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문 | Christmas 부정과 수용

; 12월25일을 부정했던 개신교

by Architect Y

오늘은 Christmas 성탄절입니다.

이제 더이상 성탄절이 실제 예수 탄생일이 아니라 탄생을 기념하는 날로 결정해 지정된 날이라는 부분은 많이 알고 있습니다.

이제는 크리스쳔이 아니어도 이날에 선물을 주고받고 특별한 시간을 보내는것에 익숙해져있습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타종교인이나 비종교인도 즐기는 Christmas를 정작 과거의 개신교에서는 이를 부정했습니다.

교회에서는 절대 알려주지 않는 이야기지만 Christian으로 이 부분은 다음세대에게 정확히 알려주고 싶은 사실입니다.

이 이유를 알고자한다면 Christmas가 12월 25일로 정해졌던 상황과 과정, 영향에 대해 알아야 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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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초기 기독교에는 ‘성탄절’이 없었습니다.

1~2세기 기독교는 예수의 탄생보다 죽음(수난)과 부활을 중심으로 신앙을 구성했고 유대 전통에서 탄생일 기념은 이교적·왕권적 행위로 인식됨으로 탄생일을 기념하지 안았습니다

실제로 신약성서에는 예수의 정확한 탄생 날짜에 대한 언급이 전무한데 이는 성탄절은 사도적 전통에서 직접 나온 절기가 아니기때문입니다.

3세기 교부들(특히 알렉산드리아, 북아프리카 지역)은 예수가 춘분(3월 25일)에 수태되고 같은 날 십자가에서 사망했다고 추정하여 9개월을 더하면 12월 25일 출생한다는 이 계산은 역사적 증거라기보다, 완전한 인간은 완전한 주기로 세상에 머문다는 상징적, 신학적 완결성 논리입니다.

로마 세계에서 12월 25일은 Sol Invictus (무적의 태양신) 축일로 이미 매우 중요한 날이었습니다.

아우렐리아누스 황제(AD 274)가 국교적 축제로 격상시켜 태양이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는 날로 정의 했습니다.

농경신의 축제기간인 사투르날리아(Saturnalia) 기간과 인접해 사회적 질서가 일시적으로 해체되고 노예–주인 역할도 바뀌며, 선물 교환, 향락이라는 12월 말은 이미 대중적·감각적·종교적 에너지가 집중된 시기였습니다.

12월 25일로 결정하기 위한 이러한 전환점은 이제 다양한 이유가 이날로 결정하기에 정확히 부합하는 이유들로 확정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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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이유로 기독교 제국화 전략이라는 정치적 이유를 들 수 있습니다.

첫째, 콘스탄티누스 이후의 상황은 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 공인하고 4세기 중반에는 기독교가 제국 통합 이데올로기로 부상합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기존 이교 축제를 파괴하지 않고 흡수하고 민중의 종교 감각을 연속성 있게 재배치하는것이었습니다.

둘째로 태양은 그리스도의 치환되는 정의는 예수는 요한복음, 말라기서에서 이미 세상의 빛, 의의 태양으로 묘사되며 태양신 숭배의 언어를 기독론으로 전환 가능하게 되며 「Sol Invictus 적의 태양=Christus Invictus 무적의 그리스도」라는 명제는 정면 충돌이 아닌 의미의 전복 전략이었습니다.

종교적 이유로는 이단 논쟁과 정통 기독론 확립을 들수 있는데 4세기 최대 신학 논쟁은 ‘예수는 창조된 존재, 피조물’라는 아리우스주의였는데 이를 정통 교회에서는 예수는 참 하나님이자 참 인간이라는 주장의 ‘탄생’의 의미를 강조할 필요했고 예수의 탄생을 공식 절기로 설정함으로써 성육신(Incarnation)을 강조하고 예수의 인간성과 신성을 동시에 고정하며 성탄절은 신학적 선언의 장치로 고착되어갑니다.

마지막으로 당시 사회적인면을 본다면, 농경 사회에서 동지 전후는 생존 불안이 극대화되는 시기로 빛의 회복, 잔치, 선물은 심리적 안정 장치가 필요했습니다.

기독교는 이 시기의 축제 욕구를 금지하지 않고 재배열하고 금욕적 종교 이미지를 완화하며 공동체 중심의 절기로 전환하여 성탄절은 민중 통합 장치이자 정서적 안정 장치로 정리합니다.


336년경 로마 교회 문헌에 최초 기록이휴 점차 서방 교회 표준으로 로마교회에서 서방교회로 확산하게 됩니다.

동방 교회는 원래 1월 6일(Epiphany 주현절;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들에게 자신을 드러낸 사건을 기념하는 기독교의 축일) 중심이었으나 4~5세기 이후 점진적으로 12월 25일 수용하며 결국 12월 25일 탄생, 1월 6일 주현으로 전례력, 행정, 교육을 통해 사실상 변경 불가능한 절기로 굳어진것입니다.

정리하자면, 성탄절은 예수의 실제 생일이 아니라 기독교가 제국 종교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선택한 가장 전략적이고 안정적인 날짜입니다.

이는 신앙의 왜곡이라기보다, 종교가 역사 속에서 살아남는 방식, 의미를 버리지 않고 형식을 바꾸는 정치적·신학적 지혜라고 평가하는 것이 역사적으로 정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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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당시 루터·칼뱅으로 대표되는 종교개혁의 공통 출발점은 신앙과 예배의 유일한 기준은 성경(성경 중심 원리 Sola Scriptura)으로 성경에 명시되지 않은 절기·의례는 강제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날짜에 대한 근거 없고 사도적 명령 또한 부재인 성경을 의무적 절기로 인정 불가라는것이 기본적인 방침입니다.

앞에서 언급한것처럼 가톨릭 교회의 교회력 통제 상징이며 이교 축제(사투르날리아) 잔재로 방탕, 음주, 가면극, 성적 문란이라는 이유로 청교도들은 단순히 성경에 없음을 넘어, 성탄절을 신학적으로 유해한 잔재로 인식했습니다.

실제로 1647년 영국 의회는 성탄절 공식 폐지합니다.

교회 문 닫고 축제 단속하며 크리스마스 미사는 불법이라 선언하고 이 시기 성탄절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빌린 반(反)기독교적 향락일 로 규정합니다.


청교도 신학에서 절기는 외적 형식이 내적 신앙을 대체할 위험과 특정 날짜가 은혜를 보장한다는 마술적 사고 유발한다는점을 위험하다고 정의했습니다.

역설적으로 성탄절은 성육신을 기념하지만 청교도는 말씀 선포 중심 예배를 중시하며 날짜를 기념하는 신앙 자체를 불신했습니다.

1660년 찰스 2세 즉위(왕정복고)후 성공회가 복원되며 성탄절, 부활절 등 교회력 부활하지만 비국교도(장로교·청교도 계열)는 여전히 거부하며 성탄절은 국교와 대비되는 비국교의 상징이 됩니다.

1659~1681년, 매사추세츠에서 뉴잉글랜드 청교도 사회는 성탄절 기념 시 벌금 부과했습니다.

영국과 동일한 이유인 도덕 통제와 공동체 규율 유지에 반대하는 이유로 평일 근무일로 취급하고 상점은 정상 영업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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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단호했던 개신교의 성탄절부정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했습니다.

교리 순수성보다 사회 안정과 도덕성 강조하고 교회 절기의 강제력 약화되며 계몽주의와 종교 관용이라는 시대상을 받아들입니다.

이 시기 성탄절은 교리 논쟁의 장에서 가정·윤리·자선의 날이라는 방향으로 전환되며 예수 탄생의 신학보다 가족, 어린이, 나눔이라는 변화는 개신교가 수용 가능한 의미 전환이 자연스레 이루어 졌습니다.

결정적으로 영국 빅토리아 시대, 우리에게 스쿠루지영감으로 어릴때부터 듣고 봐왔던 1843년 찰스 디킨스 「크리스마스 캐럴」 이 출판되며 성탄절은 도덕 갱신, 사회 연대라는 청교도적 금욕성과 충돌하지 않는 서사 형성됩니다.

미국 개신교는 19세기 중반, 교회가 강제하지 않는 절기이며 자발적 기념이라는 개념으로 성탄절을 공휴일로 지정하고 교회 예배가 재개됩니다.

개신교가 성탄절을 거부한 것은 예수 탄생을 부정해서가 아니라, 교회가 날짜를 통제하는 방식의 신앙을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시 수용한 이유는 절기의 신학적 독점성 제거, 문화윤리적 의미로의 재구성, 개인 신앙과 충돌하지 않는 방식의 전환 즉, 성탄절의 부활은 신학의 후퇴가 아니라, 형식의 비신성화였습니다.

정치신학적 목적으로 카톨릭이 정한 12월25일을 개신교는 문화윤리적 의미를 더해 이를 확장시는데 상업화된 성탄절이라는 모습으로 세상에 자리잡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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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논의처럼, 개신교는 성탄절을 의무 절기가 아닌 자발적 기념일로 전환했는데 이는 역설적으로 시장 진입을 허용하는 구조를 만든것입니다.

즉, 교회가 절기의 의미를 독점하지 않게 되자 의미의 공백을 시장이 채우기 시작한것이죠.

산업혁명과 중산층의 탄생하며 대량생산·유통망 확장되고 선물이 특권이 아닌 표준화된 상품이 되고 연말 보너스, 임금 체계 정착하고 노동과 가정이 분리되며 성탄절은 가족 재결합의 상징적 날짜로 굳어지고 선물, 장식등의 특별 소비가 증가합니다.

Charles John Huffam Dickens 찰스 디킨스의 「Christmas Carol 크리스마스 캐럴 1843」 이후 문학과 도덕의 결합이라는 명제는 성탄절을 구원 교리가 아닌 도덕적 회심과 사회적 연대의 날로 재정의하는 서사는 소비를 이기적 욕망이 아니라 사랑과 나눔의 표현으로 정당화하게 됩니다.

독일 루터파 가정에서 시작하여 대중화된 Christmas tree, 장식, 촛불, 카드라는 시각적 상징의 표준화는 반복 소비 가능한 시즌 상품군 형성하게됩니다.

여기에 Saint Nicholas 성 니콜라오스 전승(산타클로스)은 19세기 미국에서 가족 친화적 캐릭터로 변형되며 선물 전달자 역할 강화하며 종교적 성인이 소비 아이콘으로 재 창조 됩니다.

빨간 옷과 후덕한 이미지가 고정된 1930년대 코카콜라 광고(기업 마케팅)로 산타는 초교파, 초종교적 소비 촉매로 기능합니다.

20세기 대중 자본주의는 시즌 경제의 형성이 만들어지며 연말 매출 의존 구조와 소매, 유통의 핵심 분기점이 됩니다.

그렇게 종교 절기가 국민적 공휴일로 지정되며 교회 바깥에서도 필수적 이벤트화가 이루어지고 성탄절은 경제 인프라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이제 탄생의 의미를 소비의 명분으로 보며 예수 없는 성탄절로 성육신의 의미가 희석되고 화려한 소비는 말구유 탄생과 어긋나며 복음의 의미가 훼손되며 깊은 묵상 대신 감상적 분위기와 일시적 감동으로 신앙의 감정화가 된다는 점으로 개신교는 성탄절 상업화를 비판합니다

그럼에도 개신교가 12월 25일, Christmas를 포기 못하는 이유에는 네 가지 구조적 이유가 있습니다.

부활은 신앙의 핵심 사건으로 성탄은 하나님이 인간이 되었다는 존재론적 선언으로 개신교 교리 체계에서 성육신 교리는 대체 불가능합니다.

비신자에게도 열려 있는 유일한 기독교 서사로교회 밖 세계와 연결되는 번역된 신학 언어가 문화 속 신학의 마지막 접점이 됩니다.

완전 거부 시 교회는 문화 공간에서 퇴장, 성탄절은 완전히 시장에 독점되며 비판적 참여가 전략적으로 유리하다는 방향을 가지게 됩니다.

상업화 속에서도 대항 서사 생산 가능한 ‘탈성사화된 절기’라는 개신교적 장점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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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적 변형을 충분히 인식한 이후에도, 현대 개신교는 교리, 영성, 예배, 윤리의 네가지 앙적 언어로 해석하고 성탄절을 소비의 반대말로 재해석하는 신학적 전략을 선택합니다.

현대 개신교에서 성탄절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이 인간의 조건을 선택했다는 사건으로 전능의 포기가 아니라 kenosis(자기 비움)과 인간 경험(시간·몸·고통)에 대해 전면적 참여시키며 성탄은 축하할 분위기가 아니라 존재론적 방향 전환의 선언합니다.

더 가지라에서 비워 들어오셨다로, 화려함에서 말구유라는 낮은자리로, 자기 만족에 타자를 위한 강림이라는 포인트로 상업화는 교리적으로 정면 반박되는 반(反)상업적 세계관을 제시합니다.

현대 개신교가 가장 강조하는 재해석은 성탄절 하루보다 대림절 4주, 대림절 영성의 핵심은 즉각적 만족의 거부하고 침묵, 절제, 기대하며 지금 사라는 시장의 시간감각에 대한 신앙적 저항이 발생합니다.

소음과 이벤트 최소화하고 말씀 묵상, 개인 기도등 조용함의 영성을 강조합니다.

성탄은 하나님이 낮은 곳으로 내려오신 사건을으로 우리도 낮아짐으로 맞이하는 시간이라고 자연스레 정리하게 됩니다.

요한복음 1장 (말씀이 육신이 되어), 빌립보서 2장 (자기 비움)을 중심으로 80년대 화려한 연출보다 말씀 선포, 성경 본문 낭독, 공동체 고백으로 예배 중심의 재배치가 이루어집니다.

이에 아기 예수는 보호받아야 할 존재이며 힘 없는 하나님이라는 어린이·약자의 신학이 부각되며 교회는 우리는 어떤 존재를 중심에 두는 공동체인가를 예배로 증언합니다.

예수의 탄생 환경으로 말구유, 여관 밖, 사회적 주변부라는 가난의 신학을 현대 개신교는 감상적 장치가 아니라 윤리적 기준선으로 해석하며 성탄절은 내 소비가 누구를 배제하는가를 묻는 날로 유도합니다.

성탄 헌금의 구제 목적 지정, 선물 예산 일부를 기부로 전환, 노숙인·이주민 사역 집중하는 상업 소비를 윤리적 재분배로 전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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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개신교에게 성탄절은 소비를 거부하는 도덕 캠페인이 아니라, 소비가 지배하는 세계에 대한 신학적 반전 선언입니다.

그래서 상업화를 비판하면서도 성탄절을 포기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 한가운데서 다른 시간감각·다른 가치 질서를 제시합니다.

성탄절은 현대 개신교에서 가장 약한 방식으로 가장 급진적인 메시지를 말하는 날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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