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네, 좌뇌한테 속았네!
한참 궁금증이 많았던 나이대에 화두로 등장했던 좌뇌와 우뇌의 기능에 관한 이야기는 어쩌면 지금의 MBTI와도 견줄만 했습니다.
1990년대는 뇌과학이 대중과 학계 모두에서 크게 주목받던 시대로 특히 미국 정부가 뇌의 10년(Decade of the Brain, 1990-1999)을 선언하면서 뇌 기능과 인지 메커니즘에 대한 연구를 장려했고, 이 시기에 좌뇌-우뇌 기능 차이(lateralization)에 대한 논의가 집중적으로 확산했습니다.
좌뇌는 주로 패턴의 인지, 언어, 분류 및 범주화를 담당하는 반면에 상황의 큰 그림을 보고 이해하기, 창조성 발현하기, 감정 경험하기, 공간 지각 및 처리 능력은 모두 우뇌에 의지하며 신체활동에서 좌뇌는 우반신 활동을 통제하고 우뇌는 좌반신 활동을 통제한다고 합니다.
이후 단순 ‘좌뇌 vs 우뇌’ 이분법이 비판과 재평가를 받으며 뇌 반구 통합적 관점이 강화되며 좌노와 우뇌의 기능적 분리 논란은 화제성이 사라지기는 했지만 1960년대부터 시작해 2020년에 다다른 지금까지 계속된 뇌과학과 신경심리학 연구는 좌뇌의 언어와 범주화 기능이 ‘이야기’ 혹은 ‘거짓말’을 창조한다고 결론 내리고 있습니다.
좌뇌는 생각을 창조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 생각들을 종류별로 모아서 그룹을 만들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애쓴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 ‘응당 그래야 마땅하다’는 당위성을 만든다.
이를 신념 체계라고 부른다.
- 본문 p.84 2장 당신은 누구입니까?: 만들어진 자아 중
자아를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이야기를 꾸며내는 ‘거짓말 장치’ 좌뇌,
비언어적 앎의 형태로 존재한 탓에 무의식으로 뭉뚱그려진 ‘침묵하는’ 우뇌
뇌를 아무리 해부하고 스캔해도 ‘자아’에 해당하는 특정 부위는 발견되지 않습니다.
시각, 기억, 언어, 감정 등은 영역별로 나뉘어 있지만 ‘나’라는 통합된 주체는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자아는 객관적 실체라기보다 기능적 구성물인것입니다.
이 책의 핵심 축은 「좌뇌의 해석자(interpreter) 이론」 입니다.
미국의 저명한 뇌과학자 Michael Gazzaniga 마이클 가자니가 박사는 간질 치료의 일환으로 좌뇌, 우뇌 사이의 뇌량을 제거한 이른바 '분리뇌' 환자들을 대상으로 1960년대 흥미로운 연구를 했습니다.
환자의 왼쪽 눈에 '걸으세요'라는 글자를 보여주자 환자는 즉시 일어나 걷기 시작했는데, '왜 갑자기 걷느냐'고 묻자 환자는 '가서 콜라 좀 가져오려고요'라고 답했습니다.
왼쪽 눈을 관장하는 우뇌가 글씨를 바로 인식해 행동으로 옮겼지만, 좌뇌와 우뇌 사이의 연결이 끊긴 탓에 말을 담당하는 좌뇌는 자신이 왜 걷는지 이유를 몰랐던 것이죠.
주목할 만한 점은 영문을 모르는 좌뇌가 자신이 걷는 이유를 그럴싸하게 지어냈다는 점입니다.
저자는 마이클 가자니가의 연구를 바탕으로 설명합니다.
좌뇌는 언어, 논리, 시간적 순서, 인과관계 서사 구성을 담당하고 중요한 기능은 좌뇌는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어 의미를 부여한다는것입니다.
좌뇌는 이유를 모르면 지어내서라도 설명하는데 우리의 행동에 대해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며 실제 원인과 상관없이 내러티브를 구성한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내가 결정했다”고 느끼는 많은 선택은 사실 무의식적 처리 후에 좌뇌가 설명을 붙인 것일 수 있다고 하는것이죠.
저자는 좌뇌를 '마음의 해석 장치'로 비유했는데 마음의 해석은 우리의 감정과 행동까지 지배한다고 합니.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면 우리는 날씨 더럽게 안 좋네.' 또는 '운치 있고 좋네.' 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러한 생각들은 언어를 관장하는 좌뇌에 의해 만들어지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에 따라 이후 우리가 느끼게 될 감정은 판이합니다.
불평 뒤에는 부정적 감정이 따라오기 마련인데 불평하는 마음이 들 때, 이것이 좌뇌가 스스로 역할을 유지하기 위해 '좌뇌가 또 지나치게 불평하는군.’이라고 편향된 해석을 들려주는 것일 뿐이라고 여겨 보면 어떨까요?
나와 좌뇌의 해석을 분리하면 부정적 감정이 떠오르기도 전에 대수롭지 않은 일이 될 수 있렇듯 저자는 좌뇌와의 동일시를 줄여야만 마음의 고통을 줄일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반면, 우뇌는 직관, 전체적 인식, 현재 순간의 경험, 비언어적 처리를 담당합니다.
우뇌적 경험의 특징은 ‘나’와 ‘세계’의 경계가 흐리고 시간감각이 약화되며 몰입(flow), 명상, 예술적 황홀경에 닿아 이 상태에서는 ‘자아감’이 약해지는데 작가는 이를 ‘자아가 없는 인식 상태’로 설명합니다.
테일러 박사의 좌뇌를 치료하기까지 수년의 재활 과정이 필요했다.
이 지극한 행복을 경험한 후에도 좌뇌가 다시 기능하도록 매우 힘들게 노력했다는 뜻이다.
세상을 헤쳐 나가고 소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좌뇌가 필요했다.
어쩌면 행복은 좌뇌와 어떻게 균형을 이룰지에 달려 있지 않을까?
내 생각에 바람직한 목표는 우뇌가 지배권을 갖는 것도, 좌뇌를 아예 꺼 버리는 것도 아니다.
붓다가 중도(middle path)라고 부른 그 상태를 성취하는 데 있다.
- 본문 p.132 4장 무의식인 줄 알았던 것: 침묵하는 우뇌중에서
아주 정교하고 복잡한 이 행위들에 ‘무의식적’이라는 꼬리표를 붙인 이유는 단지 언어 중추 밖에서 수행되는 기능이라서다.
심혈관계나 소화기계를 생각해 보라. 하루 종일 매우 복잡한 일을 하고 있다.
뇌가 없다면 불가능할 임무들이다. 그러나 좌뇌가 주도하는 생각의 영역 밖이라는 이유로 해석 장치로부터 별다른 주목을 끌지 못한다.
우뇌의 역할 또한 의식의 한 형태이건만, 우리는 이것을 평가 절하하고 묵살하라고 배워 왔다.
별로 놀라운 일도 아니지만, 바로 좌뇌에 의해 말이다.
- 본문 p.132 4장 무의식인 줄 알았던 것: 침묵하는 우뇌중에서
책의 큰 특징은 불교와 신경과학의 만남입니다.
크리스 나이바우어 박사는 2500년 전 선불교에서 다뤄 온 무아(無我) 사상이 현대 신경과학의 수많은 실험 결과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는 점을 발견합니다.
신경심리학자로서 22년간 좌우뇌의 작동 원리를 연구하고, 수행자로서 동양의 영적 가르침을 몸소 실천한 그의 실험적 행보는 의미를 과잉 생산하고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의심하는 현대인들에게 욕망의 덧없음을 일깨우는 동시에 '나'를 바라보는 신선한 관점을 제안합니다.
불교의 무아 개념은 고정된 자아는 없다는것으로 자아는 집착이 만든 환상이고 고통은 자아와 동일시에서하며 발생한다고 작가는 말합니다:
현대 신경과학은 무아 개념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자아는 과거와 미래를 끊임없이 서사화하기 때문에 자아에 집착할수록 불안이 증가하고 비교 의식이 커지고 후회와 죄책감이 반복되며 타인 평가에 과도하게 민감합니다
우리는 과거를 재해석하고 미래를 시뮬레이션하며 자신에 대한 스토리를 자져가는데 이 과정이 우울, 불안, 강박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자아는 생각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경향성이 있는데, 이는 불교에서 파악한 자아의 특징이기도 하다.
숙련된 명상가들은 하나같이 처음 명상에 입문하면 마음이 고요해지고 머릿속 목소리가 잦아들기 시작하다가 느닷없이 일단의 생각들이 떠오르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이는 소위 자아라는 이미지를 유지하려는 가장 중요한 몸부림이다.
그 덕분에 명상가들은 자신이 가장 집착하고 있던 이야기와 문젯거리를 알아차리게 된다.
- 본문 p.109 3장 생각이 멈추지 않는다: 과몰입하는 좌뇌중에서
작가의 입장은 자유의지는 우리가 느끼는 것만큼 강력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많은 결정이 무의식적 처리, 감정적 자동반응, 습관적 회로에서 먼저 일어나고 그 후 자아가 내가 결정했다고 해석합니다.
저자는 자아를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자아를 절대적 실체로 믿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 방법으로 첫째, 좌뇌의 언어 활동을 감소하고 현재 경험을 중심으로 인식하는 명상, 두번째로 자아 경계를 약화시키는 예술, 음악, 운동, 창작등의 활동에 몰입하고 마지막 세번째로 관찰자 시점 훈련으로 생각을 ‘내 것’이 아닌 ‘일어나는 현상’으로 보라고 이야기 합니다.
아들이 어렸을 때 내가 괴물인 척하고 아들을 쫓아다닌 적이 있다.
아들은 끝없이 비명을 지르고 깔깔 웃으며 도망갔다.
“괴물이 날 잡으러 와요!”
또, 아들의 몸을 잡고 떨어뜨릴 듯한 자세를 취하며 ‘제발 날 놔 주지 마세요.’ 놀이도 했다.
둘 다 신나게 웃으며 조금씩 더 아슬아슬하게 기울이면, 게임은 점점 더 흥미진진해진다.
이런 장난이 심각함을 쏙 빼 버린 드라마의 초기 형태다.
그런데 우리는 어른이 되면서 이 드라마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원래 드라마의 본질은 즐기기 위한 것이었는데 말이다.
- 본문 p.234 8장 뇌를 알고 난 후의 세계: 세 가지 삶의 전략 중에서
미국 신경심리학자 크리스 나이바우어가 쓴 이 책은 한국에서는 2019년 「자네, 좌뇌한테 속았네!」로 출판되었다가 절판됐는데 제목과 출판사를 바꿔 「뇌는 어떻게 나를 조종하는가」라는 제목으로 올해 2026년 1월 재출판한 좌뇌의 '합리화'에 의구심을 던지는 책입니다.
분리뇌 환자가 아니더라도 좌뇌의 자의적인 해석에 속는 사례는예를 들어 이성과 롤러코스터를 타면, 놀이기구로 인한 흥분을 상대에 대한 호감으로 착각할 수 있다는 잘 알려진 이야기가 있는데 해석 장치인 좌뇌가 신경계의 흥분을 설명하기 위해 상대의 매력에서 이유를 찾기 때문입니다.
좌뇌가 끊임없이 과몰입해 해석하고 판단하는 동안 우뇌는 침묵하는데 언어로 딱 부러지게 설명할 수 없는 무의식이나 직감이 우뇌의 작용인것입니다.
저자는 좌뇌와 우뇌의 기능을 설명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이를 불교의 가르침과도 연결하며 마음의 위로와 평화를 주려 한다.
걱정, 분노, 불안 등 부정적인 정신 상태는 모두 좌뇌가 자아라는 허상을 지어냈기 때문에 생겼다는 점을 이해하면 마음의 고통을 줄일 수 있고, 좌뇌가 신념을 창조한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내 신념이 '옳다'는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책의 원제 「No Self No Problem」 도 불교 무아(無我) 사상과 맞닿아 있습니다.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그 사람’이 아닐 수 있다
자아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뇌가 만들어낸 유용한 인터페이스일 가능성이 크다는것이죠.
이 책은 대중 신경과학이나 인지심리학, 동양철학을 접목한다는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다만 일부는 해석적 확장이나 철학적 주장에 가까운 부분도 있습니다.
엄밀한 과학서라기보다 과학 기반 철학 에세이에 가깝습니다.