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른 이후의 어른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바보 같은 얘기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정말 내가 되고 싶은 건 그거야. 바보 같겠지만 말이야.
- 호밀밭의 파수꾼 The Catcher in the Rye,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Jerome David Salinger
2026년 첫 주말 어른이 되기를 바라며 세대를 생각합니다.
시간이 지남에 자연스레 세간에 오르내리는 단어, 어른.
진짜 어른이란 무엇을 경계로 나뉘는지, 그리고 우리는 어떤 이를 어른이라고 부르는지 궁금합니다.
다 자란 사람, 돈을 벌기 시작한 사람, 누군가를 책임질 수 있는 사람, 독립해서 사는 사람……. 수많은 정의를 내릴 수 있지만, 이는 진정한 어른을 나타내기에는 다소 부족함이 있어 보입니다.
이렇게 나이, 정신 연령, 경험 따위가 어른의 경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이따금씩 왠지 모르게 '어른'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이질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지난 2023년 10월, 만 19~59세 성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어른에 대한 인식’이라는 제목으로 설문조사 중 ‘본인 스스로 어른이라고 생각하는지’를 물은 결과에 ‘나는 아직 어른이 아닌 것 같다’에 응답자 절반 이상(53%)이 응답했습니다.
그렇다면 윗세대에 대한 아랫세대의 생각은 어떠까요?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와 ‘자신의 경험만으로 우리 세대를 판단한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가 각각 74%, 72%로 가장 높았습니다.
바야흐로…Adultlessness, 어른이 사라진 시대에 어른의 개념은 무엇일까요?
나는 서류상 어른이었지만, 내가 입은 어른이라는 외피는 때때로 종이처럼 얇게 느껴졌고, 내가 경험하는 나는 내가 되어야 하는 구체화된 어른의 납작한 버전처럼 느껴졌다.
- 어른 이후의 어른 Adults After Adulthood p.14, 모야샤너 Moya Shaunnah
저널리스트이자 심리치료사인 30대 중반의 Moya Shaunnah 모야 사너는 자신이 어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에 썼다고 하는 그의 저서, 「Adults After Adulthood 어른 이후의 어른」에서 엮어낸 다채로운 성장 서사는 지금 발 디디고 서 있는 나의 위치를 돌아보게 하며, 자기 자신을 제대로 인식하게 만듭니다..
스스로 어른임을 확신하지 못하는 태도는 보편적이고 정상적인 일임에도 사회는 응당 어른이라면 취직, 독립, 결혼, 육아, 주택 소유 등 어른의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는 듯 우리를 압박하는것을 보며 어른다움의 위기로 보고, 청소년기부터 노년기에 해당하는 약 45명의 사람들을 만나 그들에게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질문합니다.
저자는 어른이 된다는 것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라는 전제로 육체적 성숙 이후의 ‘두 번째 성장’ 곧, 자아의 갱신, 유연성 회복으로 이어갑니다.
심리적으로는 자아의 경직을 해체하고 ‘유동적 자아(fluid self)’로 전환을 통해 불안, 상실, 모호함을 성숙의 재료로 보고자 합니다.
모든 일을 유능하고 책임감 있게 열심히 하고, 그 일을 제대로 해내는 30대 중반의 모야 사너.
그는 어른의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고, 어른이라는 사실을 증명할 서류들도 분명 존재했지만, 자신이 어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에 이 책을 써야만 했습니다.
이미 풍부한 인터뷰 경험을 갖춘 저널리스트이면서도 자신의 관심사를 전문적으로 파고들기 위해 심리치료를 공부하고(현재는 심리치료사가 되었다), 스스로에 대한 불안을 잠재우고자 정신분석을 받기도 한 지은이는 누가 보아도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치열하게 사는 사람이다. 하지만 자신의 모든 노력이 살아남기 위한 ‘거짓 자아’에서 비롯되었음을 깨닫고 엄청난 혼란에 휩싸이게 됩니다.
어른은 숨을 참을 수 있다. 이번 파도가 지나가면 조금은 숨을 쉴 수 있게 되리라는 걸 알기 때문에.
- 어른 이후의 어른 p.268
결승선으로서의 어른다움이 아니라, 끊임없는 변화와 발전과 자기 이해의 과정으로서의 어른다움이 중요한 것이다. 그것이 중년기의 결정적인 성장 경험이다.
- 어른 이후의 어른 p.281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어른이 된다는 것은 도착하는 일이 아니라, 계속 다시 되는 일이라는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어른은 완성형 인간이 아니라, 책임과 한계를 자각하면서도 계속 조정하는 존재입니다.
저자는 사회가 요구하는 생애 단계(학업 → 취업 → 결혼 → 출산 → 안정—가정)를 현대인의 실제 삶과 더 이상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어른 이후의 어른은 늦어짐은 실패가 아니고 우회는 결함이 아니며 다른 속도는 미성숙의 증거가 아니라고 말하는데, 특히 이는 현대 도시 중산층의 만성적 자기비난을 겨냥하며 사회적 시계(social clock)에 대해 크게 저항합니다.
마지막으로 강해지는 것이라는 전통적 성숙에 대해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환상을 내려놓고 도움을 요청해야하며 자기 삶에 대해 과도한 서사를 만들지 않는 태도로 덜 단단해져도 무너지지 않는 상태가 어른됨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한국적인 상황은 권위의 잔해 속에서 자율을 배우지 못한 세대가 Adultlessness를 가져온것이라 할것입니다.
가부장, 연공서열, 집단윤리가 1980~90년대 민주화 이후 급격히 해체되며 유교적 질서가 붕괴되고 기존 권위는 무너졌으나, 새로운 자율적 가치 체계가 세워지지 봇한 상황입니다.
어른됨은 도덕적, 예의적 완성이라는 조선의 유학은 ‘형식적 성숙’만 남았고 충성과 생산성의 완성이 어른이라는 군부독재시절의 상징은 경제적 성숙은 이루었으나 도덕적 성숙은 비어가게 했고 이에 항거해 권위 거부, 수평적 관계 강조했던 민주화는 권위는 사라졌으나 책임도 사라지게 했고 피곤한 관계를 멀리하고 내 감정만 우선하는 지금의 Gen G, Millennials은 개인화된 감정 윤리가 공동체의 도덕을 대체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사회심리는 권위를 신뢰하지 않으면서도, 권위의 부재에 불안함을 느끼고 스스로 판단하기보다 누가 옳은지를 끊임없이 확인하려하고 청년은 어른을 불신하고, 어른은 청년을 두려워하는 권위가 사라진 공백의 불안이 한국의 Adultlessness입니다.
하루하루 살아내며 축적되는 성찰을 가리켜 우리는 철학이라고 말하고 세월의 두께처럼 삶에 내려앉은 사유를 인생의 태도로 다듬은 이들을 가리켜 어른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나이테처럼 단단하게 몸에 새겨져 하나의 형식이되고, 나아가 그 몸에 스며든 태도의 미학이 사회 구성원들 대다수에게 받아들여지면 질서가 되고, 질서가 당대로 끝나지 않고 시간을 뛰어넘어 후대로 전해져 내려가면 전통이 됩니다.
독일의 저널리스트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의 저서 Die Kunst des lassigen Anstands를 우리말로 옮기자면 “굳이 격식을 차리지 않아도 귀족처럼 예의를 지킬 수 있는 품격의 기술” 정도가 될 것입니다.
책의 목적은 13세기 무렵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무력을 행사하던 이들인 기사를 통제하기 위해 체계화된 일련의 행동 규범인, caballarius 기사도의 전통을 27가지로 나열하며 자신의 품위를 세우고자 하는 기술을 소개하고자 함이 아니라 나이가 들수록 깊어지는 주름살처럼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어른스러움과 그 격에 대한 권유에 있습니다.
노땅, 꼰대, 틀딱, 노슬아치.
비하의 말 자체에 중심을 두기보다 계속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나를 바라보며 실패와 잘못을 스스로 인정하고 취약성을 인정하는 성숙한 모습으로 이어가다보면 삶이 보여주지 않을까요.
幼幼而長不長 유유이장불장; 아이는 아이다운데 어른은 어른답지 못하다.
- 道德經 도덕경
君君, 臣臣, 父父, 子子 군군, 신신, 부부, 자자;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비는 아비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
- 論語 顔淵 논어 안연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