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문 | 미국의 반지성주의

; From Egg-head to Trumpism.

by Architect Y


최고의 시절이었고, 최악의 시절이었고, 지혜의 시대였고, 어리석음의 시대였고, 믿음의 세기였고, 불신의 세기였고, 빛의 계절이었고, 어둠의 계절이었고, 희망의 봄이었고, 절망의 겨울이었고, 우리 앞에 모든 것이 있었고, 우리 앞에 아무것도 없었고, 우리는 모두 천국을 향해 똑바로 나아가고 있었고, 우리는 모두 천국을 등진 채 반대로 나아가고 있었다

- 찰스 디킨스, 두 도시 이야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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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내세운 정치 철학·정책 기조를 통칭하는 개념으로, 특히 자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와 보호무역, 강경 이민·국경 정책, 반(反)엘리트주의적 대중주의는 글로벌 협력보다 미국의 국익을 우선하는 내셔널리즘/아메리카 퍼스트를 강조하며 반세계화, 반글로벌리즘 성향이커지고 반엘리트주의와 우익대중주의(포퓰리즘)와 결합해 기존 정치 엘리트를 비판하고 대중의 목소리를 강조합니다.

트럼피즘은 사회 분열을 심화시키고 국내외에서 강한 반발을 낳고 있는 시점에서 고전 한권을 소환해 봅니다.


미국의 반지성주의 Anti-intellectualism in American Life


시대 분위기를 타는듯 2017년 원서 출간 후 반세기 만에 국내 초역되었다가 절판된 Richard Hofstadter 리처드 호프스태터의 저서 「미국의 반지성주의」 는 지난해, 2025년 재출판되었습니다.

1964년도 퓰리처상 논픽션 부문 수상작인 이 책에서 호프스태터는 미국의 반지식인 전통의 저류에는 복음주의 신앙에 입각한 민중의 반권위주의적 심성이 있다는 것, 그 핵심에는 지식을 독점하는 엘리트에 대한 뿌리깊은 반감이 자리잡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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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부터 1954년 사이에 일어난, 공산주의 혐의자들에 반대하는 떠들석한 반대 캠페인으로, 대부분의 경우 공산주의자와 관련이 없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블랙리스트에 오르거나 직업을 잃었던 미국을 휩쓴 공산주의자 색출 열풍인 McCarthyism 메카시즘이 휘몰아치던 당시의 미국의 대통령 선거는 연민과 지성 대 혐오와 속물이 대립하는 구도였고 일리노이 지식인으로 유창한 말솜씨로 연설가라는 명성을 가지고 있었던 일리노이 주지사 애들레이 스티븐슨은 공화당의 가장 인기있는 전쟁 영웅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로 맞서 압도적인 패배로 20년간 지속된 민주당의 백악관 지배를 끝을냈습니다

이로써 미국 사회가 지식인을 거부한 것으로 이해되며 이런 분위기는 미국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어, ‘반지성적’이라는 말은 미국인들이 자기평가에 사용하는 가장 중요한 형용어가 되었습니다.

저자는 이런 정치적·지적 상황에 촉발되어 ‘반지성주의’라는 개념을 축으로 미국사를 되짚어 가는데 청교도주의와 건국의 정신을 재검토하고 18세기 중반 식민지 아메리카에 확산된 신앙부흥운동에서 20세기 후반의 빌리 그레이엄에 이르는 계보, ‘전문가’의 등용을 둘러싼 지식인과 정치의 갈등, 경제계에 스며든 실용주의, 존 듀이의 교육사상, 마크 트웨인이나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문학 등을 자세히 살핍니다.


지식인과 민중의 동맹은 불완전한 것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민주적인 지식인 계급은 때로 심한 절망감을 느끼게 된다.

- 본문 p.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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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핵심은 반지성주의를 단순한 무지나 저학력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 민주주의와 대중문화, 종교, 정치가 함께 만들어낸 하나의 지속적 전통으로 이해한다는 데 있습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미국의 이런 정신 풍토를 비판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인이란 무엇이고 지식인은 민주주의의 실현에 기여할 힘이 될 수 있는지 묻고있습니다.

미국 초기 개신교, 특히 복음주의와 부흥운동은 신앙의 진정성을 학문·신학적 훈련보다 개인적 체험에 두었습니다.

그 결과는 신학자, 성직자 엘리트에 대한 불신, 배운 신앙은 죽은 신앙이라는 정서 확산이되고 이는 지적 신학과 학문에 대한 도덕적 의심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래, 지성은 차가운 이성, 신앙은 따뜻한 진심이라는 이분법 형성되었습니다.

19세기 미국 민주주의는 엘리트에 대한 불신하는 상식적인 보통 사람의 판단을 최고 가치로 삼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전문성은 민주주의의 적처럼 인식되고 지식인은 현실을 모르는 책상물림으로 조롱되며 반엘리트주의는 반지성주의로 쉽게 전환되었습니다.

미국 사회는 오랫동안 쓸모 있는 지식만을 가치 있게 평가가 이어졌고 학문·철학·이론은 당장 돈이 안 되는 것, 현실과 무관한 사치로 간주되며 지성은 가치가 아니라 비용이 됩니다.

이렇게 개신교 복음주의 전통은 잭슨 민주주의와 대중 평등주의로 이어졌고 실용주의와 사업가 문화로 전해진것이 반지성주의의 역사적 뿌리입니다.


호프스태터는 특히 20세기 중반 미국 정치에서 반지성주의가 어떻게 활용되는지 분석합니다.

지적인 정치인은 엘리트로 공격받기 쉬워서 정치인들은 의도적으로 단순한 말투, 반지성적 정서에 호소, 전문가 의견을 무시하는 태도를 연출하는등 무지는 결함이 아니라 정치적 자산이 되었습니다.

메카시즘에서 보여주듯 지식인, 학자, 전문가 집단은 국가를 배신하는 내부의 적으로 의심받게되며 복잡한 현실 분석 대신 단순한 적/동지 구도, 감정적 확신이 진실을 대체하면서 반지성주의는 권위주의적 정치와 쉽게 결합하게 됩니다.


숙련과 지성은 결정을 내리거나 관리하는 권한에서 완전하게 소외되었던 것이다.

공공생활에서 지성의 지위는 유감스럽게도 교육이나 훈련에 대한 젠틀맨의 시각에 의존하게 되었고, 따라서 그들의 정치적 명운과 밀접하게 연결되어왔다.

19세기 미국에서 지성은 결국 존재 가치를 잃어버렸다.

- 본문 p.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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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i-intellectualism 반지성주의


‘Anti-intellectualism’이라는 말은 ‘반지성주의(反知性主義)’ 혹은 ‘반주지주의(反主知主義)’로 번역되는데, 반지성주의는 단순히 지식이나 학문을 거부하는 태도가 아니고 지성의 권위를 의심하고, 학문이 현실과 괴리될 때 비판하는 정서를 포함하며 지적 권위나 엘리트주의에 대해 회의적 입장을 취하는 주의나 사상을 가리킵니다.

호프스태터는 반지성주의가 영국 식민지 시절부터 존재했고, 20세기에 들어 더욱 강화됐다고 봤고 이것이 반드시 부정적인 현상만은 아니라고 하며 지성의 오만함에 대한 대중의 반발은 일종의 자정 작용이기는 하지만 문제는 지성을 특권화하는 태도, 즉 지성주의였다고 말합니다.

반지성주의의 뿌리는 신 앞의 평등이라는 종교적 믿음에서 비롯되며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는 확신은 세속 권위와 엘리트 지식인에 대한 도전을 낳았습니다.

저자는 이 에너지가 사회 쇄신의 힘이 되기도 하지만, 신앙이 정치와 결합할 때 폭력적 형태로 변질된다고 경고합니다.


냉전기의 반공주의는 이런 흐름을 정치적으로 이용했고 아이젠하워는 「하나님 아래 한 나라」 를 국기 맹세문에 추가했고, 레이건은 복음주의 세력의 지지로 당선되며 신앙은 애국의 상징, 정치의 수사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 결과는 오늘날에도 이어진졌는데 미국의 유권자들은 반지성적 언어에 열광하며 부시와 트럼프를 선택했습니다.

트럼프는 저자가 지적한 반지성주의의 전형으로 남부 백인 노동자들과 중서부 농민들, 자신을 엘리트와 멀다고 느끼는 시민이 그를 지지했습니다.

신앙은 선동의 언어로, 분노는 신념으로 포장되었죠.

2025년 9월, 유타 밸리 대학교에서 트럼프 지지자 찰리 커크가 연설 중 총격으로 사망하며 일부 보수 진영은 그를 순교자로 추앙했고 이는 폭력이 신앙의 언어로 정당화되는 순간이었습니다.

호프스태터가 예견한 「확신의 폭력」 이 현실이 된 것입니다.

리처드 호프스태터의 「미국의 반지성주의」를 분석 틀로 삼아 트럼프 정권(2017–2021, 그리고 그 이후의 정치적 영향력)을 바라보면, 이는 우연적 일탈이나 개인적 성향의 문제라기보다, 미국 정치문화에 내재해 있던 반지성주의가 ‘가시적 권력 형태’로 조직된 사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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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교육 개혁가들의 역사는 대체로 적합하지 않은 환경에 맞서 싸운 사람들의 역사처럼 보인다.

미국 문학에서 교육을 둘러싼 슬픈 이야기는 청교도의 설교에 등장하는 그것만큼이나 특징적이다.

문학이 비판의 한 수단이었다는 것 자체는 놀라울 게 없다.

비판은 개혁을 지향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져야 할 짐이기 때문이다.

- 본문 p.414


반지성주의로 보는 Trumpism


호프스태터의 핵심 명제는 민주주의는 지성을 필요로 하지만, 대중정치는 지성을 의심하는 정서를 끊임없이 생산한다고 정의합니다.

트럼프 정권은 이 긴장이 균형을 잃고 한쪽으로 급격히 기울어진 순간입니다.

금융위기, 중산층 몰락, 글로벌화의 실패 경험, 워싱턴 관료, 학자, 언론, 과학자에 대한 신뢰 붕괴, 똑똑한 사람들이 나라를 망쳤다는 집단 정서가 형성되며 반지성주의는 불만의 언어이자 항의의 수단이 되었습니다.

지식인은 무능한 엘리트가 아니라 도덕적으로 부패한 집단으로 재정의되고 지성 비판이 곧 도덕 비난으로 전환되며 호프스태터가 말한 지성에 대한 감정적 적대가 그대로 재현되었습니다.

트럼프의 정치 언어는 반지성주의의 전형적 performance로 복잡한 정책 문제를 거짓말이다, 가짜 뉴스다, 간단한 해결책이 있다 로 축소하는데 이는 무지라기보다 지적 복잡성 자체를 배제하는 전략입니다.

전문가 의견는 현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되고 내 직관이 더 정확하다는 반복된 메시지는 호프스태터가 지적한 지성은 현실과 유리되어 있다는 대중적 감각이 정치 지도자의 화법으로 제도화되었습니다.

트럼프 정권의 지지층은 단순히 ‘무지한 대중’이 아니고 교육 수준, 문화 자본의 변화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이 말 잘하는 사람들에 의해 배제된다는 감정으로 지식인을 위협적 타자로 만들었고 나는 틀린 게 아니라, 엘리트가 거짓말하는 것이다라는 자신의 판단을 보호하는 방어 논리가 만들어진것입니다.

트럼프는 ‘원인’이 아니라 ‘증상’으로 호프스태터의 관점에서 보면 트럼프는 반지성주의를 창조한 인물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던 정서를 효과적으로 동원한 정치적 촉매입니다.

따라서 문제는 개인 교체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지성이 다시 공적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면, 트럼프 이후에도 ‘트럼프적 정치’는 반복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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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성주의에 맞서는 담론은 왜 항상 실패할까


반지성주의에 대한 담론적 반박은 틀렸기 때문이 아니라, 애초에 작동하지 않도록 설계된 전장에서 수행되기 때문에 실패합니다.

원인이 되는 첫번째 요인으로 인지심리 차원에서 반박은 정보가 아니라 위협으로 간주됩니다.

사람은 사실을 평가할 때 진위보다 이 정보가 나를 어떤 사람으로 만드는가를 먼저 판단하게되기에 반지성주의 담론은 당신의 직관은 옳다라고 하는 반면 반박 담론은 당신은 틀렸다 혹은 속았다라고 반박은 곧 정체성 공격으로 인식됨에 따라 논리적 정확성은 인지적 접근권(access) 자체를 얻지 못합니다.(Identity-protective cognition: 정체성 보호 인지)

그리고 반지성주의 신념은 종종 도덕적 우월감과 결합해 반박은 무지함을 드러내는 행위로 해석되기에 그 결과 사실 제시는 신념 수정이 아니라 방어적 확신 강화를 유도합니다.(Backfire Effect)

뿐만 아니라 단순한 서사는 즉각적으로 정서가 안정되지만 복잡한 설명은 불안·피로·혼란을 야기합니다.

반지성주의는 편안한 오류를 제공하고, 반박 담론은 불편한 정확성을 요구하는데 인간 뇌는 전자를 선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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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로 미디어를 통해 바라본다면 반지성 담론이 ‘경기 규칙’을 만듭니다.

반지성주의는 단정적이고 반복적으로 감정을 유발하지만 반지성주의 비판은 조건부로 맥락에 의존적이고 길고 복잡하기에 플랫폼 알고리즘은 후자를 체계적으로 가시성에서 배제합니다.

반지성 담론은 우리는 진실을 말한다지만 반박 담론은 사실은 이렇다로 후자는 항상 ‘해명하는 쪽’, ‘변명하는 쪽’ 위치에 놓이며 이 순간 이미 담론의 주도권은 상실됩니다.

그리고 SNS에서 반지성주의 비판은 내부 집단에서 고상함으로 보일 수 있으나 외부 집단에서는 적대 행위가되어 결과적으로 설득 대상에게는 페널티를, 이미 동의한 집단에게만 박수를 치며 설득은 일어나지 않고, 부족 간 과시만 강화됩니다.


결국, 반박은 정체성 공격으로 인식하고 알고리즘은 반박을 노출시키지 않으며 종교적 프레임은 반박을 악의 시험으로 해석되고 반박자는 엘리트·적대자로 낙인찍히고 반지성주의는 도덕적 승리감 획득하게되며 결과적으로 반박은 신념을 약화시키지 않고 강화하는 구조적 악순환이 형성됩니다.

호프스태터의 통찰로 이를 바라본다면, 반지성주의는 논리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의 정치고 지성은 설명할수록 신뢰를 잃을 수 있고 민주주의는 지성을 필요로 하지만 지성은 민주주의에서 항상 불리하기에 반지성주의를 논파(論破:논하여 남의 이론이나 학설 따위를 깨뜨림)하려는 시도는 구조적으로 실패하는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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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점에서 어떻게 반박할 것인가가 아닌 어떤 조건에서 지성이 다시 신뢰될 수 있는가라고 물어야 할 질문입니다.

이는 새로운 담론 방식, 권위의 재구성, 감정과 지성의 재연결로 이어집니다.


정치에 관심이 많은 근본주의자를 극우로 이끄는 것은 단순한 기회주의가 아니다.

근본주의자들도 다른 이들 못지않게 자신들이 폭넓은 세계관을 지녔다고 여기는 경향이 강하며, 종교적 반감과 정치적 반감을 결합할 수 있을 때 더 큰 만족감을 느낀다.

그들은 언뜻 보기에 서로 무관한 적의를 하나로 결합해서 상승작용을 하게 만드는 능력을 발전시켰다.

- 본문 p.191∼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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