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편한 에밀 아자르에서 유연한 에도아르도 폰티로
모모는 철부지 모모는 무지개, 모모는 생을 쫓아가는 시계바늘이다
모모는 방랑자 모모는 외론 그림자
너무 기뻐서 박수를 치듯이 날개짓하며 날아가는 니스의 새들이 꿈꾸는 모모는 환상가
그런데 왜 모모앞에 있는 생은 행복한가
인간은 사랑없이 살 수 없단 것을 모모는 잘 알고있기 때문이다
모모 모모 모모
- 모모, 김만준 1978년 대학가요제
노래를 작곡한 박철홍은 고등학교 3학년이던 어느 날 교통사고로 다리를 못 쓰게 되었고 자괴감에 빠진 그는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던 중 프랑스 소설 「자기 앞의 생」을 읽고 감명을 받아 멜로디를 만들었습니다.
몇년 후 광주 전일방송 주최 대학가요제 출전을 준비하던 조선대학교 학생 김만준에게 곡을 주었고 김만준은 가사를 고민하다가 책 「자기 앞의 생」의 후면에 인쇄된 문구를 보았습니다.
모모는 철부지, 모모는 무지개, 모모는 생을 쫓아가는 시곗바늘이다
날아가는 니스의 새들이 꿈꾸는 모모는 환상가 그런데 왜 모모 앞에 있는 생은 행복한가
김만준은 문구를 개사해 가요제에 출전했고 대상을 받았고 얼마 후 ‘모모’는 전국적으로 대성공하며 신드롬으로 이어져 1979년엔 연극 「모모」, 「모모와 마담 모자르」 가 막을 올렸고그해 영화계에선 전영록, 이미숙이 주연한 영화 「모모는 철부지」가 개봉했습니다.
나는 자리에 누워 잠들기 전에 이따금 상상 속에서 초인종 소리를 들었다.
문을 열고 나가보면, 거기에는 새끼들을 돌보기 위해 집안으로 들어오려는 암사자가 한 마리 있었다.
암사자들은 새끼를 위해서라면 절대 물러서지 않고 차라리 죽음을 택하는데, 그것이 정글의 법칙이며, 암사자가 새끼를 보호하지 않는다면, 누구도 암사자를 신뢰하지 않을 거라고 얘기했다.
- 본문 p.76~77
추위의 절정을 치닫는 소한과 대한사이에 더 웅크리게 만드는 20세기 중반의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 을 돌아보며 이를 스크린에서 유연함으로 그려간 21세기 넷플릭스의 「자기 앞의 생」 에서 자연스레 냉기를 덜어내어 봅니다.
소설과 넷플릭스 영화 「자기 앞의 생」 은 둘 다 얘깃거리가 참 많은 작품입니다.
열네 살 소년 모모가 들려주는 신비롭고 경이로운 생의 비밀을 담은 에밀 아자르의 소설 「자기 앞의 생」 .
1980년 의문의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 프랑스 작가 로맹 가리가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출간한 두 번째 소설입니다.
어린 소년 모모의 슬프지만 아름다운 성장 이야기를 담고 있죠.
악동 같지만 순수한 어린 주인공 모모를 통해 이 세상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는 밑바닥 삶을 살아가는 불행한 사람들의 슬픔과 고독과 사랑을 그리고 있습니다.
나는 행복해지기 위해 생의 엉덩이를 핥아대는 짓을 할 생각은 없다.
생을 미화할 생각, 생을 상대할 생각도 없다.
생과 나는 피차 상관이 없는 사이다.
- 본문 p.120쪽
주인공인 열네 살의 아랍 소년 모모는 창녀였던 어머니가 맡기고 떠난 뒤, 유대인 노파 Madame Rosa 마담 로자에게 맡겨져 자랍니다.
마담 로자는 가난한 동네에서 창녀들의 아이들을 돌보며 살아가는 인물로,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가는 95킬로그램의 육중한 체구를 가진 늙고 뚱뚱한 여자로 노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세상으로부터 외면받은 존재들이지만 소설은 그런 그들을 비극적으로만 그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일상에는 작고 소중한 따뜻함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모모는 철없는 듯하지만 결코 단순하지 않습니다.
그는 삶의 부조리함을 어른보다 더 똑바로 바라보며, 마담 로자를 사랑하고 지키려 합니다.
마담 로자는 점점 건강이 나빠지고, 병든 몸을 숨기려 하며 죽음의 그림자 속에 갇혀 가는 속에서 모모는 자신이 얼마나 그녀를 사랑하는지, 그리고 그 사랑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깨닫습니다.
두 인물은 사회적으로 소외된 이들이지만, 서로를 통해 인간답게 살아가는 법을 배웁니다.
이들의 관계는 가족, 혹은 그 이상의 사랑을 보여주는 감동적인 여정이죠.
저자는 자기의 실제 나이보다 많은 나이를 살고 있는 열네 살 모모의 눈을 통해 이해하지 못할 세상을 바라봅니다.
모모의 눈에 비친 세상은 결코 꿈같이 아름다운 세상이 아닙니다.
인종적으로 차별받는 아랍인, 아프리카인, 아우슈비츠에 끌려갔다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온 유태인, 살아가기 위해 웃음을 팔아야 하는 창녀들, 친구도 가족도 없는 노인, 한 몸에 여성과 남성의 성징을 모두 갖고 있는 성 전환자, 가난한 사람들, 병든 사람들…… 모모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두 이렇게 세상의 중심으로부터 이탈한, 사회로부터 소외되고, 그들 자신도 스스로를 소외시켜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버림받은 사람들, 소진되어가는 삶에 괴로워하고 슬퍼하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은 누구보다도 사랑에 가득 차서 살아갑니다.
모모가 일상 속에서 마주하는 죽음, 병, 가난, 차별, 사랑, 종교, 인간의 존엄을 어린아이의 시선과 언어로 서술하는 방식으로 전개됩니다.
‘자기 앞의 생’이라는 책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모모의 시각으로 본 ‘생(삶)’과 죽음, 종교, 인종에 대한 다양한 단면과 시각이 나오고 있습니다.
모모가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엄마는 왜 자기를 찾으러 오지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소설에서 가장 유명한 문장은 모모가 하밀 할아버지에게 묻는 말일 것입니다.
할아버지, 사람은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나요?
하밀 할아버지는 무슬림으로, 모모에게 글과 세상 이치를 가르쳐주는 사람입니다.
에도아르도 폰티 감독이 넷플릭스를 통해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2020년작 영화 「자기 앞의 생」 .
당시 84세인 소피아 로렌이 자신의 아들이 감독을 맡은 이 영화에서 로자 아줌마 역을 맡아 화제가 되었었죠.
노인과 아이, 초월하는 생 영화와 소설의 줄거리 뼈대는 엇비슷하지만 텍스트에서 스크린으로 옮겨가면서 세부 설정은 상당히 다릅니다.
소설엔 모모가 아랍계 무슬림 소년으로 나오지만 영화에선 세네갈 출신 흑인 소년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모모와 로자 아줌마의 첫 만남도 영화에서는 모모가 로자 아줌마의 은촛대를 시장에서 훔치면서 시작되지만 소설에서 모모는 그보다 어렸던 3세 무렵에 이미 로자 아줌마에게 맡겨진 상태였습니다.
소설 배경지는 프랑스 파리 빈민가인데 영화에선 이탈리아 해안 도시로 바뀌면서 분위기와 내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무엇보다 소설에서 중요한 부분인 모모의 생부가 등장하는 장면이 통째로 빠져 모모의 엄마가 왜 찾아오지 않는지에 대한 설명이 나오지 않습니다.
강하게 부각된 요소는 미모사입니다.
공부가 끝나고 나서, 하밀 할아버지는 내가 좋아하는 니스 이야기를 해줬다.
할아버지가 거리에서 춤추는 광대며 마차 위에 앉아 있는 즐거운 거인 이야기를 할 때면, 나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마음이 편안해졌다.
나는 그곳에 있다는 미모사 숲이며 종려나무들을 무척 좋아했고, 너무 기뻐서 박수를 치는 것처럼 날개를 파닥인다는 흰 새들에 대한 이야기도 좋아했다.
…중략…
(모모는) 어떤 때는 파리 중앙시장의 꽃수레에서 미모사를 한 포기씩 훔쳐서 가져오기도 했다.
그 꽃들이 집에 행복의 향기를 풍기기를 바랐다.
꽃다발을 품고 돌아오면서 나는 니스의 꽃 전쟁을 상상했다.
그리고 하밀 할아버지가 젊은 시절에 보았다던, 순백색의 도시 주변에 무성하게 자라난 미모사 숲을 떠올렸다.
- 소설 본문 중
소설에선 미모사나무가 하밀 할아버지가 회상하는 형식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미모사가 상당히 비중 있게 소재로 나오고 있습니다.
로자 아줌마가 어릴 적 집에 눈물이 날 정도로 아름다운 미모사 나무가 있었다고, 봄에는 미모사 나무가 노란색으로 온통 뒤덮였다고 회상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로자 아줌마가 “내 삶에서 이 기억 하나만을 위해서라면 다른 기억들은 모두 포기할 수 있어”라고 말할 정도입니다.
로자 아줌마 상태가 나빠지자 모모가 어렵게 노란 미모사 가지를 구해와 건네는 장면도 있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도 모모가 로자의 무덤 위에 노란 미모사 꽃이 가득한 엽서를 올려놓는 것입니다.
미모사가 소설에선 소품 정도지만 영화에서는 상징성이 큰 꽃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소설이 아이의 언어로 세계를 왜곡해 보여주는 1인칭시점으로 소설의 핵심은 무엇이 일어났는가가 아니라 아이가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말하는가에 있었다면 영화는 외부 시선에서 정리된 제3자적 관점으로 모모의 언어적 독창성과 인식의 비틀림을 약화시키고 감정은 선명해졌으나, 윤리적 불편함은 완화함으로 아이의 시선보다 관객의 공감을 우선하고 잇습니다.
공간과 시간은 소설속에서 1970년대 파리 벨빌로 전후 프랑스 이민·빈곤·홀로코스트 그림자라는 역사성을 보여줬다면 영화는 대 이탈리아 바리에서 글로벌 이민·난민·마약 문제를 다루며 의도적으로 탈역사화를 시도 하며 유럽 현대사의 죄책감과 방치가 배경이 되었던 소설과 특정 국가의 책임보다 보편적 휴머니즘 강조하는 영화가 대비시키며 프랑스 사회에 대한 고발을 희석시키고, 국경 없는 인간 이야기로 재구성하고 있습니다.
소설속의 모모는 거칠고, 오해가 많고, 때로 잔인한 생각도 하며 성숙함은 선택의 결과이자 강요된 책임을 주고 윤리적 판단이 독자를 불편하게 만들엇다면 영화 속 모모는 보다 온화하고 이해심 많은 인물로 폭력성과 혼란이 정제되고 성숙함이 자연스러운 성장처럼 보이게 연출하며 영화는 모모를 상처 입은 아이로 남기고, 소설처럼 윤리적 결단을 내리는 아이로까지 밀어붙이지 않습니다.
로자는 소설 속에서 비호감적이고, 집착적이며, 두려움에 사로잡힌 인물로 아우슈비츠 트라우마가 삶 전반을 지배하며 독자는 그녀를 사랑하면서도 불편해하는데 영화의 로사는 우선 배역이 소피아 로렌이라는 존재감으로 인해 중심 인물로 부상하며 트라우마는 남아 있으나, 존엄하고 고귀한 노년 강조하고 감정선이 정돈되고 미학적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래, 아이의 성장 이야기는 노년의 존엄한 퇴장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합니다.
영화는 원작을 훼손했다기보다, 다른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소설이 이 사회는 가장 약한 자에게 어떤 선택을 강요하는가라고 말하고 잇는데 영화는 그래도 우리는 서로를 사랑할 수 있는가를 이야기 합니다.
그래, 두 작품의 관계는 원작–영상화라기보다 급진적 사회소설을 보편적 휴먼 드라마로의 이동에 가깝습니다.
소설이 독자를 불편하게 만들기 위해 존재한다면, 영화는 관객을 머무르게 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듣는 캐릭터와 말한는 캐릭터를 오가는 원작 소설과 영화는모두 살아가며 필요한, 혹은 잊혀지거나 사라진것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