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문 | 고도를 기다리며

; 기다림의 시대에서 바라보는 Godot

by Architect Y

고도는 기다려도 안 오지만 경도는 온다

- JTBC 경도를 기다리며 중


최근 방송중인 드라마 「경도를 기다리며」 에서의 ‘기다림’은 「고도를 기다리며」 를 단순히 인용하거나 패러디하는 관계가 아니라, 베케트가 제시한 ‘기다림의 구조’를 현대 한국의 서사적 인간 관계로 재번역한 경우에 가깝워 보입니다.

멜로라는 장르로 접근한 드라마는 한발짝 다가서서 들여보면 고질적인 현대사회, MZ의 서사인 떠남은 배신, 남음은 성숙이라는 관습이 비춰지는것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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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남은 배신, 남음은 성숙


한국 서사에서 반복적으로 ‘미덕’으로 승격된 떠나지 않음은 바로 성숙과 미성숙, 이기적임과 헌신적인 이타, 그리고 인간성이라는 인격의 증거로 남습니다.

참고 버틴 시간이 길수록, 고통이 클수록, 말하지 않을수록 인물은 더 고귀해지며 한국 서사에서는 인내가 목적 그 자체로 변질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 서사는 반복적으로 소비한 개인이 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는 이유가 됩니다.

현대의 기성세대는 그래도 참고 살아야지, 만두면 지는 거라며 새로운 세대에게 강요하고 이러한 떠나지 않음의 윤리는 감정 노동의 성별 분업을 고착시켜 기다리는 아내, 버티는 딸, 이해하는 연인으로 향하고 반대로 떠나는 남성은 어쩔 수 없었다거나 성장하기 위해서라는 서사를 부여받습니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의 인물들은 떠나지 않지만, 그 사실을 미덕으로 포장하지도 않습니다.

반면 반면 한국 현실은 떠나지 않음을 숭고하게 만들고 기다림을 보상 가능한 선택으로 포장합니다.

이런 모습은 조직에게는 부패를, 개인에게는 번아웃을 만들어 냅니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우리는 기다리고 있고 이것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지 알고 있으면서라고 말하며 사유를 낳고 그래도 기다리는 사람이 아름답다는 한국 현대 사회는 체념을 미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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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로 다시 돌아보게되는 Samuel Beckett, Waiting for Godot


두 부랑인 Gogo 에스트라공과 Didi 블라디미르는 황량한 시골길의 마른 나무 한 그루 아래서 Godot고도라는 신비한 존재를 기다립니다.

그들은 고도가 누구인지, 어떻게 생겼는지, 고도에게 뭘 원하는지도 잘 알지 못하고 심지어 고도가 실존하는지도 확신하지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고도가 오면 자신들의 삶이 나아질 것이라고 막연히 믿습니다.

그들은 대화를 하고, 싸우고, 화해하며, 시간을 보내는데 상호적인 대화로 이어지지 못한 채 마치 서로 벽에 외치는 것과 같이 피상적이 되어갑니다.
Pozzo와 Lucky(짐꾼)가 지나가고, 기묘한 대화의 장면들이 이어지는데 역시 두서없고 무의미한 대화뿐입니다.
해질 무렵 심부름을 하는 양치기 소년이 나타나 오늘 고도는 오지 않지만, 내일은 올 것이라고 전한다.

다음날(2막) 다시 같은 장소에서 같은 기다림이 반복되며 앙상했던 나무엔 갑자기 잎새가 올라옵니다.
시간이 흘러 포조는 장님이 되어 있고 럭키는 벙어리가 되어 있으며, 기존 관계는 또 다른 방식으로 붕괴되어 있습니다.
다시 소년이 나타나자 디디는 양치기 소년을 알아보지만 소년은 자신은 어제 온적이 없다고 어리둥절해하고 “오늘은 안 오지만, 내일은 올 것”이라고 하자 디디는 어제 소년과 나누었던 대화를 읊조리듯 늘어놓다가, 고도 씨에게 가서 자신을 봤었다고 말하라고, 확실히 날 봤지않냐고 소년을 다그치지만 달아나 버립니다.

소년이 가고 잠에서 깬 고고는 고도가 왔었는지 묻고, 고도가 안 온다는 사실에 그는 차라리 멀리 떠나자고 하지만 디디는 내일 고도를 만나러 여기 와야 한다고 상기시켜줍니다.

둘은 나무를 쳐다보며 목이나 맬까 하며 바지의 고무줄로 실험을 해보나 잘 되지 않습니다.

고고는 흘러내린 바지를 수습하지도 않고 내일 튼튼한 끈이나 가져오자고 하고, 디디는 긍정하며 고도가 안 오면 목을 매고, 만약 온다면 살 수 있을 거라고 말합니다.

두 사람은 가자라고 말하지만 움직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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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인간은 뜻을 알 수 없는 세계에 던져져 있고, 그 세계는 일관된 의미나 구조가 없다는 Absurd Theatre 부조리극의 대표작이죠.
고도를 기다리는 행위는 막연한 희망에 기대어 살아가는 인간의 존재 자체를 상징합니다.

Godot 고도는 God(신)을 연상시키지만, 베케트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존재일 수도 있고, 혹은 절대 오지 않는 구원의 은유일 수도 있다고 의도적으로 흐릿하고 모호하게 던지며 결국 인간의 삶에서 구원은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냉혹한 진단을 내리고 있습니다.

언어가 의미 전달의 도구가 아니라, 침묵을 견디기 위한 ‘채우기’에 불과한 순간들이 많다는 소통의 붕괴를 보여주려 대화는 논리적 연결 없이 튀고 반복됩니다.

고고와 디디는 서로에게 짐이 되면서도 떨어지면 존재 이유를 잃고 포조와 럭키의 관계는 지배–복종의 극단적 형태이지만, 서로는 결국 의존한다는 인간관계의 의존성과 공허함도 녹여져 있습니다.


베케트가 이 작품을 쓰게 된 사회적, 철학적 배경에는 그가 2프랑스 레지스탕스 활동에 참여하고 전쟁의 참혹함을 경험하며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의미 없는 폭력과 생존만 남은 세계, 기존 가치관의 붕괴, 정체성 상실과 목적 상실이라는 시대적 분위기가 작품 전반의 허무함과 정지성을 보여주고 고도를 기다리는 모습은 동시대에 활동한 카뮈의시지프 신화와 유사한 부조리 구조를 가집니다.

더욱이 아일랜드 출신 작가로서의 정체성 불안해 하고 제임스 조이스의 영향을 받았지만, 조이스가 언어를 확장했다면 베케트는 오히려 언어의 무기력함을 드러내고자 하여 인간의 언어는 세계를 설명할 수 없다는 회의주의가 대사의 반복, 공백, 비문법적 구조 속에 녹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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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경도를 기다리며에는 인간은 왜 의미 없는 기다림을 멈추지 못하는가라는 존재론적 기다림의 원형이라는 베케트의 관계를 우리는 왜 이미 끝났을지도 모르는 관계를 계속 기다리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관계 속에서 개인이 견디는 기다림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고도는 애초에 실체가 없을 수도 있지만, 경도는 분명히 있었고, 분명히 의미 있었던 사람이기 때문에 경도는 고도보다 잔인합니다.

고도가 당시 시대상을 보여주듯 경도는 끊어내지 못하는 현대의 모습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고도의 ‘가자. 그래, 가자.’와 경도의 ‘떠날 이유는 충분하다, 남을 이유도 충분하다’, 기다림은 선택이 아니라, 선택 불가능성이 고착된 상태라는 점에서 작품은 만납니다.

이에비해 경도는 고도를 ‘사랑 이후의 세계’로 옮겨온 작품입니다.

의미가 오지 않는데도 왜 우리는 기다리는가?라는 베케트가 묻던 질문에 경도는 이미 왔다가 떠난 사람을, 왜 우리는 아직도 기다리는가?라고 던지며 이는 현대 한국 사회의 감정 구조에 가장 정확히 닿아 있는 베케트적 질문인것입니다.


끝내야하는 Endings psychology


목표는 명확하지만 도달 기준은 모호하고 노력은 요구되지만 보상은 지연되며 멈춤은 실패로 낙인찍히고 포기는 인격 결함으로 해석되는 구조에서 끝내기는 합리적 판단이 아니라
도덕적 낙오로 간주됩니다.

끝내기는 손실이 아니라, 심리 기능의 회복을 가능하게 합니다.

끝내는 순간, 상황은 바뀌지 않아도 주체성은 회복되고 끝내기는 미련, 자기 비난, 가능성 계산이라는 누수를 멈추는 심리적 차단 을 합니다.

베케트의 인물들은 끝내지 못했지만 작품은 그것을 비극도, 미덕도 아닌 부조리로 보여줍니다.

현대 번아웃 사회는 끝내지 못함을 미덕으로 만들고 끝내려는 사람을 비난하며 끝내기를 개인 실패로 환원합니다.

이 차이 때문에 현대인은 베케트보다 더 고립된 기다림에 놓입니다.


번아웃 사회에서 가장 어려운 말은 나는 여기까지라는것입니다.

베케트의 인물들은 의미 없는 기다림을 한다는 사실을 희미하게나마 인식하고 있지만 현대 한국 사회의 기다림은 종종 의미 있음으로 제도화되어 있습니다.

그 점에서 고도를 기다리며는 한국 사회의 기다림을 예언한 작품이 아니라, 이미 벌어진 상태를 드러내는 거울에 가깝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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