 열어봅니다.

그중에서 최초의 전생이었던 전설 속의 섬 아틸란티스에 사는 남자 게브를 만나고, 아틸란티스 섬이 바다 속에 잠겨 버렸다고 알고 있는 르네는 게브를 구하려고 합니다.

새로운 전생의 기억의 문을 열 때마다 다양한 시대, 다양한 나라에서의 삶이 펼쳐지는데 기억의 저편에는 보물과 함정이 공존하하며 르네는 전생을 통해 위기에서 벗어나기도 하지만 위기에 빠지기도 합니다.


2권의 책은 Hypnos 히프노스, Atlantis 아틀란티스, Egypte 이집트 3막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구조는 단순한 서사 전개라기보다 의식의 확장, 기억의 깊이, 그리고 사회·문명에 대한 비판적 통찰을 단계적으로 보여주는 장치입니다.

특히 히프노스 → 아틀란티스 → 이집트로 이어지는 세 공간(또는 시공간)은 르네의 기억 탐험 여정이 개인 차원에서 문명·집단 차원으로 확장되는 정신적 여행이기도 합니다.

첫번째 막의 히프노스는 그리스 신화의 잠의 신이며, 의식과 무의식 사이를 상징하는데 최면 요법(Hypnose)을 시도하는 강연장에서 시작을 알리며 전생 회상의 시작, 기억의 억압과 해방, 자아의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을 보여줍니다.


실제 벌어진 역사와 기술된 역사, 피지배자의 역사와 지배자의 역사는 차이가 있습니다. 정치에서 기억은 사활이 걸린 문제예요.

그래서 수많은 정치인이 기억을 거머쥐고, 자신들한테 유리하게 주물러 빚으려고 하는 거죠.

- 기억1, p.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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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문명의 원형을 상징하는 2막의 아틀란티스에서는 인간의 탐욕과 통제불능의 기술력, 그로 인한 재앙으로 이상향을 꿈꾸던 사회가 통제, 억압, 불평등으로 변질되는 과정을 보여주며 문명의 교만과 붕괴와 기술 발전과 윤리의 불균형을 보여주고 있는데 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기술적 이상주의와 인간성 상실의 위험을 경고하고 있는듯 합니다.

기억을 신성시하는 계급(사제, 귀족)과 그 아래 억압받는 대중이라는 사회갈등요소가 보이는 마지막 이집트는 ‘기억은 모든 이에게 열려야 한다’는 생각에 도달하지만, 이 사회는 이를 계급화하여 권력자의 기억을 영원히 보존하려는 불멸욕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소설은 인간의 정체성에서 기억이 어느 만큼을 차지하는지, 인간이 어떻게 기억을 만들고 지켜나가는지를 이야기합니다.

소설의 주인공 르네 톨레다노는 역사 교사로 학생들에게 역사의 정설定說이 아닌 이설異說을 소개하며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들이 잘못됐을 수도 있음을 가르칩니다.

톨레다노가 역사의 불완전성을 설명한 뒤에, 베르베르는 소설 속에 실존 인물 엘리자베스 로프터스의 ‘가짜 기억 이식 실험’을 풀어놓으며 불완전한 역사를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 굉장히 위험할 수 있음을 말합니다.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인간 기억 전문가인 로프터스는 피험자들에게 “당신 가족한테서 당신이 어릴 때 있었던 재미난 에피소드를 들었다”라는 말로 대화를 시작해 세 가지 이야기를 들려줬는데 두 가지는 사실이고 한 가지는 지어낸 이야기였습니다.

예를 들어 그는 “당신이 아주 어릴 때 부모님이 당신을 쇼핑몰에서 잃어버려 안내 방송으로 찾은 적이 있다” “당신은 개를 쓰다듬어 주다가 개에 물린 적이 있다” 같은 거짓 에피소드를 들려주고 몇 달 뒤 로프터스가 피험자에게 이런 이야기들을 기억하느냐고 물으면 34%가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고 장담하며 상황을 구체적으로 묘사까지 했습니다.

비슷한 실험으로, 로프터스는 피험자에게 어렸을 때 방울양배추와 아스파라거스를 아주 좋아했다고 말해줬고, 이후 피험자의 입맛에 변화가 생긴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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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의 전생 여정은 단순한 전생 회상이 아니라, 우리는 누구이며, 왜 같은 잘못을 반복하며, 기억을 되찾는 것이 왜 중요한가? 라는 거대한 질문을 독자에게 던지는 의식 진화 소설입니다.

이 소설은 역사적 지식, 심리학, 철학, 서사적 상상력이 통합된 베르베르 스타일의 작품으로 ‘전생’이라는 주제를 개인적 탐구에서 인류 전체의 미래를 결정하는 메커니즘으로 확장시킨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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